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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투/몸을 바꾸어라

또 하나의 구름누비

몸을 바꾸어라

제 그러히 뫼햇 중의, 집에 고요히 앉아


가쁘거든 곧 겨르로이 졸고, 목 마르거든 곧 차(茶)로다

더위 가고 추위 옴에, 있는 배 므스고

한 올의 구름누비, 이 생애로다


언해불전 가운데 『증도가남명계송(證道歌南明繼頌)』이란 노래 책이 있다. 세종이 두 아들과 함께 '국어로 번역'했다는 책이다. 무척 긴 노래, 두 스님이 함께 불렀다. 『증도가』는 당나라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 지은 320 구절의 노래이다. 언해불전은 '도를 증한 노래'라고 새긴다. 언해본에는 한 구절이 없다. 워낙 오래 되고 널리 알려진 유행가라, 전해지다 보면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이 노래의 구절마다 송나라 남명법천(南明法泉)이 제 노래를 이어 불렀다. 나는 이 노래를 보면 재즈의 즉흥 연주가 떠오른다. 『증도가』는 말하자면 레전드다. 영가현각이 한 구절을 부르면, 남명법천이 받아 부른다. 첫 구절은 영가의 노래이다. 아래 세 구절은 남명의 노래이다. 뫼햇 중의 노래를 구름누비의 노래로 받는다. 그 아래에는 언해불전의 노래와 풀이가 이어진다. 당나라와 송나라, 영가와 남명 사이에는 4백년의 세월이 있다. 고려와 조선, 다시 4백년, 그렇게 이어 부르던 유행가였다.

운납(雲衲)이란 말을 '구름누비'라고 새긴다. 운수(雲水), '구름 가듯, 물 흐르듯',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다. 참선 수행을 하는 선종의 스님을 가리킨다. 스님들은 석달마다 결제와 해제를 한다. 석달은 한 곳에 머물며 수행을 한다. 그리고 석달은 다른 곳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간다. 가르침을 찾아 간다. 납(衲)은 스님들이 입는 옷이다. 언해불전은 '누비'라고 새긴다. 요즘의 누비이불이나 누비옷이 아니다. 분소의, 똥을 닦고 버린 천, 더러운 천을 모아, 기워 만든 옷이다. 그래서 요즘 스님들은 '누더기'란 말을 즐겨 쓴다. 한 올의 누비옷, 더위 가고 추위 옴에, 그것 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 소유(所有)를 '있는 배'라고 새긴다. 한 올의 누비, 소유랄 것도 없다. 도리어 무소유를 상징한다. 그래서 한 올의 누비옷으로 구름가듯, 물 흐르듯 한 생애를 살아가는 스님들을 운수납자, 줄여서 운납이라고 부른다. 『증도가남명계송』, 영가와 남명의 노래도 맛이지만, 우리에겐 구름누비, 이런 말이 또 별미이다.

현각은 도착하자 주장자를 떨치고 병을 들고서 육조 혜능 스님을 세 바퀴 돌고는 우뚝 섰다.


육조: 무릇 사문은 삼천 가지의 위엄과 팔만 가지의 섬세한 행동을 갖춰야 하는데, 대덕은 어디서 왔길래 이렇게 건방진가?

현각: 나고 죽는 일은 큰일인데, 멈춤이 없이 매우 빠릅니다.

육조: 어째서 나지 않는 도리를 체득하고, 빠르지 않은 도리를 알지 못하는가?

현각: 체득하면 바로 나지 않고, 알면 본래 빠르지도 않습니다.

육조: 그래, 그래.


이 모습을 보고 대중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현각은 그제서야 위엄을 갖추어 육조스님에게 예배를 했다. 그리고는 바로 작별을 고했다.


육조: 뭐가 그리 빠른가?

현각: 본래 움직이지도 않는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육조: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아는가?

현각: 스님께서 분별을 지으시는군요.

육조: 그대가 나지 않는 생각을 깊이 얻었구나.

현각: 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생각이 있겠습니까?

육조: 만일 생각이 없다면 누가 분별을 내겠느냐?

현각: 분별 또한 생각이 아닙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좋아, 좋아!’, 칭찬했다.  


하루라도 묵어 가라고 권했다. 그래서 다들 그 스님을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불렀다.


