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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월인천강 사용법

7.4 미안해요 세종


건너지 못한 사람을 건너게 하며, 알지 못한 사람을 알게 하며, 편안하지 못한 사람을 편안케 하며, 열반 못한 사람을 열반 얻게 하리라.


미안자(未安者)를 영안(令安)하며

편안하지 못한 사람을 편안케 하며


이것은 부처의 소원이다. 부처의 네 가지 큰 소원이라고도 부른다. ‘편안하지 못한 사람’, 미안자(未安者)를 이렇게 새긴다. 이것은 언해불전의 소원이다. 네 가지 소원이라지만, 따져 보면 구태여 나눌 것도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게 해 주면 그만이다. 알면 건널 수 있다. 알면 뭐라도 할 수 있다. 제 스스로 뭐라도 할 수 있다면, 구태여 남의 도움이 없더라도 편안해질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계, 모르는 사람들, 제탓만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 가야 할 우리 모두의 탓이다. 알도록 도와 주는 일, 이 일이 바로 편안하지 못한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일이다. 이 일이 부처의 일이다. 부처의 일을 불사(佛事)라고 부른다. '편안하지 못한 사람을 편안케 하며',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르자면 이 일이 불사이다. 부처의 일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우리의 일이다.

사람마다 하여금 쉬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건 세종의 소원이다. 미안한 사람은 어린 백성이다. 미안한 백성의 임금 세종, 그래서 세종도 미안했다. 편안할 수 없었다. 혁명으로 세운 나라, 백성도 임금도 미안했다. 그래서 그는 미안한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 어린 백성들이 누구나 쉽게 배워 쉽게 쓸 수 있도록 말과 글을 다듬었다. 한문으로 쓰인 책, 누구나 아는 우리말, 우리글로 번역하여 널리 펴고자 했다. 나라의 말씀, 언해불전의 발문에서도 국어(國語)라고 부른다. 사전도 번역하고, 경전도 번역했다. 윤리와 법률과 의술에 대한 책도 번역했다. 스물 여덟 자의 글자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편안하지 못한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일, 언해불전은 그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불교를 배척해야 하는 조선의 지식인들, 세종의 일을 불사(佛事)라고 불렀다. 백성의 미안, 세종의 미안, 그 모두를 불사(佛事)의 틀 안에 가두려고 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나는' 세종 프레임'이라고 부른다. 실록의 사관들이 했던 일이다. 내가 읽었던 교과서에서도 읽었던 일이다. 미안한 백성의 미안한 임금, 미안한 세종은 뭐라도 하려고 했다. '세종 프레임'은 '불사 프레임'이다. 불사를 두고 다툼이 일었다. 사전도 법률도, 윤리도 의술도, 세종의 일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임금과 신하의 다툼은 계유정란의 피바람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야 한다던 세조, 그의 고집으로 언해불전의 일이 근근 이어졌다. 이 일은 부처의 일일까? 세종의 일일까? 세종의 말을 따르자면 이 일은 어린 백성을 위한 일, 백성의 일이었다. 그런데 편안하지 못한 어린 백성은 세종의 미안과 함께 잊혀져 버렸다. 세종의 우리말 사전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이런 게 늘 미안했다.

‘15세기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이 말을 참 많이도 하고 다녔다. 글을 쓰기도 했고 책을 내기도 했다. 언해불전은 물론 불교 책이다. 불교의 경전이고 고전이다. 언해불전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아, 불교 이야기로구나, 누구나 그렇게 듣는다. 불교를 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한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알 일이 아니라고 한다. 알아서 그렇고, 몰라서 그렇고, 다들 그저 그러려니 한다. 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꼬였다. 말만 꺼내면 '세종 프레임', '불사 프레임'이였다. 벗어날 길이 없었다.

범의 갓과 양의 얼굴, 얼마나 하뇨


세종의 얼굴대가리, 또는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의 얼굴대가리, 그 값은 얼마일까? 내 이야기가 불교 이야기였다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틀, 숭불이니 예불이니 나는 이런 말이 싫었다. 사관은 그런 말로 세종의 일, 세종의 값을 매기려고 했다. '어린 백성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은 임금', 그런 일조차 '불사 프레임'으로 가두려고 했다. 만년의 세종, 아이들도 죽었고 부인도 죽었다. 슬프고 아픈 임금, 그래도 그는 제 할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신하들, 얼굴의 값은커녕 임금을 아예 늙다리 바보로 만들었다. 부처의 신통력에 붙어 슬픔을 달래려는 일이라고 했다. 한문 사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과 세종 개인의 슬픔,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정말로 고약한 프레임, 세종실록을 읽어 보면 안다. 세종은 자신의 슬픔이나 아픔을 신통력 따위에 기대어 풀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세종은 억불정책을 극단으로 실천했던 임금이다. '불사 프레임'은 정말로 고약한 프레임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불안했다.

