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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27_01 물이 거스리 흐른대

증도가 현각의 노래

뉘 염(念) 없으리오,

염(念)이 다 진(眞)이니,

하다가 진(眞)을 진(眞)이라 알면, 듣그레 나지 못하리라.


뉘 남이 없으리오,

남이 이 망(妄)이니,

망(妄) 일어남이 뿌리 없어, 곧 실상(實相)이니라.


'염(念)과 남'의 짝은 영가의 짝이다. 남명은 '염(念)과 남'의 짝을 '진(眞)과 망(妄)'의 짝으로 겹쳐 읽는다. '진(眞)과 망(妄)', '진짜와 가짜', 예나 지금이나 흔한 짝이다. 구태여 타 가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염(念)과 남'의 짝은 헷갈린다. 왜 짝이어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염과 남'의 뜻에 붙는다. 염이 뭐지? 남은 또 뭐지?

예를 들어 언해불전은 염(念)'이란 글자를 '생각이나 사랑의 조각'으로 풀이한다. 한것과 드틀의 말투, 듯글 또는 드틀은 한 물건의 듯글일 수도 있고, 한 마음의 듯글일 수도 있다. 몸 밖의 듯글이 몸안의 듯글로 비비고 버믄다. 물건을 이루는 물건의 조각, 요즘엔 물질의 원소라고 부른다. 그 조각에 진망(眞忘)이 있을까? 거울의 듯글은 내 몸에 어린 물건의 듯글, 내 마음의 그리메를 가잘빈다. 빛의 듯글은 내 눈을 찌른다. 그래서 나는 염(念)에는 진망(眞忘)이 있을까? 물의 듯글은 내 입을 적신다. 그래서 나는 염(念)에는 진망(眞忘)이 있을까? 염(念)의 한 조각이 모롬으로 갈 수도 있고, 아롬으로 갈 수도 있다고도 한다. 진망의 짝, 이 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간다. 그래서 남명의 대구는 헷갈린다.

남이 이 망(妄)이라 함은 생멸(生滅)이 다 이 망(妄)이라.

뿌리 없다 함은 본래(本來) 제 생(生) 없으며, 이제 또 멸(滅) 없는 뜻이라.

곧 실상(實相)이라 함은 생(生) 없으며, 멸(滅) 없는 곳이 이 실상(實相)이라.


'뉘 염(念) 없으리오, 뉘 남이 없으리오,', 이건 영가의 물음이다. 그런데, 언해의 풀이는 영가의 말에 붙지 않는다. 한 글자의 풀이도 더하지 않는다. 언해의 풀이는 그냥 남명의 말투에 붙는다. 헷갈리는 짝, 언해는 대신에 생멸(生滅)의 짝을 더한다. '죽살이와 없음'의 짝이다. '생사와 열반'의 짝이다. '있음과 없음'의 짝이다. '생(生) 없으며, 멸(滅) 없는 곳'을 '실상(實相)'이라고 부른다. 이건 절대의 말투이다. 언해의 풀이는 퍼쯜 놀이를 닮았다. 헷갈리는 조각은 다시곰 맞춰 본다.

물이 거슬러 흐르다 함은 스승과 제자(弟子)의 도(道)가 합(合)한 뜻이니, 한 산사(算師)가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있더니, 하루는 이르되 문(門) 앞의 물이 거슬러 흐르면 내 도(道) 전(傳)할 사람이 오리라 하거늘, 이튿날에 일행선사(一行禪師)가 가 그 술(術)을 다 전(傳)하니라.


영가(永嘉)와 육조(六祖)가 일행(一行)과 산사(算師)와 같으니, 그럴새 이르시되 '조계(曹溪)의 물이 거슬러 흐르다' 하시니라.


실상(實相)은 본래(本來) 모르니, 아니 없거늘, 영가(永嘉)가 조계(曹溪) 가샤 하룻밤 자시고, 무생(無生)을 아시니, 이 모르며 앎이 나뉘어 여니, 그럴새 이르시되, '평인(平人)이 그지없이 물결을 좇다 하시니라.

천태산 국청사는 중국 천태종의 본산이다. 오래 전 대각국사 의천이 갔던 길을 따라 간 적이 있었다. 송나라의 서울은 변경, 지금은 강소성의 남경이었다. 의천은 변경을 거쳐 항주를 향했다. 그리고 천태산과 명주를 거쳐 뱃길로 돌아 왔다. 의천의 길은 대장경의 길이다. 책의 길이다. 송나라 의천의 길은 절강성을 싸고 돈다. 천태산 국청사도 절강성에 있다. 국청사에는 '중한천태종조사기념당'이란 집도 있다. 의천은 중국 천태종의 본을 따라 고려 천태종을 세웠고, 국청사의 본을 따라 고려의 국청사를 세웠다. 고려시대에는 우리에게도 아주 가깝고 친근한 땅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의천의 길을 한중교류의 상징으로 기념한다.

고려에는 교장도감과 대장도감의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의 마루에 의천이 있다. 의천의 대장경과 속장경은 책의 역사를 상징한다. 나는 고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책을 가장 잘 만들던 나라였다고 믿는다. 책에 관한 한 의천의 고려는 동아시아 한문문화권은 물론, 인류지식문화의 정점이었다. 간경도감은 그 역사와 전통을 바로 잇고 있다. 언해불전의 편집자들도 의천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의천의 길, 의천의 일, 그게 없었다면 언해불전의 우리말투도 없었다. 아롬에도 말에도 뿌리가 있다.

'영가(永嘉)가 조계(曹溪) 가샤 하룻밤 자시고', 언해는 이 말을 두 차례 거듭한다. 영가현각은 천태산의 사람이다. 천태산에서 천태종의 본을 따라 불교를 배우고 익혔다. 영가는 그 아롬으로 조계산의 혜능을 찾아갔다. 그 아롬으로 육조와 아롬을 맞추었다. '아롬의 마촘', 남명도 언해도 그 마촘을 영가의 증(證)으로 읽는다. 이 노래의 뿌리, 영가의 실상, 영가의 무생(無生), 그 마촘을 뿌리로 삼는다. 그래서 남명은 천태산 일행(一行)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언해는 '스승과 제자(弟子)의 도(道)가 합(合)한 뜻'이라고 읽는다. 영가와 육조의 만남과 마촘을 일행과 산사의 만남과 마촘으로 풀이한다.

천태산에는 '일행이 여기 오니, 물이 서쪽으로 흘렀다'는 비석도 남아 있다. 동으로 흐르던 물이 거슬러 흘렀다는 증거이다. 무념도 무생도 슬쩍 넘어가던 언해의 풀이, 이 이야기는 제법 자세히 풀어준다. 천태산과 조계산의 뿌리가 무생과 실상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언해불전의 뿌리겠다. 고려의 교장도감과 조선의 간경도감, 잊어서는 안된 역사의 뿌리기 때문이겠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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