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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간섭

5.7 님자, 쫄지마!

빈주역연(賓主歷然)


님자있는 물건을 조차 한 바늘, 한 풀도 내종내 부러 범하지 말고


님자는 임자의 옛말이다. 주(主)를 님자라고 새긴다. 뭔가를 가진 이, 소유하는 주인이다. 내종내는 ‘끝끝내’란 말이다. 부러는 ‘일부러’이다. 남의 것인 줄 알면서 고의로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부러 죽이지 말고, 님자있는 물건을 부러 범하지 말고’, 불교의 첫째와 둘째 계율이다.

주(主)와 벗이 서로 섞어, 이르며 들을 이 한데 모이도다


주반(主伴)을 ‘주와 벗’이라고 새긴다. 주(主)란 글자, 님자라고도 새기고, 읏듬이라고도 새긴다. 주관(主管)이란 말도 있고, 주재(主宰)란 말도 있다. 모든 중생은 제 몸의 주인이다. 제 몸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제 몸의 님자이다. 이것이 제 몸의 자유, 제쥬변이다. 죽이지 말고 훔치지 말라는 계율도 그래서 나왔다. 남의 자유와 남의 평등이다. 남의 몸, 남의 몸이 가진 것, 해쳐서도 안되고 훔쳐서도 안된다. 주객(主客)의 짝도 있다. ‘님자와 손’, 주인과 손님의 짝이다. 빈주(賓主)라는 짝으로 나누기도 한다. ‘손과 님자’이다. 교참(交參)을 ‘서로 섞다’라고 새긴다. 님자와 벗, 또는 님자와 손이 서로 만난다. 한끠에 한데에 마주쳐 상대(相對)한다. 서로 붙어 간섭한다.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법, 통로는 말이다. 이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설청(說聽), 니롬-드롬의 짝이다.

임제(臨濟 -867)가 일렀다. 

내 듣자니 너희들이 모두 나의 할(喝)을 배운다고 한다. 내 다시 묻는다.


동당에서 중이 하나 나선다. 서당에서도 중이 하나 나선다. 

둘이 나란히 할(喝)을 한다. 

누가 손인가? 누가 님자인가?


손과 님자를 나눌 수 없다면, 다시는 이 늙은 중을 배우지 마라.


할(喝)은 헥할시니, 배울 사람의 헤아림이 다 떨어지게 우리틸시라.


이런 이야기는 상상을 해 봐야 한다. 그냥 읽어서는 맛이 없다. 모름지기 눈으로 장면을 그려 봐야 한다. 큰 절에 가면 법당이 있다. 법당 앞에는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으레 탑이 있다. 마당 양쪽에 집이 있다. 동쪽의 집을 동당이라고 부른다. 서쪽의 집은 서당이다. 동당과 서당의 문이 열린다. 양쪽에서 중이 하나씩 나선다. 마당에 마주 선다. 상대를 향해 느닷없이 헥! 소리를 지른다.

그림을 그려보면 좀 우습다. 이게 뭐지? 앞에서 ‘누구를 브트뇨?’라고 물었다. 이건 당나라 임제의 물음이다. 임제는 할을 좋아했다. 누가 찾기라도 한다면, 대뜸 할을 했다. 언해불전은 할을 ‘헥할시니’라고 새긴다. 이건 또 뭘까? 헥! 귀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악을 쓴다. 우리틴다. 악이건 헥이건 귀청이 떨어져야 한다. 그래서 넋이 나가야 한다. 이것 저것 헤아릴 틈이 없어야 한다. 이런 게 ‘헥!’을 하는 까닭이다. 누구는 방망이를 들고 다닌다. 누가 뭘 묻기라도 한다면 대뜸 후려친다. 헥과 방망이는 당나라 선불교의 상징이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수단이다. 나름의 스타일이다.

누구를 브트뇨? 이 물음은 교참(交參)으로부터 나왔다. 사람이 도적을 만났다. 밤도둑을 밤손님이라고도 부른다. 밤손님이 찾는 것도 교참이다. 서로 붙고 서로 섞는다. 그러는 사이에 집안이 서의해졌다. 누가 님자이고 누가 손님인가? 누굴 탓해야 하나? 임제가 우리티는 까닭도 똑 같다. 헥!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섞인다. 간섭이다. 서로가 서로를 간섭한다.

마당에서 두 중이 서로 만난다. 이것도 교참이다. 동시에, 한끠에 헥을 한다. 이것도 교참이다. 그리고 임제는 묻는다. 임제는 이르는 이이고 그의 제자들은 듣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니롬과 드롬으로 서로 간섭한다. 서로 대화한다. 누가 손님이고, 누가 님자인가? 답을 할 수 없다면, 다시는 노승의 헥?을 배우지도 마라. 흉내내지도 말란 말이다.

임제의 물음, 미리 짜 놓은 시나리오를 따른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섞이는 장면이다. 간섭의 장면을 가장 단순화시킨 간섭의 모델이다. 서로가 서로를 향에 함께 헥한다. 헥도 말이다. 가장 단순화시킨 말의 모델이다. 말과 말로 간섭하는 일, 대화의 모델이다.