나는 오랫동안 불교 책을 전산화하는 일을 했다. 불교 책을 정말 많이 봤다. 몇 가지 대장경을 나란히 비교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은 아주 다른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내가 불교 책을 보는 까닭은 전산화를 위한 계획서나 프로포절을 쓰기 위해서였다.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은 그냥 '다른 그림 찾기' 같은 놀이에 불과하다. 나는 그냥 노가다라고 부른다. 불교 책이나 불교 이야기를 내 이야기의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언해불전을 보기 시작한 것도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그저 언해불전에서 다른 점을 보려고 했다. 내겐 언해불전도 그림이었다. 내가 잘 하는 일, 또 다른 그림 찾기 놀이였다. 그러다가 정말로 다른 그림을 보게 되었다. 언해불전에 담긴 우리말투, 그런 말투를 앞장서 실험하고 실천하던 세종의 다른 뜻이었다. 언해불전의 우리말투에는 우리말투의 모델이 담겨 있었다. 아? 이렇게 읽고 이렇게 소통하면 이렇게 쉽구나!

세종이 기획했던 여러 일들, 남은 것은 언해불전뿐이었다. 다행히 적지 않은 말투가 살아 남았다. 나는 이것 만으로도 세종을 혁명가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는 글자와 말투를 고쳐 어린 백성의 삶을 고치려고 했다. 말투도 고치고, 백성도 고치고, 혁명은 그런 일이었다. 말투를 고쳐 세계를 고치려던 임금,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15세기에?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는 르네상스의 시대에? 처음엔 이런 일, 나만 몰랐구나 싶었다. 학자나 전문가들, 다 알려니 싶었다.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세종에 대한 평가가 확 달라지겠거니 싶었다. 웬걸,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났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불교도 싫지만, 숭불의 세종도 싫어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내게 따지듯 물었다. 훈민정음을 스님이 만들었다는데, 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 불교 이야기나 하면 되지, 왜 세종 이야기를 하느냐? 사람마다 다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틀을 가지고 세종의 값을 매기려 들었다. 그때 알았다. 해동의 요순, 성군 세종, 말이야 번드르하지만 저 임금 아예 쫄딱 망했구나. 완전 패배자구나. 그래서 또 미안했다.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아무리 떠들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다 보면 희한한 일도 생긴다. 2016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국민예산마켓이란 이벤트를 열었다. ‘15세기 언해불전 역해 및 보급사업’이란 계획서를 제출했다. 온라인으로 투표를 했다. 국민 100대 예산으로 뽑혔다. 다시 국민 예산으로도 뽑혔다. 세상에 이런 일이, 고마워요 세종, 그 때는 그랬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 당의 도움으로 예산이 정해졌고, 국회를 통과했다. 사람들도 잔뜩 모였다.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왔지만,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모여 들었다. 사전도 다시 만들고, 보급을 위한 프로그램들도 만들고, 세종이 미처 못했던 일, 꿈도 가득했다.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이런 말투가 얼마나 쉽고, 얼마나 편한지 느껴 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언해불전은 아직도 소수 전문가의 영역 한에 갇혀 있다. 요즘말로 바꾸고 풀이를 하는 일도 꾸준히 이뤄졌지만, 이 또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접하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렵다. 세종과 함께 이런 말투를 실험하던 이들, 뭐라도 알아야 값이라도 매길 수 있다. 하지만 '세종의 프레임', '불사의 프레임', 역시 무서웠다. 예산은 반납되었고 일도 꿈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으레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항의는커녕,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전산화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경우를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버릇이 생겼다. 실패한 일은 돌아 보지 않는다. 뒤를 돌아 보면 앞으로 갈 수 없다. 성군 세종도 실패한 일, 슬퍼한들 우리 따위가 뭘 어쩌겠나. 그래도 그냥 미안했다. 미안해요 세종,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땅이라도 파고 구멍에 대고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이 미안은 나의 미안이다. 나이 들고 병든 임금, 글자도 만들었고, 일도 잔뜩 벌여 놓았다. 사사건건 반대를 하던 선비들, 죽기 살기로 고집만 부리는 신하들, 세종의 모습도 떠올랐다. 미안한 백성의 미안한 임금, 그런 일에도 값이 있다. 누구라도 값을 매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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