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02_02 이 노래를 부르는 법

증도가 현각의 노래

아롬-마촘-나톰

이 노래의 제목은 『증도가(證道歌)』이다. '도(道)를 증(證)한 노래'라고 새긴다. 이것만으로는 헷갈린다. 도(道)는 뭐고, 증(證)은 또 뭐람. 요즘에도 이런 글자, 구태여 새기려 들지 않는다. 15세기에도 그랬다. 구태여 새기지 않는다. 다들 훤히 아는 모양이다.

증(證)은 알시오


언해불전은 그래도 저렇게 풀어는 준다. 증(證)은 '알다', '아롬'이다. 오도(悟道)라는 말이 있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르자면 '길을 알다'이다. 그런데 저 풀이를 따르자면, 증도(證道)도 '길을 알다'이다. 이래서 헷갈린다. 예를 들어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한다고 치자. 먼저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길을 모른다면 길을 가르쳐 준다. 어디서 몇번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고...... 이건 오도(悟道), '길을 아롬'이다. 그리고 길을 나선다. 가르쳐 준대로 찾아 간다. 그 곳에서 친구를 만난다면 이건 '증도(證道)', '길을 아롬'이다. 이 차이는 뭘까?

앞의 아롬과 뒤의 아롬, 언해불전의 말투로는 그 사이에 '마촘'이 있다. '마초다'는 '맞추다'의 옛말이다. 옛날 이야기, 헤어지는 장면을 돌이켜 보자. 거울이나 옥, 귀한 물건을 둘로 쪼개어 나누어 갖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사람들, 쪼개진 물건을 맞추어 본다. 딱 맞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이게 '마촘'이고 '마좀'이다. 요즘엔 확인이나 증명이란 말을 쓴다. 지문을 살피기도 하고 유전자를 따지기도 한다. 증도(證道)의 아롬은 '마초아 아롬'이다. 이에 비해 오도(悟道)는 '헤아려 아롬'이다. 길을 나서 길을 찾아 가는 일, 이건 '마촘'이다. 친구를 만난다면, 이건 '마좀'이다. 맞추어 맞은 아롬, 몸으로 확인하고 증명한 아롬이다. 그 자리에서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면, 이전의 아롬은 아롬이 아니다. 이건 '그르 아롬'이다.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면 '그르 아롬'을 확인하고 증명한 셈이다.

군불견(君不見)

그대는 아니 보난다?


미료오금위군결(未了吾今為君訣)

아지 못하린댄 내 이제 그대 위해 결(決)호리라 하시니


『증도가(證道歌)』의 첫구절과 끝구절이다. 이 노래는 군(君)에서 시작하여 군(君)으로 마감한다. 이 노래는 군이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군'은 누구인가?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그래도 간간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큰 힘으로 높은 자리에 앉은 어른들이다. 그래서 이 말은 '갑질'의 느낌을 준다. 누가 나를 '군'이라고 부른다면 기분을 잡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언해불전은 이 말을 '그대'라고 새긴다. 15세기 우리말, 나는 이 말이 이렇게 오래 된 말인줄 몰랐다. 그래서 처음엔 오히려 낯설었다. '그대는 아니 보난다?' 그대가 누구지?

군불견(君不見)

황하지수천상래(黃河之水天上來)

분류도해불복회(奔流到海不復回)


군불견(君不見)

고당명경비백발(高堂明鏡悲白髮)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青絲暮成雪)


그대는 아니 보난다?

황하의 물은, 하늘에서 나려 와

바다로 달려 흘러, 돌아 오지 않는 줄


그대는 아니 보난다?

높은 집의 밝은 거울, 힌 머리가 슬퍼라

아침에 퍼렇던 실, 나조해 눈이 된 줄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노래, '장진주(將進酒)'의 구절이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라 새겨 보았다. '나조해'는 '저녁에'란 말이다. 모(暮)를 '나좋'이라고 새긴다. '해짐, 해가 지다'라고 새기기도 한다. '나조해'는 해질 녘이다. 『증도가(證道歌)』를 지은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과 이백이 살던 시절을 견줘 보면, 군불견(君不見)의 말투도 짐작이 간다. 아무튼 이백은 '그대도 한잔' 마시라고 한다. 현각은 '그대도 한번' 불러 보라고 한다. 그대가 아는 것, 그대의 노래로 그대가 불러 보라. 그대가 아지 못하린댄 내 이제 그대 위해 결(決)호리라. 나의 노래와 그대의 노래를 맞춰 보자는 뜻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불러 봐야 맞출 수 있다. 나는 나의 노래, 그대는 그대의 노래, 함께 불러 보자. 함께 맞춰 보자. 맞으면 그만이고, 맞지 않으면 고쳐야 한다.