영가현각(永嘉玄覺), 『증도가』를 부른 바로 그 스님이다. 위의 그림, 왼편에 서 있는 젊은 스님은 영가현각이다. 오른편에 앉아 있는 지긋한 스님은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이다. 이 장면도 아주 유명한 장면이다. 먼저 아래 지도를 보자. 육조혜능은 광동성의 조계산에 살았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 조계종이다. 송광사가 자리잡은 산도 조계산이다. 한국불교의 뿌리가 바로 저 조계산이고 육조혜능이다. 아무튼, 'A'의 자리가 조계산이다. 현각은 'B'의 자리에서 운수를 시작했다. 절강성의 온주(溫州)라는 곳이다. 저 길은 그냥 구글 맵에서 찾아 본 길이다. 그래도 1,200 Km의 거리이다. 현각은 저 거리를 저 모습으로 걸었다. 현각은 다만 '육조혜능', 이름 밖에 몰랐다. 그는 오직 그 이름을 만나러 저 길을 갔다. 만나면 물어 볼 게 있었다. 영가현각의 길, 이런 것이 '구름누비의 생애'였다.

세 바퀴를 도는 일, 우요삼잡(右繞三繞)이라는 인도의 전통이다. 성스러운 스승이나 신상등에 대한 예배를 드리는 형식이다. 우리나라의 탑돌이도 이런 전통으로부터 왔다. 현각은 세 바퀴를 돌았다. 아마커나 혜능에게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예의란 게 뭔가? '제 그러히' 지내는 스님들, '제 그러히'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게 예의이다. 지팡이나 병이라도 내려 놓고, 몸가짐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런데 현각은 1,200 Km, 구름누비의 모습 그대로 대뜸 혜능을 쳐들어 갔다. 현각은 혜능의 '제 그러히'를 건드렸다. 현각이 찾아 왔고, 현각이 간섭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혜능이 현각을 탓한다. 하지만 현각은 그런 거 따질 겨를이 없다. 먼 길을 왔고, 얼른 또 돌아 가야 한다. 세 바퀴 돌았으면 그만 아닌가? '그래 그래', 노스님 혜능은 흐뭇하다. 이런 것이 구름누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이제 소통은 끝났다. 혜능도 통했고, 현각도 통했다. 먼 길을 온 보람이 있다. 현각은 하루 밤을 자고 제 그러한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숙각, '하루 밤의 아롬'은 현각의 별명이 되었다. '도(道)를 증(證)한 노래도 그 아롬으로부터 나왔다. 이 일, 이 야기는 영가현각의 구름누비이다.

현각의 구름누비, 이 이야기를 길게 꺼내는 까닭은, 또 다른 한 올의 구름누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현각의 한올 구름누비는 싁싁하고 훤하다. 한 번의 만남으로 노스님은 스승이 되고 젊은 스님은 제자가 된다. '구름 가듯 물 흐르듯', 먼 길을 가고 온 보람이 있다. 그리고 혜능의 '제 그러히'는 현각의 '제 그러히'가 된다. 혜능의 노래는 현각의 노래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려는 또 한올의 구름누비는 그렇지 못하다. 먼 길을 온 보람이 없다. 돌아 갈 곳도 없다. 하염없는 구름누비, 하염없이 또 가야 한다.

구지(俱胝)스님이 무주 금화산에 머물 때였다. 실제(實際)라고 하는 비구니가 구지스님이 머물던 암자로 찾아 왔다. 실제 비구니는 삿갓을 쓰고 석장을 짚은 채로 구지 스님을 세 바퀴 돌았다.


실제: 한 마디 이르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실제 비구니가 세 차례를 물었으나, 구지 스님은 한번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실제 비구니가 바로 떠나려고 했다.


구지: 날도 저물어 가는데 하루 묵어 가시오.

실제: 한 마디 이르신다면 묵어 가겠습니다.

구지 스님은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구지 스님은 비구니가 떠나간 뒤에, 한탄을 했다.

