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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자유

3.3 곡도의 노래

최순실이란 이름이 처음 대중에 알려졌을 때,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희한한 그림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다. 대통령의 대가리가 열렸다. 그 속에 최순실이 앉았다. 최순실 앞에는 몇 개의 막대기가 있다. 최순실의 손은 막대기를 잡고 있다. 손과 막대기가 대통령을 움직인다. 대통령을 조종(操縱)한다. 영화 ‘맨 인 블랙’ 외계인 시리즈에서 익히 보던 그림이다. 그림에는 ‘puppet president’라는 제목도 달려 있었다.

잡으며 놓음이 주먹에 있으며

죽이며 살림이 때에 따라 한다.


언해불전은 조종(操縱)을 ‘잡고 놓음’이라고 새긴다. 주먹이 하는 일이다. 막대기를 쥔 최순실의 주먹이다. 이게 자유대한 대통령의 얼굴이다. 우리 자유대한의 본질이다. 성조기의 나라, 미국의 신문이 그랬다.

간취붕두(看取棚頭)에 농괴뢰(弄傀儡)하라

추견(抽牽)이 전차리두인(全借裏頭人)이니라


붕(棚) 끝에 곡도 놀욤을 보라

빼며 이끔이 전혀 속의 사람을 빌었네

붕(棚)은 덕이라.


‘덕’은 기둥을 세우고 널을 얹은 시렁이다. 괴뢰(傀儡)를 ‘곡도’라고 새긴다. 마리오네뜨 인형극의 퍼핏이다. 붕(棚) 또는 ‘덕’은 놀이를 위한 무대이다. 무대 위에 곡도가 걸렸다. 무대 뒤에 숨은 사람, 가는 줄을 ‘빼고 이끌며 곡도를 놀린다. 농(弄)은 ‘놀욤’이라고 새긴다. 막대기를 잡은 주먹의 놀림이 곡도를 놀린다. 그르메 놀욤에 거울 놀욤, 언해불전에는 '놀욤'도 참 많다. 뭔가를 희롱한다. 뭔가를 가지고 놀리고 논다. 예전엔 괴뢰군이란 말이 참 흔했다. 북한의 군인, 인민군은 괴뢰군이다. 말은 흔했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지도 못했다. 아무튼 나쁜 말이었다. 북한의 언론은 요즘도 자유대한을 괴뢰라고 비난한다. 미국이 잡고 놓는 괴뢰란다.

나무 깎아 실 매어, 늙은이를 놀리니

닭 살에 학의 머리, 진짜와 똑 같아라

잠깐 사이 춤 끝나, 멀뚱히 일없어

마치 인생살이, 꿈 속 같아라


중국 당나라 현종(685-762)이 지었다는 「괴뢰음(傀儡吟)」, 괴뢰의 노래이다. 언뜻 들어도 장면이 그려진다. 놀이도 그려지고, 꿈 속 같다는 현종의 마음도 느껴진다. 서양의 인형극이 오래 되었다지만, 아시아의 괴뢰 놀이도 꽤 오래 되었다. 불교 책에는 괴뢰 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 당나라 보다도 훨씬 더 오래 된 인도의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괴뢰 같은 인생살이, 오래 묵은 상상이다. 불교에서는 환(幻)이라는 글자를 즐겨 쓴다. 괴뢰를 환인(幻人)이라고 부른다. 괴뢰를 놀리는 ‘속의 사람’을 환사(幻師)라고 부른다. 환사가 환인을 놀리는 놀이가 환(幻)이다.

환(幻)은 곡도이라


언해불전에서는 환(幻)도 ‘곡도’라고 새기고, 괴뢰도 ‘곡도’라고 새긴다. ‘곡도’라는 말은 정겹기도 하지만 진짜 흥미롭다.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언해불전의 쓰임새로 짐작할 뿐이다.

환화공신즉법신(幻化空身卽法身)

곡도같이 다왼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니


오직 혹(惑)이 본(本)이 업슨달 살피면, 허공(虛空)앳 꽃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에 내 걷힘같으며, 환화(幻化)같은 육진(六塵)이 더운 물에 얼음 녹음 같으리니


나의 이 몸이 곡도같이 변화하여 되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몸의 존재론이다. 환의 존재론, 괴뢰의 존재론이다. 여섯 드틀도 환화같다고 한다. 눈을 비비고 허공을 보면, 허공에 뭔가 어른거린다. 그게 허공의 꽃이다. 대개는 금새 없어진다. 안개나 구름, 바람이 불면 걷힌다. 곡도같이 된 빈 몸이 드틀에 버믈고 비비는 일이다. 곡도가 환사가 되어 다시 곡도를 지어낸다. 아무튼 국어사전을 보면 ‘꼭두’라는 말도 있고, ‘곡두’라는 말도 있다. ‘꼭두’는 괴뢰이고 ‘곡두’는 환(幻)이다. 

곡두

환영(幻影), 눈 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꼭두나 곡두, 국어사전은 모두 언해불전의 ‘곡도’에서 어원을 찾는다. 이 두 말은 본래 같은 말이었다. 환(幻)이라는 글자는 ‘본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만든, 또는 만들어진 것’을 가리킨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르자면, ‘대가리는 있는데 얼굴이 없는 것’이다. 빈대가리가 환(幻)이고 곡도다. 미국의 신문이 그린 자유대한의 대통령, 열어 보니 대가리가 비었다. 빈대가리 안에 엉뚱한 게 들었다. 엉뚱한 것이 대가리를 조종한다. 자유대한의 대통령은 괴뢰였다. 곡도였다.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말도 나왔다. 농단(壟斷)은 깍아 지른 듯 높은 언덕을 가리킨다. 높은 자리에서 보면 온 세상이 다 보인다. 조감(鳥瞰)이란 말도 있다. 높이 나는 새는 세상을 한 눈에 본다. 삼차원의 공간, 바닥을 기는 자잘한 짐승들은 모른다. 차원이 다르다. 나는 놈들, 그래서 대놓고 잡아 먹는다. 농단은 높은 자리에서 보고 세상이나 시장을 독점하는 일을 가리킨다. 대놓고 잡아 먹는 일이다. 바닥을 기는 자들, 어떻게든 기어 올라야 한다. 오를 수 있는 데까지 기어 올라 내려 봐야 한다. 그래야 살혬이 나온다. 저도 살고, 남도 잡아 먹을 수 있다. 그런 게 농단이다. 대통령의 얼굴대가리, 또는 빈대가리, 우리 신문은 농단이라고 읽는다. 미국 신문은 퍼핏이라고 읽는다. 언해불전의 말투라면 괴뢰이고, 곡도이다. 높이 나는 이들도 대가리가 텅 비었다. 그냥 잡아 먹는다. 요즘엔 그런 걸 좀비라고 부른다. 이게 다 빈말이 아니다.

한국불교는 선종(禪宗), 선불교라고 한다. 선불교 가운데서도 임제(臨濟 767-866)라는 스님의 법맥을 따른다고 한다. 곡도의 노래는 임제의 노래이다. 그만큼 유명한 노래다. 물론 도 닦는 스님들한테나 유명한 노래겠다. 조선의 함허가 당나라 임제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임제 뿐만이 아니다. 불교책에는 이런 노래가 정말로 많다. 온갖가지 괴뢰와 곡도가 등장한다. 빈대가리 쪼는 신세, 이게 참 속절없고 부질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염없이 사람을 잡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 이런 상상은 아깝다. 빈대가리 쪼는 세상에, 이만한 놀이, 이만한 공부도 드물다. 게다가 재미도 있다. 언해불전의 곡도 노래, 곡도 놀욤, 그래서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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