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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02_03 증도가, 세종의 노래

증도가남명계송언해

옛날 세종 장헌대왕께서 일찍부터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가운데 『야보송(冶父頌)』과 『종경제강(宗鏡提綱)』, 『득통설의(得通說誼)』, 그리고 『증도가남명계송(證道歌南明繼頌)』을 국어(國語)로 번역하여 『석보(釋譜)』에 넣고자 하였다. 


문종 대왕과 세조 대왕에게 명하여 함께 짓도록 하고, 친히 교정하고 결정했다. 당시 『야보송』과 『종경제강』의 두 가지 해석과 『득통설의』는 이미 초고가 완성되었지만 교정을 할 겨를이 없었고, 남명의 『계송』은 겨우 30여 수를 번역하여 모두 일머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유언으로 명을 남기시니 문종과 세조가 받들었다. 남기신 가르침을 받들어 먼저 『석보』를 판에 새겨 유통하였다.


성종 13년(1482)의 글이다. 언해불전, 『금강경삼가해』와 『증도가남명계송』을 출간하면서 한계희(韓繼禧, 1423~1482)가 지은 발문이다. 세종이 시작한 일, 세종이 남긴 뜻, 부탁, 명령, 말이 거듭된다. 이 두 책이 세종의 일이었다는 말이다. 세종과 문종과 세조, 저 글은 세 대왕이라고 부른다. 세종의 두 아들, 문종은 세자였고, 세조는 대군이었다. 저 글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상식을 깨고 있었다. ‘국어로 번역’, 먼저 이 구절이 눈에 띠었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큰 일이었다. 최초(最初), 언해불전은 ‘맛첫’이라고 새긴다. 내겐 구절마다 ‘맛첫’이었다. 아버지와 두 아들, 머리를 맞대고 말을 고르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희한하고 기이했다.

세종이 콕 찝어 고른 책, 나랏일도 바빴을 텐데, 하필 저런 책을 꼽았을까? 이것도 참 궁금했다. 나도 대강은 읽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두 책, 유난히 어려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려대장경에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南明泉和尚頌證道歌事實)』이라는 책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증도가남명계송』을 읽기 위한 참고서이다. 고려 사람이 지은 책을 대장경 안에 넣었다. 무슨 노래책 하나 읽는데 참고서까지 필요했을까? 노래책의 참고서가 뭐라고, 대장경 안에 넣어야 했을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다. 그래도 그만큼, 꼭 읽고 싶었다는 뜻이겠다.

『증도가남명계송』, 이 노래는 어렵다. 영가현각의 노래도 어렵지만, 남명법천의 노래는 훨씬 더 까다롭다. 무엇보다 말이 어렵다. 이 노래는 한시(漢詩), 한문으로 쓰인 노래이다. 한시에는 틀이 있다. 세 글자, 또는 네 글자, 정해진 규격이 있다. 나는 한시를 보면 ‘우겨 넣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많아도 글자의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 사람들은 그럴 때 인용의 방법을 쓴다. 이 글자는 이 책에서 끌어 온다. 저 글자는 저 책에서 끌어 온다. 한 글자를 끌어 오면, 이 책에서 저 책에서 그 글자가 쓰이게 된 사연이 줄줄이 달려 온다. 그렇게 하면 글자 하나에 책 한 권을 담을 수도 있다. 책이 쓰이고 읽히던 시대와 세계를 통째로 담을 수도 있다. 남명법천은 어려서 유학을 배웠다. 불경도 배웠고, 선(禪)도 닦았다. 그의 별명이 만권(萬卷)이었다고 한다. 입만 열어도 책 만권이 쏟아진다. 그의 노래에는 그런 말투가 담겼다. 그의 만권을 누가 당하겠나?

인용회수
조정(祖庭) 운(云) 12
장자(莊子) 운(云) 8
사기(史記) 운(云) 5
유마경(維摩經) 운(云) 5
한산시(寒山詩) 운(云) 5
능엄경(楞嚴經) 운(云) 4
법화경(法華經) 운(云) 4
전등록(傳燈錄) 운(云) 4
시(詩) 운(云) 4
부법장전(付法藏傳) 운(云) 3
화엄경(華嚴經) 운(云) 3
경률이상(經律異相) 운(云) 2
문선(文選) 운(云) 2
부대사송(傅大士頌) 운(云) 2
양자(楊子) 운(云) 2
열반경(涅槃經) 운(云) 2

