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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26_03 버림의 말투

증도가 현각의 노래

뉘 염(念) 없으리오


염(念)이 다 진(眞)이니

하다가 진(眞)을 진(眞)이라 알면, 듣그레 나지 못하리라

가에 다달아 배 버림이, 상식(常式)의 일이어니

어찌 모로매 나루 사람다려, 다시 물으리오


망상(妄想) 덜지 않으며, 진(眞) 구하지 않나니

진(眞)과 망(妄)이 다, 거울 속의 듣글 같으니라


앞에 불렀던 구절, 남명은 영가의 염(念)을 다시 진(眞)과 망(妄)의 짝으로 읽는다. 다시 듣글로 읽는다. 짝의 말투, 그 믿얼굴은 모순의 말투이다. 짝의 말투도 모순의 말투도 쓸모가 있다. 죽살이의 바다, 나루에서 배를 타고 물을 건넌다지만, 따지고 보면 이 쪽도 저 쪽도 짝의 말투이고 모순의 말투이다. 무념과 무생, 조계의 말투라지만 이 또한 짝의 말투이고 모순의 말투이다. 거울 속의 듣글이다. 나루의 배이고, 나루의 사람이다. 쓸모를 챙겼다면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한다. 쓸모의 말투는 그릇의 말투이다. 아롬을 잡는 그릇, 죽살이도 버리지만, 없음도 버린다. 두 짝을 다 버리는 말투가 '대(對) 긋거니', 절대의 말투이다. 남명은 '상식(常式)의 일'이라고 부른다. 뻔한 일이라는 말이다. 뻔한 일에 뻔한 말투, '나루 사람다려 다시 물을' 까닭도 없다.

모로매 다섯 염(念)을 알지니,

하나는 부러 니라와돔이오,

둘은 익음이오,

셋은 이음이오,

넷은 각별히 남이오,

다섯은 고요함이다.


부러 일으키는 염, 익은 염, 이어지는 염, 각별히 내는 염, 이 네가지 염은 병이다. 고요한 염은 약이다.


약과 병의 다름이 있지만 모도건데는 다 이름이 염이다.


『선종영가집언해』의 구절이다. 영가가 '염(念)'이란 글자를 읽는, 영가의 말투이다. 진(眞)과 망(妄)의 짝, 병과 약의 짝으로도 읽는다. 영가의 노래는 영가의 말투에 걸렸다. 뻔한 말투, 뻔한 말의 그릇으로 부르는 뻔한 그릇의 노래이다. 뻔한 그릇도 쓸 줄 모른다면, 뻔한 노래라도 따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언해불전은 먼저 말투를 가린다. 영가의 말투를 뻔한 우리말로 나토려 든다. 고기념(故起念)의 고기(故起)를 ‘부러 니라와돔’이라고 새긴다. 익음과 이음, 각별히 남과 고요함, 과연 뻔한 우리말이다. 언해불전은 뻔한 노래를 뻔한 우리말로 따라 부르는 요령 또는 기술을 다룬다. '부러 니라와돔', 이런 말투는 아직 낯설다. 그래도 우리말인데 고기념(故起念)보다 더 낯설까?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따라 부르다 보면 입에 붙는다. 입에 붙으면 쉬워진다. 말도 쉬워지고 사랑도 쉬워진다.

배 버림은 진(眞)도 또 세우지 아니할시라.

나루의 사람은 불조(佛祖)이라.


버림의 말투, 언해는 한마디 가볍게 툭 던지고 넘어간다. 날렵한 물음에 가벼운 풀이랄까, 어렵고 낯선 말로 비비고 버믈 까닭이 없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