아롬과 마촘, 맞추는 것은 노래이다. 내가 아는 것, 그대가 아는 것, 노래 불러라. 노래를 부르는 일은 '나톰'이라고 한다. '나토다'는 '나타내다의 옛말이다. 요즘에는 표현이란 말을 쓴다. 언표(言表)나 어표(語表)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말로 나톰'이다. 그대가 아는 것, 그대의 말로, 그대의 노래로 표현하라고 한다. 나토라고 한다. 아롬을 나토고 나톰을 마초고, '아롬'과 '나톰'과 '마촘', 『증도가(證道歌)』는 이 세가지 일을 싸고 돈다. 나와 그대가 대화하고 소통하는 길이다. 이백의 노래는 술을 권한다. 영가현각의 증도가는 노래를 권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바로 아는지 그르 아는지, 맞춰 봐야 알 수 있다. 바로 알아야 살혬도 열린다. 그래서 권한다. 그대의 노래, 한번 불러 봐. 『증도가』는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영가현각의 노래만이 아니다. 이 노래는 '맞추어 아는' 노래이다. '나톰과 마촘', 그대가 있어야 하고, 그대가 불러야 한다. 그래야 증(證)의 노래가 된다.

『증도가남명계송』에는 세 개의 노래가 함께 짜여 있다. 첫째는 영가현각의 노래이다. 둘째는 남명법천의 노래이다. 그리고 셋째는 세종과 두 아들의 노래이다. 세종과 두 아들이 함께 '국어로 번역하던'노래, 30여수만을 남겨 놓고 돌아가신 세종, 그래서 유언으로 남겨졌던 노래, 뒤에 다른 사람이 마무리를 지었다지만, 나는 그래도 '세종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다. 노래를 이어 부르는 까닭은 영가현각이 시켰기 때문이다. 영가현각의 노래에 맞추어 제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세종과 두 아들도 따라 불렀다. 제 노래를 불렀다. 세 편의 노래, 사람이 다르듯 노래도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그래서 읽는 법을 모르면 따라 부르기도 어렵다.

세 개의 노래, 따로 읽을 수도 있다. 영가현각의 노래, 그것만으로도 아주 길다. 남명법천의 노래는 4-5배로 늘었다. 말투도 아주 달라진다. 이른바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 두 노래를 섞어 읽으면 헷갈린다. '그대'를 가리기가 어렵다. 셋째 노래는 노래라기 보다는 주석이나 설명에 가깝다. 말이 점점 길어지니 노래처럼 들을 수도 없다. 서로 묶여 있으니 함께 읽을 수도 있지만, '그대'를 가려 읽어야, 알기도 쉽고 맞추기도 쉽다. 투가 다른 사람, 투가 다른 말, 가려 읽어야 화음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대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제 노래'를 함께 불러야 노래가 된다. '그대는 아니 보난다?' 영가현각의 물음이다. 노래를 권한다. '제 노래를 부르게 하는 뜻'이 이 노래를 읽는 까닭이다. 되던 안되던 제 노래를 목청껏 질러 내야 한다. 그래야 '도를 증한 노래'가 된다. 제 소리를 지르고, 제 뜻을 나토아야 다른 노래도 들린다. 그러면 함께 부르는 맛도 생긴다.

이 어떤 낯인고’라 함은, 묻는 것의 면목(面目)이라,

사(師)가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 물어 이르시기를, ‘보는가, 못보는가, 이 어떤 면목인고?’라 하시니


면목(面目), 요즘에도 흔히 쓰는 말이다. '낯과 눈'이라고 새긴다. '그대가 뒷논 것'이다. 누구에게나 낯도 있고 눈도 있다. 눈이 있으면 볼 수 있다. 볼 수 있으면 알 수도 있다. 게다가 귀도 있고 코도 있다. '본래면목'이나 '진면목'이란 말도 섞어 쓴다. '그대가 본래 뒷논 것'이다. 이 말을 두고 '본성(本性)'이란 말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불성'이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노래, 그런 말에 홀릴 것 없다. 낯도 있고 눈도 있으면 그만이다. 제가 보는 것, 그대로 나토면 된다. 제가 아는 말로 제가 나토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도 닦는 사람이 따로 없다. 있다고 해 봐야 제 깜냥이다. 제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맞출 수 있다. 맞춰 봐야 알 수 있다. 그게 영가현각의 물음이다. 잔머리 굴리면 노래도 끝난다. 구절마다 깜냥대로 소리 질러라, 그래야 노래도 나온다. 이것이 이 노래를 읽는 방법이다. 영가현각의 '낯과 눈'이 그랬다. 남의 노래, 조용히 듣기만 할거라면, 읽을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다. 속절없고 부질없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