『증도가사실』에서는 글자의 사연, 뿌리를 캐어 풀어준다. 책 이름을 확인한 것만 해도 59종이다. 이 밖에 ‘장로(長蘆)가 이르기를’, 사람 이름으로 풀어준 경우들도 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속담이나 전설로 풀어 주는 경우도 있다. 불교 책만 끌어 오는 게 아니다. 유불도 삼교의 경전은 물론, 역사책, 시집, 문집, 온갖 책에서 끌어 온다. 저 노래를 술술 읽으려면 수십 수백 권을 책을 줄줄 외워야 한다. 그런 노래, 누가 읽을까? 세종은 어쩌자고 저런 책을 골랐을까? 게다가 멀쩡한 아들, 함께 번역하자고 나섰을까? 기이할셔!


그대는 아니 보난다


이 어떤 낯인고

여겨 따지고 사량(思量)하면, 어지러운 뫼에 가리리

이로부터 조계의, 문 밖의 구절

옛같이 흘러지어, 인간(人間)을 향하리


영가현각의 노래를 이어 부르는 남명법천, 영가현각이 '그대'로부터 시작을 했다면, 남명법천은 '마촘'에서 시작한다. 조계(曹溪)의 문 안에서 있었던 일, 육조혜능과 영가현각의 만남, 마촘과 마좀이다. 법천은 이 자리를 증(證)의 원류라고 노래 한다. 그래서 그들의 마촘과 마좀은 증의 표본이고 표준이 된다. 냇보람이 된다. 그래서 그 만남, 그 마촘으로부터 영가의 '그대'를 다시 보고, 다시 나톤다. 이건 어쨋든 법천의 노래이다. 현각의 뜻도 그랬을까? 세종과 두 아들은 이제 두 노래를 마주해야 한다. 조계의 마촘은 물론, 현각과 법천의 마촘과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대는 아니 보난다?', 현각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400년의 틈이 있다. 시비를 가리려면 소리를 질러야 한다. 제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리고 그 노래, 우리말로 나토고, 새로 만든 우리 글자로 적었다. 그 사이에 도대체 몇가지의 마촘이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내 머리가 지끈 거린다. 그들이 하던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시혹 사람이 믿지 않을진대 뜻가장 물어라

의구(意句)가 섞여 달려 천만 얼굴이로다

의구는 힐란할 제의, 가진 뜻과 묻는 언구(言句)이라


섞여 달리는 천만의 얼굴, 뜻과 말의 얼굴이다. 세종과 두 아들은 그 얼굴을 뜻가장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어 그들의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나온 책이 『증도가남명계송』이다. 세종은 이 노래를 『월인석보』에 담으려 했다고 한다. 이것도 노래책이다. 세종의 노래, 불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죽은 왕비의 천도재를 위한 노래라고도 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점 더 궁금해진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 세종의 노래를 들어라도 본 적은 있었을까? 아롬과 마촘과 나톰, 그런 걸 뜻가장 캐고 들던 세종의 뜻을 의심해 본적이라도 있었을까? 『증도가남명계송』, 이 노래를 따라 가다 보면 무한도전이란 말이 떠오른다. 새로 만든 스물여덟자의 글자를 품고, 아시아의 인문(人文)에 도전하던 사람들, 이런 노래를 번역할 수만 있다면, 번역하지 못할 말도 글도 없겠다. 우리말투로 하는 우리의 사랑, 실험과 도전의 현장을 보는 것 같다.

겨우 30여수, 세종은 세상을 떠났다. 세자는 임금이 되었지만, 2년 남짓에 다시 세상을 떠났다. 대군은 정변을 일으켜 임금이 되었지만, 형님의 아들도 죽여야 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맞추었을까? 그래서 더 기이하다. 이런 이야기, 내겐 벅찬 이야기이다.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세종과 함께 읽는'이란 모자를 씌웠다. 세종의 노래를 알리고 싶었다. 글에 제목을 다는 일, 관(冠)이라고 쓰고, '끼다'라고 새긴다. 안개나 구름도 끼고, 이끼나 곰팡이도 낀다. 덮어 씌우는 일이다. 뭐라도 덮어 써야 할 것 같았다. 이 일이 언제나 끝날지 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나도 소리를 지르기는 하겠지만, 노래가 될지는 모르겠다. 세종을 덮어 쓰면 흥이 나지 않을까, 힘이 되지 않을까?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