내가 비록 장부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장부의 기세는 없구나.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공부를 하러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비구와 비구니, 남자 스님과 여자 스님을 나누어 부르는 이름이다. 예전에는 남자 스님은 그냥 승(僧), 여자 스님은 그냥 니(尼)라고 불렀다. 현각의 한 올 구름누비를 길게 꺼낸 까닭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구의 구름누비도 있었지만, 비구니의 구름누비도 있었다. 현각의 구름누비는 말하자면 불교의, 아시아의 영웅담이다. 게여운 수컷의 멋진 이야기이다. 이에 비해 실제의 구름누비,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왜 그럴까? 두 개의 구름누비를 나란히 세우는 까닭은 이야기가 똑 닮았기 때문이다. 먼 길을 걸어 산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물어 보려고 한다. 위의 두 그림, 마주치는 장면이 똑 닮았다. 방 안에 지긋한 스님이 앉아 있다. 석장, 지팡이를 든 스님이 밖에 서 있다. 지팡이를 든 사람은 세 바퀴를 돈다. 혜능은 '건방지다', 탓을 한다. 이에 비해 구지는 멀뚱이 앉아만 있다. 똑 같은 구름누비라지만 이게 참 희한하다. 그래서 궁금하다.

진석이립(振錫而立) 목격이도존의(目擊而道存矣)

막대 흐늘고 서, 눈 닿음에 도 있거늘


현각이 육조를 만나는 장면, 언해불전은 저렇게 그린다. 석장이니 주장자니 그저 '막대'라고 새긴다. '막대 흐늘고 서', 이 구절은 현각을 상징한다. 현각과 육조의 만남을 가리킨다. 목격이도존(目擊而道存), 『장자(莊子)』의 구절이다. 나고 죽는 일에 바쁜 현각, 예의를 갖출 틈도 없다. 눈이 닿으면 도가 있다. '막대 흐늘고 서', 그러면 된 것이다. 일숙각이 남긴 일숙각의 냇보람이다.

실제의 구름누비, 언제적 일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앞뒤를 맞춰 보면 현각의 구름누비로부터 백년 안쪽에 있었던 일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실제는 현각의 일, 현각의 냇보람을 들어 알고 있었다. 세 바퀴를 돌고 '막대 흐늘고 섰다.' 현각이 했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한다. '눈 닿음에 도 있거늘', 이제 앉아 있는 스님이 탓을 해야 할 차례이다. 그러면 삿갓을 벗고 스승의 예를 올리면 된다. 그런데 앉아 있는 스님, 탓은 커녕 말도 없다. '앗! 이건 또 뭐지?' 그래서 다시 묻는다. 세 차례를 거듭 물었다고 한다. 깊은 산속 날도 저무는데 어디로 가나? 그래도 구지는 인정은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 밤 묵어 가라고 한다. 이건 또 혜능이 했던 말과 같다. 앞 뒤의 틀이 똑 같다. 그런데 그 가운데가 비었다. 빈대가리, 바쁜 실제는 어디론가 다시 가야 한다. 그래야 구름누비이다.

미안해요 세종

서르 사맛디 아니할새

훈민정음의 서문, 세종의 말씀이다. '사맛다', 유통(流通)이란 말이다. 사맛는다면, 흐르고 통한다면 편안해진다. 남녘의 대통령은 이 말 앞에서 북녘의 위원장을 맞았다. '사맛지 못한' 현실을 고치자는 말이다. 그래서 편안하지 못한 나라를 편안한 나라로 바꾸자는 말이다. 참 훤하고 번득하다. 고치고 바꾸는 일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세종이 남긴 말씀이다.

내가 비록 장부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장부의 기세는 없구나.


현각과 혜능은 서로 통했다. 사맛는다면 부처이다. 아무리 빠르고 바쁘더라도 하룻밤 정도야 쉬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실제와 구지는 통할 수 없었다. 바쁜 실제 쉬어 갈 틈이 없다. 구름누비라도 같은 구름누비가 아니다. 그럴 수는 있다. 통할 수 없다면 떠나면 된다. 구지의 '제 그러히', 돌아 가면 그만이다. 실제의 '제 그러히', '구름 가듯 물 흐르듯' 걸어 가면 된다. 통할 수 없는 사람, 통하지 못하는 일이 어디 실제와 구지 뿐일까? 그런데 구지가 남긴 한마디, 이게 참 고약하다. 이 한 마디가 다시 한참을 떠 돈다. 남진의 몸과 겨집의 몸, 게여운 천녀가 다시 떠오른다. '사맛디 아니할새', 그러면 이런 일도 생긴다. 이제는 구지가 몸을 바꿔야 할 차례이다.

게여운 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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