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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간섭

5.8 부러 니라와돔

心猿意馬심원의마(心猿意馬)


모로매 다섯 염(念)을 알지니, 하나는 부러 니라와돔이오, 둘은 익음이오, 셋은 이음이오, 넷은 각별히 남이오, 다섯은 고요함이다.


우리가 보통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 마음은 이름이다. 이름은 대가리다. 그렇다면 이 이름에는 뭐가 담길까? 싯다르타는 이걸 반성한다. 관찰한다. 돌이켜 보아 살핀다. 살피려면 먼저 쪼개야 한다. 구티어, 또는 억지로, 집(執)이나 강(强)이다. 그 살핌과 쪼갬이 악착같고 끈질기다.

마음은 염(念)의 흐름이다. 염을 다시 쪼갠다. 다섯가지 종류, 무리가 있다고 한다. 이 말이 하나같이 정겹다. 고기념(故起念)의 고기(故起)를 ‘부러 니라와돔’이라고 새겼다. ‘부러’는 일부러, 고의(故意)란 말이다. 짐짓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르고 일부러 일으킨다. 염은 아주 짧고 아주 작은 찰나의 일이다. ‘부러 니라와돔’도 그런 일이다.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지어간다. 너무 빠르고 종잡을 수 없어,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그런데 ‘부러 니라와돔’, 순간에 흐름이 바뀐다. 이음이 되고 익음이 된다. 여기 저기 붙기도 하고, 이런 저런 프레임을 짓기도 한다. 내 몸의 욕망과 세상의 갖가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일로 이어진다. 부러 저지르고 부러 일으키는 염에서 온갖 일이 시작한다.

날이 맟도록 마음 납이를 놓아 두어 보라

어찌 깊이 살아 뜻의 말 길들임 같으리오


심원(心猿), 납이는 원숭이다. 마음을 납이에 비긴다. 의마(意馬), 뜻은 의식이다. 의식을 말에 비긴다. 분마(奔馬)라는 말도 쓴다. 치닫는 말이다. 납이나 말은 길들이기 어렵다. 그저 치닫는다. 어디로 튈지 종잡을수조차 없다. 소의 비유도 자주 쓴다. 소는 납이나 말에 비해 길들이기 쉽다. 짐승을 길들이려면 올가미나 굴레, 코뚜레를 쓴다. 저 노래는 반성과 관찰의 방법이다. 놓아 두고 보는 이도 있고, 악착같이 길들이는 이도 있다. 심거(深居)를 ‘깊이 살아’라고 새긴다. 마음과 의식을 길들이기 위해 깊이 숨어 산다는 말이다. 깊이 숨는 까닭은 그만큼 길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평생을 길들이려 해도 길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놓아 두고 보라'고 한다. 방법을 바꿔 보라는 말이다.  

길들이건 두어 보건, 그런 사람들이 늘 있었다. 적어도 이천년, 관찰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런 관찰의 보고서가 ‘염(念)의 흐름’이다. 강물처럼 물길을 따라 흐르는 게 아니다. 납이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튄다. 말처럼 굴레를 부수고 치닫는다. 종잡을 수도 없거니와, 빠르기도 하다. 납이나 말이나 소나, 모두가 염(念)을 가잘빈다. 그걸 바라보거나 길들이려는 것도 또한 염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모습, 염염락사(念念落謝)라고 부른다. ‘염염에 지어가다’라고 새긴다.

하저즈로미 속자(俗子) 같아야


작위(作爲)란 말이 있다. 작용(作用)이란 말도 쓴다. ‘하저즐다’라고 새긴다. 이런 일 이런 말도 부러 니라와돔이다. ‘익음’은 습관이 된다는 말이다. 부러 일으킨 것들이 몸에 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말의 프레임처럼 염(念)의 프레임에 익숙해진다. ‘이음’은 일으킨 염이 그치지 않고 앞을 이어 뒤로 쉬지 않고 이어진다. ‘각별히 남’은 일으키고, 익고, 이어지는 사이에 문득 부끄럽고 뉘우치는 염이 난다는 것이다. 염(念)의 프레임을 알차 차리는 일이다. 뭔가 잘못됐구나. 부끄럽고 뉘우치는 염이 일고 익는다. 부러 일으켜 하저즐던 것, 고요히 반성하고 되돌리는 일이다.

이런 일이 몸에 배면 구태여 길들이려 하지 않아도 날뛰지 않는다. 사람의 일은 모두가 작위(作爲)이다. 부러 일으킨 것이고, 부러 하저즐어 지어낸 것이다. 구태여 길들이려고 드는 짓도 ‘부러 니라와돔’이다. 올가미를 만들고 굴레를 씌우고, 멀쩡한 코를 뚫는다. 그래서 놓아 두고 보라고 한다. 시험삼아라도 한번 해보라고 한다. 두고 보면 안다. 부끄러음도 나오고 뉘우침도 나온다. 그러다 보면 고요해진다. 지기도 한다.

