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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투/기관목인 판타지

02_기관의 발동

제임스 와트의 기관

기관목인 판타지

발동기(發動機)라는 말이 있다. 동작, 움직임을 일으키는 기계이다. 물건을 움직이려면 힘을 더해야 한다. 자동차건 비행기건 로케트건, 움직이는 기계라면 이런 장치가 있어야 한다. 요즘에는 엔진이라고 부른다. 말에도 유행이 있고 인플레도 있다. 발동기란 말은 촌에서나 끌고 다니는 경운기랄까, 뭔가 질이 좀 떨어지는 구닥다리 느낌을 준다. 아무튼 발동기에 움직임을 일으키는 일, ‘시동을 걸다’라고 부른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이며,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이며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니라

지나간 마음을 얻지 못하리며, 나타 있는 마음을 얻지 못하리며, 아니 온 마음을 얻지 못하나니라.


세 마음을 어루 얻디 못하리니, 불을 헤쳐 바다의 뜬 거픔을 얻음 같도다. 비록 세간에 없는 추기(樞機)라도 이에 다다라서는 다 모로매 어즐하나니라.


추기(樞機)는 발동할시니, 말하기를 니라니라.

추(樞)는 지두리오, 기(機)는 궁노(弓弩)의 튕기는 것이라


지두리는 지도리의 옛말이다. 문지도리, 문이 매달리는 자리이다. 돌쩌귀라는 말도 있지만 대개는 ‘경첩’이라고 부른다. 기관(機關)의 관(關)은 관절의 뜻이라고 했다. 문지도리는 말하자면 문의 관절이다. 문에 힘을 주면 지도리를 따라 문이 돌아간다.

추기(樞機)라는 말도 재미있다. 요즘에는 주로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을 가리킨다. 추기경은 카디널(Cardinal)을 번역한 말이다. 라틴어로 카르도(Cardo)가 ‘지도리’란다. 궁노(弓弩)는 활과 쇠뇌를 가리킨다. 활은 손가락으로 줄을 튕긴다. 쇠뇌에는 방아쇠가 있다. 쇠를 튕기면 줄이 튕긴다. 줄이 튕기면 화살이 날아간다. 튕김이 시동이고, 날아 감은 발동이다. 추기는 ‘지도리를 튕김’이다. 시동이다. 그래서 방아쇠를 쥔 사람, 일을 결정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무거운 일을 하는 높은 사람이다.

한 때, 김정은과 트럼프는 ‘책상 위의 버튼’을 두고 서로 큰 소리를 쳤다. 추기는 말하자면 버튼을 가진 사람이다. 버튼을 누르면 핵폭탄도 날아가고, 다이어트 코크도 날아 온다. 추기는 그런 사람이다. 요즘엔 키맨(keyman)이란 말도 쓴다. 열쇠를 쥔 사람이다. 이런 말이 다 기(機)란 글자에 걸려 있다. 움직이지 않던 물건을 튕겨 움직임을 일으킨다. 기(機)는 그 순간을 가리킨다. 순간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은 그냥 시간이 아니다. 움직이는 건 튕기는 줄이다. 문짝이다. 로케트이고 다이어트 코크다.

위의 구절은 『금강경삼가해』의 구절이다. 제 마음의 흐름을 관찰한다. 과거의 마음, 현재의 마음, 미래의 마음을 가리라고 한다. 그 바뀌는 기(機)를 찍으라고 한다. 콕 찍어서 말해 보라고 한다. 말이 쉬워 관찰이지 이게 장난이 아니다. ‘세간에 없는 추기’, 그만큼 찾아 보기 힘든 사람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이런 자리에 서면 천하에 없는 추기라도 어즐해진다. 망연(茫然)을 ‘어즐하다’라고 새긴다. 머리가 하얘진다는 말이다. 기(機)를 찾을 수 없다면 찍을 수 없다. 말할 수도 없고, 시동을 걸 수도 없다. 기(機)를 놓치면 어즐해진다.

줄을 튕기면 화살이 날아간다. 줄을 튕기는 건 그냥 손가락이 아니다. 눈으로는 겨냥한다. 두 팔의 힘줄은 당겨대는 줄의 힘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딱 멈춰야 한다. 온 몸의 힘줄도 따라서 멈춘다. 재채기라도 난다면 그만이다. 그래서 숨도 멈춘다. 눈의 겨냥에 따라 온 몸이 과녁을 향한다. 손가락의 힘이 풀리면, 그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한번 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손가락에 집중한다. 이것은 기회(機會)이다. 기(機)에 착 달라 붙는 일이고, 기(機)를 꽉 붙드는 일이다.

