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24_01 듣글 묻은 거울

증도가 현각의 노래


요 사이에 듣글 묻은, 거울을 닦지 아니하니


마음의 때 연(緣)이 되어, 점점(漸漸) 어두워 검도다

신고(神膏)를 찍어내어, 한 당(堂)이 서늘하니

영(靈)한 광명(光明)이 밖에 가, 득(得)하지 않은 줄 처음 신(信)호라


듣글 묻은 거울, 이 노래를 읽는 이들은 대개 이 구절에서 육조(六祖)의 노래를 떠올린다. 육조를 만나 '일숙각'의 이름을 얻었다는 영가현각, 그 인연도 함께 떠올린다.

신수(神秀) 왈(曰),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台)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신수가 이르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맑은 거울 자리,

때때로 잇비 닦아, 듣글 버믈지 않게 하리니


육조(六祖) 왈(曰),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台)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육조 이르기를,

보리에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도 자리가 아닐세,

본래 한 것도 없으니, 어디에 듣글이 버므려나


언해불전은 진애(塵埃)를 '드틀'이라고 새긴다. 듣글과 드틀을 섞어 쓴다. 야(惹)는 '버믈다'라고 새긴다. 연기(緣起)는 '브터니닷', 연(緣)이라는 글자, '붙다'라고도 새기지만, '버믈다'라고도 새긴다. 눈으로 나무를 본다. 눈동자에 나무의 그르메가 어린다. 눈은 근(根), 몸의 뿌리라고 부른다. 나무는 진(塵), 드틀이라고 부른다. 눈에 마주하는 대상(對象)이다. 몸 밖에 있는 물건, ''이다. 얼굴을 가진 '것', 뿌리에 '것'이 드틀이 되어 그르메로 어린다. 드틀로 붙는다. 듣글로 버믄다. 버므는 뒤에 아롬이 있다. 보리라고도 부르고, 마음이라고도 부른다. 요즘 말로 치자면 감각과 인식의 이론이다. 뿌리와 드틀, 붙다와 버믈다, 얼굴과 그르메, 느낌과 아롬, 언해불전은 이런 우리말로 감각과 인식의 이론들을 번득하게 나톤다.

듣글 묻은 거울, 듣글이 쌓이면 때가 된다. 맑은 거울을 더럽게 한다. 그르메는 부예지고, 아롬은 어두워진다. 그래서 누구는 잇비 닦으라고 한다. 닦아야 그르메도 또렷해지고, 아롬도 훤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육조, 온통 뒤집어 엎는다. 몽땅 아니라고 한다. 이게 육조가 육조가 된 까닭이다. 영가가 일숙각이 된 까닭이다. 뒤의 사람들은 이 까닭을 실끝 삼아 영가의 노래를 읽는다. '듣글 묻은 거울'을 읽는다. 닦을 까닭이 없는 까닭, 육조가 뒤엎은 '느낌과 아롬'의 이야기다. 영가의 노래는 어떨까? 언해의 풀이는 또 어떨까?

증도가, 그대의 노래

'세종과 함께 읽는 > 道를 證한 노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24_02 찍음과 닦음  (0) 2018.11.10
023_01 안의 드틀과 그친 슻  (0) 2018.11.07
022_01 세계의 그친 슻  (0) 2018.11.01
021_02 오로 앗아  (0) 2018.10.30
021_01 없음에서 물어 찾지 말지니  (0) 201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