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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자유

3.7 뿌리가 이 도둑이니


네가 세간의 매인 것을 끄르는 사람을 보라. 매인 곳을 보지 못하면 어찌 끄름을 알리오? 네가 허공을 헐고 짼다는 말은 듣지 못하리라. 


엇뎨어뇨? 허공은 얼굴이 없어 매임과 끄름이 없는 까닭이다.


네 앞에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 여섯이 도적의 매(媒)되어 집의 보배를 겁(劫)하나니, 이로부터 무시(無始)의 중생 세계에 얽매는 젼차로 기세간(器世間)에 능히 건너 뛰지 못한다.


겁(劫)은 저히고 앗을씨라

매(媒)는 꾀 쓸씨니, 다른 무리에 어울워 잃어버리게 할씨라


네가 생사(生死)에 매인 근원을 알고자 한다면, 오직 네 육근(六根)이라, 나외야 다른 물건이 없으며, 네가 또 해탈하고자 한다면 또 네 육근이라 나외야 다른 물건이 아니다.


매인 것을 끄르는 사람, 매인 것은 결(結)이다. 끄르는 것은 해(解)이다. 줄에 매어 있다면 괴뢰이다. 곡도이다. 매어 있다면 누군가 내 몸을 조종한다. 잡고 놓는다. 내 몸의 짓, 그 닷, 그 원인이 내 몸 밖에 있다. 내 몸의 살혬도 매인 줄에 걸렸다. 중생세계와 기세간에 얽메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이다. 이건 평등과 자유의 조건이다. 세계 또는 세간의 조건이 평등하지 않고 자유롭지 않다. 얽메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뒤에 따로 다뤄 보려고 한다. ‘건너 뛰다’, 초월(超越)을 이렇게 새겼다. 꽁꽁 매인 몸이라 건너 뛸 수 없다.

오직 내 품의 때 묻은 옷을 벗으리니


해탈(解脫) [명사]

1. <불교>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 본디 열반과 같이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유위(有爲)해탈, 무위(無爲)해탈, 성정(性淨)해탈, 장진(障盡)해탈, 따위로 나눠진다.

2. 얽매임에서 벗어남


매고 끄르는 일, 불교에서는 해탈(解脫)이란 말을 즐겨 쓴다. 해탈이니 열반이니, 이런 말은 역시 무겁다. 해(解)는 끄르는 짓이다. 탈(脫)은 벗는 짓이다. 모두가 매일같이 하고 사는 일이다. 끄르고 벗는 일, 해탈이라 부르건, 열반이라 부르건, 뭐라고 부르건 어려울 게 없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생기고, 어려운 말도 듣게 마련이다. 새겨 듣지 않으면 딱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해탈이란 말, 끄르고 벗는 일이다. 끄르고 벗는 일에 순서도 있고, 요령도 있겠지만, 그래도 끄르고 벗는 일이다. 사전을 찾고, 새겨 듣고, 이런 저런 야단을 떨 필요도 없다.

때 묻은 옷을 벗으리니, 요즘은 ‘벗어나다’는 말을 쓴다. 겁박(劫縛)이란 말이 있다. ‘위협하여 묶다’는 말이다. ‘저프다’는 ‘두렵다’는 말이고, ‘저히다’는 ‘두렵게 하다’는 말이다. 위협(威脅)의 위(威)를 이렇게 새긴다. 위엄(威嚴)의 위도 같은 말이다. 누군가 나를 저히어 묶는다. 무섭기 때문에, 묶였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다. 쥬변할 수 없다. 그래서 건너 뛰지도 못한다. 겁을 주고 묶는 자, 그게 도둑이다.

다섯이 문이 되고, 하나가 중매되어

앞의 다섯 아롬이 밖의 도적이 되어 문으로 나들어든, 여섯째 의식이 도적의 중매가 되어 집의 보물을 앗을시라.


똑 같은 말이 이어진다. 언해불전에는 도적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겁을 주어 옭아 매고, 본래 내 것인 것을 앗아간다. 본래 내 것인 것, 나의 평등과 나의 자유이다. 그게 내 집의 내 보물이다. 언해불전의 도적, 여기에 세 겹이 있다. 이건 그 첫째 겹, 첫째 도적이다. 내 몸, 내 몸의 뿌리이다.