발동기나 궁노에만 시동이 있고 발동이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움직이는 물건에는 시동과 발동이 있다. 동물을 잡아 먹고 사는 동물, 그들은 제 몸으로 먹이를 잡는다. 펄펄 뛰는 먹이들이다. 그래서 가만히 다가간다. 갈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간다. 그리고는 제 몸을 감춘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냄새를 풍겨서도 안된다. 몸을 웅크린 채 기회를 엿본다. 먹이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시동을 건다. 온 몸을 담박에 발동한다. 한번 놓치면 그만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번 두번, 기회를 놓친다면 지쳐 굶어 죽는다.

기관(機關)이라고 하는 것은, 기(機)는 기미(機微)로,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관(關)은 관절(關節)로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므로 번뇌로 맺어진 몸과 입은 모두 생각이 움직여 작업(作業)하는 것이다.


물음: 기(機)과 기(器)는 어떻게 다른가?

대답: 둘 다 비유이니 각각 한가지 뜻이 있다. 기(機)는 발동의 가능성을 비유한다. 기(器)는 (움직임을) 맡아 하는 것을 비유한다. 사람의 몸을 그릇이라고 한다.


기미(機微)라는 말은 『주역』에서 빌어온 말이다. ‘기(幾)라는 것은 미세한 움직임’, 시동이 걸리고 발동이 이뤄지는 순간의 미세한 움직임이다.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는 기미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먹이감이 낌새를 채면 기회는 날아간다. 사람에게도 맹수에게도 몸이 있다. 몸은 기(器), 그릇이다. 몸에는 관절이 있다. 관절이 혼자 저절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힘이 있어야 하고, 시동과 발동이 있어야 한다. 동물의 몸에는 시동과 발동의 조건, 장치가 있다. 잠재된 힘이 있다. 그래서 동물의 몸은 기기(機器)이다. 움직임의 잠재력, 시동과 발동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몸이다. 사람도 동물이다. 따라서 사람도 기기(機器)이다. 여기저기 기(機)를 튕기고 다닌다.

부처님: 현호(賢護)여,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든 기관이 하나로 묶여 갖가지 행동을 한다. 혹은 걷고 달리고 뛰기도 하며, 혹은 펄쩍 뛰어 춤을 추기도 한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관이 하는 행동은 누구의 힘인가?


현호: 저는 지혜가 좁고 얕아서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이는 모두 작업(作業)의 힘이란 걸 알아야 한다. 작업(作業)에는 얼굴이 없다. 다만 아롬으로 움직이는 것뿐이다. 이렇게 몸의 기관(機關)은 식(識)의 힘으로 여러 가지 사업(事業)을 짓는다. 모든 생명들이 지어내는 행위는 모두 식의 힘에 붙는다. 식이 몸을 낳을 수 있는 것은 마치 기관(機關)을 만드는 것과 같다.


기관목인 판타지, 이 오래된 비유와 이야기들은 저 물음을 싸고 돈다. 내 몸이 지어내는 작업, 또는 사업, 그 일을 관찰하는 일이다. 기(機)를 튕겨대는 그릇의 이야기이다. 이런 일을 관찰하는 까닭은 기(機)를 한번 튕기면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업보(業報)라고 부른다. 업(業)은 짓이다. 보(報)는 짓의 결과이다. 한번 튕기면 돌이킬 수 없다. 버튼을 한번 누르면 뭔가가 날아간다. 다이어트 코크가 날아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핵폭탄이 날아가면 다 죽는다. 그래서 거듭 묻는다.

기관이 하는 행동은 누구의 힘인가?


튕김의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기기(機器)이다. 기를 튕겨대는 그릇이다. 쉴 틈없이 기를 튕겨댄다. 하물며 잠을 자면서도 기를 튕긴다. 꿈에서 튕겨대던 기가, 깨어서도 이어진다.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깸일까? 그것조차 헷갈린다. 튕기는 몸이 이렇게 무섭다.

옛날 어떤 절에 법사가 있었다. 지혜와 신통으로 말솜씨는 교묘하고 논리는 정연하여 논쟁과 문답을 잘 하였다. 사람의 수준에 맞춰 설법을 해 주면 모두가 기뻐했다.(중략)


저 음녀(淫女)는 한창 나이로 단정하고 총명한 지혜가 비범하여 세상의 논의들을 잘 알았다. 여인은 64가지 예능에 모두 통달했다. 어머니가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음녀: 지금 왜 이렇게 우울하세요?

