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26_02 튕기는 그릇

증도가 현각의 노래

뉘 염(念) 없으리오,

뉘 남이 없으리오,


하다가 실(實)로 무생(無生)인댄 불생(不生)도 없으니,


기관목인(機關木人)을 불러 물으라,

부처 구하여 공 들이면 어느 제 이루리오,


무념(無念)과 무생(無生), 영가가 조계에 가샤 하룻밤 자시고 불러낸 구절이다. 그런데, 그게 다 뉘야? 영가는 다시곰 이 구절을 묻는다. 무념(無念)과 무생(無生), 조계로부터 흘러 나온 구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 마디를 풀이하는 사람들, 모두가 조계의 구절에 붙는다. 무념(無念)이 뭐다, 무생(無生)이 뭐다, 잇비 가리려 든다. 하지만 영가의 노래는 날렵하다. 대뜸 기관목인(機關木人)을 불러 낸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이 마디의 열쇠말은 기관(機關)이다. 언해의 풀이는 영가의 말투를 따른다. 조계의 구절, 육조의 말투, 영가도 언해도 구태여 타고 가리려 들지 않는다.

영가는 뒤의 사람들이 말씀을 따라 헤아림을 내어, 단멸(斷滅)로 보지 않을까 저어하여, 다시곰 비유를 들어 점을 찍었다.


이건 『증도가사실』의 말이다. 『증도가사실』의 풀이도 먼저 무념(無念)과 무생(無生)에 붙는다. 언해는 이런 풀이에도 붙지 않는다. 기관목인은 비유이다. 요즘엔 거의 잊혀진 비유, 그저 꼭두각시 나무 인형이라고 부른다. 나무 인형이야 염(念)이 있을리 없다. 남이 있을리 없다. 아롬이 있을리 없다. 나무 인형이야 부처를 찾을리도 없고, 공을 들일리도 없다. 뻔한 소리 뭐 하러 하나?

단멸(斷滅), 언해불전은 '그쳐 없음'이라고 새긴다. 요즘엔 '단멸에 떨어지다'는 말을 쓴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르자면, '떨어지다'는 '떨다'와 '지다'를 합한 말이다. 밤나무를 떨면 밤이 진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을 떤다. 떨면 진다. 그런데 떨지 않아도 지는 것도 있다. 언해불전은 '단멸에 지다'라고 한다. '오직 없음'만을 바라보는 일이다. 생사와 열반, 죽살이와 없음, 열반이나 없음만을 바라보는 일이 단멸에 지는 일이다. 장사꾼이 창만 바라보고, 방패난 바라 보는 일, 그러면 조계의 말투도 '모순의 말투'가 된다. 조계의 구절, 무념과 무생, 이런 말을 들으면 단멸에 지는 이들이 많다. 없음만을 바라본다. 그러나 없음은 있음의 짝이다. 짝의 말투, 한짝을 보려면 다른 짝을 보아야 한다.

기관목인의 가잘빔, 부처가 즐겨 쓰던 흔한 비유였다. 그냥 '꼭두각시 나무인형'이 아니다. 대장경에 넘쳐 나는 비유, 나는 '기관목인 판타지' 라고 부른다. 나는 이 비유를 정말 좋아한다. 너무 뻔해서 좋다. 이런 가잘빔이 잊혀지는 게 아깝다. 아무튼 언해불전은 이 열쇠말을 '솜씨 좋게' 다룬다.

부처님: 현호(賢護)여,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든 기관이 하나로 묶여 갖가지 짓을 한다. 혹은 걷고 달리고 뛰기도 하며, 혹은 펄쩍 뛰어 춤을 추기도 한다. 그대의 뜻에는 어떠한가? 기관이 짓는 일은 누구의 힘인가?


현호: 지혜가 좁고 얕아서 헤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 이는 모두 작업(作業)의 힘이란 걸 알아야 한다. 작업(作業)에는 얼굴이 없다. 다만 아롬으로 움직이는 것뿐이다. 이렇게 몸의 기관(機關)은 식(識)의 힘으로 여러 가지 사업(事業)을 짓는다. 모든 생명들이 지어내는 행위는 모두 식의 힘에 붙는다. 식이 몸을 낳을 수 있는 것은 마치 기관(機關)을 만드는 것과 같다.

『대승현식경(大乘顯識經)』이란 경전의 구절이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라 새겨 보았다. 언해불전은 결(決)이란 글자를 '헤티다'라고 새긴다. '헤치다'의 옛말이란다. 부처는 사람의 몸을 기관에 가잘빈다. 몸의 기관은 의식의 힘으로 갖가지 사업을 짓는다. 조계의 말투를 따르자면 염(念)이고 남이다. 기관목인, 언해에서는 '괴뢰'라고 쓰고, '곡도'라고 새기기도 한다. 사람의 몸은 괴뢰이고 곡도이다. 언해불전은 사람의 몸을 기(器)라 쓰고 '그릇'이라고 새긴다. 사람의 몸은 그릇이다.

이건 『능엄경언해』의 풀이이다. 활이나 쇠뇌는 줄을 튕겨 살을 날린다. 기(機)란 글자를 '뙤오는 것'이라고 새긴다. 튕기다, 도는 '튀기다'의 옛말이다. 나의 몸, 사람의 몸은 뙤오는, 튕기는 그릇이다. 염이 몸을 튕긴다. 사람의 짓, 작업이나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건 '남'이다.

내 몸은 곡도로 된 몸이다. 기관의 몸, 기(機)의 그릇이다. 내 몸의 염이 내 몸을 튕긴다. 나무사람의 몸도 기(機)의 그릇이다. 그런데 나무사람에게는 염이 없다. 혼자서는 그 몸을 튕길 수 없다. 그 몸을 튕기려면 누군가 밖의 힘을 빌어야 한다. 제가 제 몸을 튕길 수 있을 때, 언해불전은 그 몸을 자유(自由)라고 부른다. 그리고 '제쥬변'이라고 새긴다. 튕김에서 사람의 몸과 나무사람의 몸이 갈린다. 사람에게서 염을 빼고 식을 뺀다면 나무사람과 다를 게 없다. 제 힘으로 제 몸을 튕길 수 없다. '아롬 없음으로 마음 삼으면', 언해는 단멸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염과 식을 빼고 나면 사람의 몸이 아니다. '아롬'도 튕김이다. 부처도 튕김이다. 튕김이 없다면 아롬도 없고, 부처도 없다. 기관목인 판타지는 그런 걸 가잘빈다. 무념이니 무생이니, 헷갈리는 말도 부질없다. 내 몸의 튕김, 그걸 잘 보고 잘 살피라고 한다. 죽살이가 다 거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