마음이 이 불휘니

법이 이 듣글이니

두가지가 거울 위의 허물 같으니

허물과 때 다 덜면 빛이 비로서 낟나니


이건 앞에서 했던 뿌리의 이야기이다. 눈, 귀, 코, 혀, 살의 다섯 가지 뿌리를 통해 드틀이 드나든다. 그르메이고 그르메의 느낌이고 여김이다. 드틀은 나의 눈, 나의 거울에 붙는다. 드틀이 붙어 때가 된다. 때 묻은 옷이 된다. 때가 묻으면 점점 뿌예진다. 그런 게 매는 일이다. 내 뿌리에 어린 드틀의 그르메, 그래서 밖에서 온 도적이라고 한다. 도적이 드나든다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견딜만 하다. 진짜로 고약한 것이 도적의 중매이다. 꾀를 쓴다고 한다. 다른 무리를 오고 가며 드틀에 얽어 맨다. 나의 의식이 그르메를 가지고 노는 일이다. 드틀에 얽매이니 쥬변할 수 없게 된다. 나의 평등, 나의 자유를 앗아 간다. 잃게 한다.

내 몸이 도적이다. 도적의 꾀를 쓰는 것도 내 몸이다. 내 몸의 여섯 뿌리가 여섯 가지 큰 도둑이다. ‘나외야 없다’는 갱무(更無)를 새긴 말이다. 여섯 뿌리, 여섯 도둑 ‘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옭아 매는 자도 여섯 뿌리일 뿐이다. 끄르고 벗는 자도 여섯 뿌리일 뿐이다. 옭아 매는 자는 도둑이라 부르지만, 끄르고 벗는 자는 ‘보리(菩提)’라고 부른다. 도둑을 알아 채는 자이다. 이 것도 뿌리이다. 오직 뿌리이다. 오직 몸이다. 나외야 아무 것도 없다.

깬 뒤에 비어 대천(大千)이 없으니

아래부터 제 매였던지, 처음 믿어라


곡도의 노래는 속절없이 이어진다. 나의 몸을 저히어 옭매는 도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몸의 자유를 얽어매는 닷, 또는 탓, 원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리버티의 자유와 곡도의 자유, 매인 줄과 끊어진 줄, 비슷하긴 해도 수순이 다르다. 매인 수순도 중요하고, 끊는 수순도 중요하다. 사이비(似而非),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것, 수순이 꼬이면 사이비가 되기 십상이다. 언해불전에서는 ‘얼믜다’라는 말을 쓴다. 어설프고 엉성하다는 말이다. 생각과 사랑이 어설프고 엉성하면 수순이 꼬인다. 수순이 꼬이면 사이비, 비슷해 보여도 같은 게 아니다. 이런 일도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천(大千)은 대천세계를 가리킨다. 우리가 사는 세계, 수 많은 세계가 겹쳐 있다고 한다. 그 세계를 통틀어 대천이라고 한다. 온 세계, 온 세상이다. 종전(從前)을 ‘아래부터’라고 새겼다. ‘제 매였던’은 자구박(自拘縛)이다. 구박, 구속과 속박이다. 리버티의 자유, 이 말에 짝을 이루는 말도 구속이나 속박이다. 쇠사슬이다. 얽어 매는 일이다. 꽁꽁 묶어 놓고 앗아간다.

내 몸을 윽박지르고, 옭아 매고, 앗아가는 자는 내 몸의 뿌리이다. 그래서 ‘제 매었다’고 한다. 제가 제 몸을 옭아 맸다. ‘처음 믿어라’는 시신(始信)이다. 매인 것을 끄르고 벗으려면 우선은 믿어야 한다. 믿는다고 해도 별 것은 없다. 내가 가진 몸, 내 몸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 몸을 믿으면 된다. 자유(自由), 내 몸의 닷이다. 내 몸이 원인이다. 그걸 믿어야 한다. 매인 곳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끄를 수 있겠나. 내 몸의 뿌리, 나외야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알아야 제 스스로 끄를 수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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