어머니: 요즘 성에 사는 사람들이 (법사의) 법문 듣기를 좋아하여, 우리한테는 가까이 오고 가지도 않는구나. 재물이 텅 비어도 채울 길이 없으니, 그래서 내가 우울하다.

음녀: 제가 이제 싁싁한 모습으로 그 법회에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음녀(淫女), 색(色)을 팔아 먹고 사는 여인들, 불교책에는 의외로 음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당시 인도에서도 음녀는 제법 괜챦은 비즈니스였던 모양이다. 큰 돈도 벌고, 기세도 당당하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인기 절정의 기녀(妓女), 그리고 지혜와 신통에다, 말솜씨까지 고루 갖춘 법사, 두 사람이 몸을 두고 맞붙는다. 둘이 맞붙는 이야기, 불교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참 많다.

정성스레 목욕을 하고 온갖 향을 뿌렸다. 영락으로 장식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꽃다발을 둘렀다. 갖가지 보배로 장식한 신발을 신고, 오른 손에는 지팡이를 짚으니 걸음걸이가 요염하고 앳되었다. 


건들건들 농염한 자태에다 갖가지로 치장을 하니 꽃나무가 걷는 것 같고, 마치 하늘나라 사람 같았다. 시종들도 모두 꽃다발과 영락으로 몸과 옷을 장식하니 다들 지극히 아름다웠다. 시종들은 혹은 금으로 만든 병을 들고, 혹은 부채를 들고, 혹은 향과 꽃을 들고 저 음녀를 따랐다. 여러 기녀들이 음녀를 둘러싸고 웃고 시시덕거리며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기도 했다.


법사는 순백의 머리에 긴 눈썹이 눈을 가렸다. 몸의 여러 기관들을 잘 가다듬어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다. 사자의 왕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 게송을 읊었다.


사자의 왕과 같은 법사의 몸은 수천이나 되는 대중을 압도한다. 하지만 음녀가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남자들의 반응은 빠르다. 웅성거리는 사이로 감탄의 노래들이 튀어 나온다. 음녀의 몸에 사로잡힌 욕망의 언어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음녀의 몸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순간, 법사의 몸, 법사의 노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법사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눈썹을 걷고 음녀의 몸을 바라본다.

공각기동대 속편 이노센스. 남자의 성욕을 채워주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가이노이드. 제 몸의 속을 제 손으로 뜯어 드러내 보인다.


네가 묘한 낯빛으로, 사내무리 홀렸지만

살과 살갖 모두 변해, 해골만이 남았구나


뽀얀 자태 즐거워도, 이 것이 참모습

해골은 하얀 옥돌 같고, 꼬라지는 연꽃 뿌리

뼈는 앙상하고, 두 뺨은 깊은 도랑


기관(機關)은 풀려나가 힘줄, 핏줄 얼기설기

그 속의 내장들은,허공에 덜렁덜렁


법사는 신통의 힘으로 음녀의 몸을 바꾸어 버린다. 탱탱하고 매끄러운 살갗을 벗겨내고 살을 발라내 백골의 몸으로 만들어 버린다. 비웃고 조롱하는 노래, 백골 음녀는 그제야 법사를 향해 뼈만 남은 손을 모은다.

어깨에서 쐐기 하나를 뽑아내자, 기관(機關)이 해체되어 땅 위로 흩어졌다. 

임금은 경악하여, “이 몸이 어쩌다 재목(材木)에게 화를 냈단 말인가?” 라고 탄식했다.


공교(工巧)의 기관목인, 그 뿌리가 이렇다. 멀쩡한 몸도 쐐기 하나로 무너져 내린다. 재주가 되었건 신통이 되었건 노래의 뜻은 분명하다. 기(器)의 몸과 기(機)의 몸, 그 차이를 번득하게 관찰하라는 말이다. 쐐기 하나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기관목인의 몸, 백골음녀의 몸만이 아니다. 시동하고 발동하는 몸의 정체, 돌이켜 보면 재주랄 것도 신통이랄 것도 없다. 튕겨내는 순간에 몸이 바뀐다. 음녀가 되기도 하고 백골이 되기도 한다. 법사의 신통이라지만, 그의 몸도 기(機)의 그릇이다. 그의 몸도 튕기는 몸이다. 그의 튕김으로 어느 순간, 음녀의 몸으로 바뀔 수도 있다. 튕김이 몸을 지어낸다. 기관목인 판타지는 그런 이야기이다.

기(機)의 순간, 튕기는 순간에 몸이 바뀐다.

01_기관목인 판타지 - 03_기관목인 누구를 브트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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