누구를 브트뇨’, 이런 물음은 서로 붙고 서로 섞는 일, 간섭의 기술을 가르치는 물음이다. 어차피 붙을 수 밖에 없다. 간섭은 어디서나 일어난다. 간섭을 모르면 속고 속일 수 밖에 없다. 도적의 꾀에 물들어 몸도 집안도 서의해질 수 밖에 없다. ‘부러 니라와 돔’, 이런 말도 간섭의 기술이다. 물건을 상대하고 사람을 만나고, 서로 섞이는 일에 대한 물음이다. 잘 만나고 잘 섞여야 한다. 쫄 것도 업지만, 쫄게 만들 일도 없다. 그런 게 함께 살아가는 간섭의 기술이다.

세월호, 그냥 눈물이 났다. 보거나 듣거나 그냥 눈물이 났다. 이런 일에서 까닭을 묻거나 찾기도 어렵다. 그냥 몸이 시키는 일이다. 이런 일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세계의 일이다. 우리의 몸이 함께 반응한다. 이런 드틀이 눈을 찌르고 귀를 찌른다. 우리 머리를 찌른다. 눈물이 난다. 오래 전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볼 때도 그랬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 때만 해도 눈물이 나는 게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세월호 때는 쑥스러움도 없었다. 아직도 그렇다. 이런 걸 트라우마라 부른다. 세월호는 세계의 트라우마이다. 우리 세계의 공감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도 ‘부러 니라와돔’이 작용한다. 그냥 흘러내리던 눈물이 어디 다른 쪽으로 튄다. 슬퍼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화가 나기도 한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피짜나 햄버거를 가지고 폭식투쟁을 하기도 한다. 몸이 반응하는 일, 눈물은 분석이 어렵다. 하지만 ‘부러 니라와돔’, 바라 보면 알 수 있다. 담배가 당기고 술이 땡기고, 슬픔과 우울은 ‘부러 니라와돔’이다. 그로부터의 익음과 이음이다. 딱부러지게 선을 긋기는 어렵다. 그래도 부끄러움이 일어나면 ‘부러 니라와돔’을 느낄 수 있다. 알 수도 있다.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들의 모습에서도 눈물이 났다. 함께 모여 리본을 만들고 서명지를 만들고, 밥을 나눠 먹고…… 놀라웠다. 부끄러움과 뉘우침이 ‘부러 니라와돔’을 삭이고 있었다. 폭식투쟁, 이런 말, 이런 사람들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도 그들에게도 ‘부러 니라와돔’은 있다.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염,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부러 니라와 돔, 굳이 간섭이 아니더라도 참 쓸모가 많은 말이다. 나는 두려운 일을 만났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들 때, 속이 상할 때, 슬퍼지거나 화가 날 때, 그 때마다 이 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이 말을 주문이나 염불, 또는 기도처럼 쓴다. 눈물은 눈물이다. 슬픔은 슬픔이다. 오버하지 말아라. 카냥하지 말아라. 과장하지 말아라. 두렵거나 슬프거나 모두가 염(念)의 흐름이다. 부러 니라와 돔, 그런 감정은 대개 제 자신이 부러 일으킨 것이다. 카냥하고 과장한다. 물이 없으면 목이 마르고 밥이 없으면 배가 고프다. 이건 자연이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면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이건 부러 니라와돔이다. 마시고 먹을 수 없다면 목숨을 이어 갈 수 없다. 죽기 싫으면 기운을 차리고 물과 밥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살다 보면 두려운 일도 만나고 슬픈 일도 생긴다. 이런 일, 이런 느낌, 번득하다. 내 몸의 일이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두렵고, 슬프고, 모두가 몸의 일이다. 번득하다. 이런 일에도 ‘부러 니라와돔’이 작용한다. 느낌을 과장하고 증폭한다. 목마름, 배고픔, 느낌의 방향이 바뀌어 버린다.

부러 일으키는 염, 익은 염, 이어지는 염, 각별히 내는 염, 이 네가지 염은 병이다. 고요한 염은 약이다. 


약과 병의 다름이 있지만 모도건데는 다 이름이 염이다.


복잡하고 힘겨운 세상이라고들 한다. 슬픔과 두려움,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면 병이 된다. 우울증과 조울증, 병도 따라서 깊어간다. 견디다 못해 제 목숨을 제가 끊는 일도 늘어간다. 과연 거츨고 거친 세상이다. 부끄럽고 뉘우치는 염이 일면 두려움과 슬픔도 번득해진다. 부러 니라와돔, 내게는 이 말이 약이 된다. 내 스스로 부러 과장하고 부러 증폭하던 것을 멈추게 해 준다. 이런 것도 간섭의 기술이다. 속 편하게 사는 요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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