님자가 님자를 바라보다.

님자가 손을 바라보다.


손이 손을 바라보다.

손이 님자를 바라보다.


그냥 우리티고 그냥 헥하는 게 아니다. 임제에게는 시나리오가 있다. 말로 하는 대화, 말의 논리가 있다. 손과 님자의 짝, 빈주(賓主)의 짝이다. 임제는 네가지 경우의 수로 나눈다. 분석이다. 이걸 ‘임제의 사빈주(四賓主)'라고 부른다. 손님과 님자가 만나는 장면, 서로 간섭하는 경우의 수이다. 동당의 중도 님자이다. 서당의 중도 님자이다. 님자와 님자가 간섭한다.

상대를 만나면 손님이 된다. 상대에게 손님으로 다가가고 손님으로 맞선다. 임제의 시나리오는 역할극이다. 님자의 역할과 손님의 역할이 있다. 님자가 되기도 하고, 손님이 되기도 한다. 님자는 님자의 눈으로 제 몸을 바라본다. 네가 바로 님자이다. 그리고는 님자의 눈으로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상대를 시작한다. 손의 눈으로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손의 눈으로 님자를 바라 본다. 내 몸에 네가지 경우가 있다면 상대에게도 네가지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이 만나면 4X4=16, 열 여섯가지 경우로 늘어난다. 이게 교참의 뜻이다. 서로 만나고 서로 섞는 일이다. 이건 간섭의 모델이다. 그리고 헥을 한다. 말을 건다. 여기에도 네가지 경우, 열여섯가지의 경우가 있다. 이건 말의 모델, 대화의 모델이다. 말로 서로 간섭하는 모델이다.

이 봄이 이 같아 그 체(體)가 본래 한 세계에 쥬변하였다가, 

이제 집 안에 들어와서는 오직 한 집에 가득합니다. 


이 봄이, 큰 것이 움쳐 조그맣게 된 것입니까? 

담과 집에 끼어 끊어진 것입니까?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세상이 다 보인다. 내 눈의 봄이 세계에 쥬변하다. 세계를 한 눈에 두루 보고 두루 채운다. 산을 내려와 집안에 들면 나의 봄은 방 안에 쥬변하다. 봄이 작아진 것일까? 담과 집에 끼어 봄이 끊어지고 가려진 것일까? 그걸 묻는 것이다. 이런 물음도 무슨 역설같이 들린다. 하지만 이런 것도 역할극이다. 의도는 똑 같다. 시나리오도 있고 역할도 있다.

한동안 ‘쫄지마!’, 이런 말이 유행했다. 막말이니 뭐니 비난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원함, 편안함을 느꼈다. 나도 그랬다. ‘쫄다’는 졸다의 사투리라고 한다. 속어라고도 하고, 북한의 표준말이라고도 한다. 그런 기준은 뭘까? ‘큰 것이 움쳐 조그많게 되다’ 축(縮)이란 글자를 ‘움치다’라고 새겼다. ‘다’나 ‘다’ 또는 ‘졸다’라고도 새긴다. 물론 ‘쫄다’의 옛말이다. 압축이고 위축이다. 쫄쫄이란 말도 있다. 털실로 짠 스웨터는 빨래를 하면 쫄아든다. ‘쫄지마’는 그런 말이다. 세계를 보던 눈과 봄은 어떤가? 방안에 들어서면 쫄아 든 것일까? 가려지고 끊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자유는 어떨까? 나의 평등은 또 어떨까? 자유롭지 않은 세상, 평등하는 않은 나라에 들면, 쫄아드는 것일까? 가려지는 것일까?

임제는 ‘빈주(賓主)가 역연(歷然)하다’고 했다. 언해불전은 역연을 ‘번득하다’라고 새긴다. 봄이 오면 봄빛이 완연하다. 완연(宛然)도 비슷한 말이다. 번득하다. 손님과 님자, 척보면 척안다. 분명하다.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없다. 그래서 헥한다. 우리틴다. 그렇게 번득한 것, 그런데도 깜빡에 속아 넘어 간다. 이것 저것 헤아리다가 깜빡 속이고 깜빡 속아 넘어 간다. 그러는 사이에 내 몸도 내 집안도 서의해져 버린다.

손님과 님자의 역할극은 교육, 가르침의 역할극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섞이는 일, 대화, 말로써 상대하는 일을 가르친다. 누구나 님자이다. 누구나 손님이다. 두사람만 마주쳐도 열여섯가지 경우의 수가 난다. 오천만이 섞이고, 칠천만이 만난다면 어떨까?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 웃는다면 또 어떨까? 온 우주의 외계인과 마주 선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떤 경우의 수가 날까? 쫄지마! 이런 말도 역할극이다. 간섭과 대화의 기술을 가르친다. 님자는 님자가 되고, 손님은 손님이 되는 역할을 가르친다. 연애는 어떻고 가족은 또 어떤가? 간섭과 대화의 기술,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것도 뻔하다. 번득하다. 누구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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