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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06_01 고기의 몸, 곡도의 몸

증도가 현각의 노래

곡도같이 된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니


환신(幻身)이 곧 법신(法身)일새 밖이 없고,

법신(法身)이 곧 환신(幻身)일새 안이 없느니라.


공신(空身)과 법신(法身), 영가는 대뜸 '몸'을 들이댄다. '공신(空身)과 법신(法身)'은 '무명(無明)과 불성(佛性)'의 짝으로 쓰인다. 이런 말, 불교책을 읽으려면 꼭 알아야 할 열쇠말이다. 이런 말을 볼 때마다, 솔직히 나는 엄청 헷갈렸다. 엄청 시달렸다. 이런 말을 편하게 쓰는 사람들을 보면, 놀랍고 부러웠다. 왜 나만 모르지? 그래서 세종이 두 아들과 이런 말을 읽고, 이런 말을 우리말로 번역했다는 구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또 놀랐다. 억불의 조선, 저 이들이 불교책을 얼마나 봤다고, 저런 구절, 저런 말을 척척 읽고, 척척 번역했단 말인가? 그들의 속이야 누가 알겠나? 그 들의 번역과 풀이 안에서 짐작해 볼 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무명이 바로 불성임을 알았다면, 환신(幻身)이 곧 법신(法身)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교학(敎學)에서는 법신을 다섯가지 법신으로 나눈다. 첫째는 계(戒), 둘째는 정(定), 셋째는 혜(慧), 넷째는 해탈(解脫), 다섯째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다.


전해오는 말에 이르기를 '지(智)가 지(智)가 진경(眞境)에 어울어 법(法)이 다 몸이 될새, 이르되 법신(法身)이라'고 했다. 일체의 법을 알 수 있고, 일체의 법을 모도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훤히 아는 사람은, 부모님이 인연으로 낳아 주신 곡도의 몸이 곧 '금강석처럼 덛덛하고 깰 수 없는 몸'임을 안다. 그래서 '곡도같이 된 빈 몸이 곧 법신이니'라고 했다.


이 구절은 『증도가사실』에서 인용하는 언기(彥琪)의 풀이이다. 말이야 세종의 말투를 따라 새겨 보았지만, 해 놓고 보니 미안하다. 이건 갈수록 태산이다. 다섯가지 법신,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덛덛한 몸, 말이 풀이이고 주석이지, 주먹을 들이대니 칼과 총이 나온다. 대포를 들이대면 핵폭탄이 나온다. 대장경을 이잡듯 뒤져도 답이 없다. 이런 말에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길이 없다. 이런 풀이, 언해불전은 '노릇의 말씀'이라고 한다. '말씀의 똥'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글, 이런 노래를 뭐하러 부를까? 말과 말에 속고 속이고, 속절없고 부질없다.

전왈(傳曰) 지명진경(智冥眞境) 진법위신(盡法爲身) 고왈법신(故曰法身)

예 이르되, 지(智)가 진경(眞境)에 어울어 법(法)이 다 몸이 될새, 이르되 법신(法身)이라.


세종도 『증도가사실』, 언기의 주석을 읽었다. 앞 뒤의 긴 이야기는 다 빼 버린다. 그리고, 저 구절만을 따 왔다. 이런 게 세종의 '투'이다. 말로 부르는 노래, '노릇의 말씀'을 아주 피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저 앞 뒤의 말, 몰라도 된다. 없어도 되는 말, 낄 필요없다. 다른 참고서나 사전 없이, 노래를 듣고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이런 게 세종의 투이다. '곡도같이 된 빈 몸'이란 우리말 새김도 그렇게 나올 수 있었다. 환(幻)이니, 공(空)이니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말이라면, 새로 배워야 할 말이라면, '곡도'나 '빈'으로 배워 쓰면 된다. 한자말을 줄이고, 우리말투에 맞게 배우고 익히면 쉽다.

마치 솜씨 좋은 환사(幻師)가 네거리에서 기와 조각이나 풀잎, 나무 따위를 모아 갖가지 환화(幻化)의 일을 지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몸이라든지, 말의 몸, 수레의 몸, 걷는 몸과 마니, 진주, 유리, 나패, 벽옥, 산호 등 갖가지 재물과 창고 따위의 몸입니다.


어리고, 아둔하고, 나쁜 꾀만 가진 중생들은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와 조각이나 풀잎, 나무로 벌이는 갖가지 환화의 일을 보고 들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보이는 코끼리의 몸은 실제로 있는 것이다. 말의 몸이나 수레의 몸, 걷는 몸도 실제로 있는 것이다.......'


환(幻)이라는 글자는 인도말의 마야(māyā)를 번역한 말이다. 저런 일이 환이다. 환을 지어내는 사람, 요즘에는 마술사나 요술사라고 부른다. 신비한 주문, 신비한 힘으로 환을 지어 낼 수도 있다. 눈속임으로 환을 지어낼 수도 있다. 인형에 가는 줄을 달거나, 복잡한 기관장치를 달아 몸을 놀릴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다 환화이고 , 환화의 일이다. 환화의 일은 비유이다. 어찌 보면 불교에서 가장 흔한 비유라고도 할 수 있다. 언해불전은 저런 일을 모두 '곡도'라고 새긴다. 신비한 환술도 '곡도'이고, 눈속임 쇼도 곡도이다. 줄이나 기관으로 놀리는 괴뢰나 기관목인도 다 곡도이다. 환화(幻化)라는 말은, 환으로 지어낸다는 말이다. 그런 일을 비유하기 때문에 '곡도 같이 된'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나아 주신 몸은 육신(肉身), '고기의 몸'이라고 부른다. 생신(生身), '낳은 몸'이라고도 한다. 타고난 제 몸, '자연의 몸'이라고도 한다. 내가 타고난 고기의 몸, 태어난 세계 속에서 변화하는 몸이다. 예를 들어 기와 조각이나 풀잎, 나무 조각도 몸을 갖고 있다. 살을 가진 몸이다. 환사는 이 몸을 가지고 코끼리의 몸을 짓는다. 이 몸은 환화의 몸, 환신(幻身)이다. '곡도로 된 몸'이다. 곡도로 된 몸은 우리의 몸을 비유하는 말이다. 타고난 육신이 이 세계와 간섭하는 사이에 변화하는 몸을 비유한다. 기와 조각 같던 몸이 인연을 만나 코끼리의 몸이 되기도 하고 말의 몸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몸은 육신이면서, 환신이다. 타고난 몸이면서 환화한 몸이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