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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14_01 게여운 거짓말

증도가 현각의 노래


하다가 거짓말 가져, 중생(衆生)을 속이면

내 진사겁(塵沙劫)에 혀 뽑힘을, 부르리라 하시니


'배움그쳐 하염없은 겨르로운 도인은' 알듯 말듯 어려운 노래를 부른다. 도인의 말 치고는 시작부터 위엄, 싁싁함이 지나치다. 그러다 문득, 이 구절이다. 망어(妄語)를 '거짓말'이라고 새긴다. 발설(拔舌)은 '혀 뽑힘'이다. 이 것도 지옥의 일이다. 자초(自招)는 '내 부르리라'이다. '나'는 물론 영가현각이다. 누가 뭐랬나? 누구는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다지만, 이 늙은이, '내 말이 거짓말이라면, 세세생생에 내가 지옥에 가지', 큰 소리를 친다. 이 게여운 늙은이. 실상을 알면 지옥도 없게 한다더니, 지옥은 또 무슨 지옥? 그래도 문득 속이 편해진다. 이건 말도 쉽고 뜻도 쉽다. 어차피 지옥 갈 일은 없다. 혀 뽑일 일도 없다.

곁의 사람은 오히려, 늙은 할매 마음을 웃나다


이 노래, 멀고 넓은 아시아의 말투, 부처의 말투와 조사의 말투를 자유자재 넘나든다. 이럴 때의 자유(自由)는 '쥬변답다'이다. 『증도가남명계송』, 영가현각의 노래에 남명법천이 구절마다 제 노래를 덧대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구절마다 떼어 읽는다. 하지만 이 두 구절, 떼어 읽으면 뜻이 끊어진다. 게여운 늙은이의 게여운 말투, 맛이 사라진다. 노파심절이란 말, '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이란다. 남자 선사들의 말투이다. '늙은 할매의 마음'을 비웃는 말이다. 고약한 말투, 어디 할매 뿐일까? 저 할배는 중생을 걱정하고 염려한다. 기이할셔, 브즐우즐하신 부처도 그랬다. 노파심절, 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한다. 그래 봐야 소용없다.

오직 함령(含靈)이, 꺼져 떨어짐을 면콰뎌


남명은 저 할배의 마음을 이렇게 노래한다. 기이하며 기이할셔, 석가모니의 사자후와 똑 같다. 이 할배의 노래, 함허는 '살고 죽는 바다의 가운데를 향하여, 밑 없는 배를 타고, 구멍없는 저를 부시니'라고 노래했다. 부처의 말투를 선사의 말투로 노래한다. 할매의 마음, 할배의 마음, 웃을 일만은 아니다. '꺼져 떨어짐', 모르면 지옥이다. 모르면 윤회이다. 알 수 있는 데 왜 모를까? 늙은 할배는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른다. 지옥에라도 가겠다.

실상(實相)을 갓 증(證)하면 하마 중(重)한 업(業)을 슬리라는 말이 실(實)로 상녜 뜻에 어길새, 맹서(盟誓)하샤 깊이 알외시니라.


언해의 풀이는 훨 친절하다. 지옥의 중한 업, '슬다'는 '스러지다', '사라지다'는 말이다. 이미 스러진 것, 그런 걸 걸고 큰소리치는 할배, 밑도 없고, 구멍도 없는 속절없는 큰 소리겠다. 뜻에 어기는 노래, 그래서 맹서라고 풀이한다. '알외시는 말', '알게코자' 하는 말이라고 부른다. 불쑥 끼어 든 할배의 맹서, 이 노래의 별미랄까?

피와 기분(氣分)의 류(類)는 반드시 아롬이 있고, 무릇 아롬이 있는 것은 반드시 체(體)가 한가지이니


『원각경언해』의 구절이다. 언해불전의 구절이지만, 이건 유교의 경전 『예기(禮記)』에서 빌어온 말이다. 함령(含靈)은 '영(靈)한 성(性)을 가졌을새'라고 새긴다. 영(靈)이란 글자, 성(性)이란 글자, 다 헷갈리는 말이다. '반드시 아롬이 있고', 이런 것이 언해불전의 말투이다. 알 수 있는 능력, 영(靈)이라고도 부르고, 성(性)이라고도 부른다. 늙은 할배의 공연한, 속절없는 큰 소리, 브즐우즐하신 자비가 담겼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