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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월인천강 사용법

7.1 월인천강 미스터리

회수의 물

달은 하늘 위, 물은 땅에 있나니

그 사이는, 구만 팔천리

달아 어쩌다, 물속에 들었나

나조차 그 까닭, 알지 못하오


달도 천백억, 몸을 나누니

여기 물 있어, 달도 또 있어라

회수(淮水)에 물 맑고, 물결도 잔잔

달이 내려 어리니, 빛은 더 희어라


만갈래 갈려도, 본래 한 이치

달 하나 천 갈래, 이치가 제 그래


스님아!

가셔서 월인천강, 노래나 읽으소

도가 본래 하나 아니오, 둘도 아니라오


이 노래는 조선의 문장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노래다. 옛날 고려적, 송나라는 주로 뱃길로 다녔다. 벽란도에서 배를 타고 서해 바다를 건너 회수(淮水)로 들어 갔다. 회수의 운하는 송나라의 서울 변경으로 이어졌다. 회수는 송나라로 가는 물길이었다. 그만큼 고려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물이었다. 왕조도 바뀌고 서울도 바뀌었다. 물길도 끊겼다. 이 노래는 회월헌(淮月軒)이란 집에 부친 노래이다. 회수에 어린 달, 송나라로 가던 물길, 고려적 추억과 낭만이 어렸다.

물 가운데 달 잡으니, 어찌 잡아 얻으리오

진실의 달이 어찌, 물 가운데 있으리

오직 어린 나비, 미친 아롬 없으면

강하회제(江河淮濟)를, 함께 통하리라


앞에 나왔던 노래, 강하회제(江河淮濟)는 모두 물 이름이다. 여기의 회수가 바로 저 회수이다. 회월헌, 회수의 달도 똑 같은 물, 똑 같은 달 이야기이다. 얼굴과 그르메의 노래이다. 서거정은 『동문선(東文選)』을 엮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문집이다. 여기 회월헌이란 이름이 두 차례 나온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저 노래이다. 다른 하나는 권근(1352-1409)이 지었다. 서거정의 외할아버지다.

회월헌은 강가에 지은 집의 이름이다. 이 강이야 고려의 강이고, 조선의 집이다. 송나라로 가던 길의 추억을 담았다. 권근은 이 집에 기문(記文)을 지어 주었다. 서거정은 이 집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집의 주인은 ‘진졸재’라는 스님이다. 무학의 제자였다고 하니 함허의 동문이다. 회월헌이라는 이름도 무학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 나옹과 함허가 노래한 월인천강, 그리고 무학과 진졸재의 회월헌, 우연이 아니다. 모두가 하늘의 달과 물의 달을 노래한다. 월인천강은 말하자면 이 집안의 가풍이다. 그 노래를 세종이 따라 불렀다. 권근과 서거정, 조선을 대표하던 문장가요, 정치인이었다. 이들도 월인천강을 노래했다. 달의 얼굴과 그르메를 따졌다. 월인천강, 달그르메, 그들 모두 말도 알았고 뜻도 알았다. 이 말에 담긴 메시지, 그 때는 다 알았다.

회월이라고 한 것은, 하나의 달이 가운데 있어 남북으로 나뉘어 비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집에 이름을 단 까닭이다. 그대가 글로 써 줄 수 있겠소?


진졸재가 권근에게 했다는 말씀이다. 회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도 있듯, 회수는 대륙의 중간, 중심이었다. 회수를 경계로 남북이 갈린다. 날씨도 갈리고 살혬도 갈린다. 하늘의 달도 회수에서 남북으로 갈린다.

래무소래(來無所來)하샤미 월인천강(月印千江)이오

거무소거(去無所去)하샤미 공분제찰(空分諸刹)이로다


오셔도 오신 바 없으니, 달이 즈믄 가람에 비침이오

가셔도 가신바 없으니, 허공이 여러 나라에 나뉨이로다


허공을 가르는 금, 남북 어디쯤에 금이 있을까? 그래도 사람들은 회수로 남북을 가른다. 회수에 어리는 달도 가른다. 진졸재는 이 집의 님자이다. 권근도 서거정도 이 집의 손님이다. 진졸재는 손님들에게 집의 이름을 물었다. 제 집에 제 이름, 제가 그렇다니 그만이다. 손님들도 집의 이름을 가리고 따진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물건들은 하나의 기(氣)가 나뉜 것이어서 하나의 이치로 꿰인다.


진졸재가 묻고 권근이 답한다. 하늘의 달과 물의 달, 권근은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과 땅사이의 가득한 물건들, 이치는 하나이다. 다만 기가 나뉘고 갈린다. 하늘의 달과 물의 달, 이(理)는 한가지, 평등하다. 기(氣)의 다름, 차별이다. 서거정은 외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만갈래 갈려도 본래 한 이치’라고 노래한다. 이일이만수(理一而萬殊), 송나라의 주자학(朱子學), 성리학(性理學)의 말씀이다. 월인천강, 함허의 말이고 세종의 말이다. 그런데 권근과 서거정은 성리학의 말로 읽는다. 하늘의 달과 물의 달, 이치는 평등하다. 갈리는 것은 기운(氣運) 또는 기분(氣分)이다. 기분의 차별이다. 그래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곤 스님에게 ‘월인천강의 노래나 읽으소’라고 권한다.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 기이하다. 나옹과 무학, 함허와 진졸재로 이어지던 월인천강의 전통이 있었다. 이 전통은 석가모니의 ‘기이할셔’에서 비롯했다. 함허의 해석이 그랬다. 석가모니의 기이할셔, 알 수 있는데 왜 모를까? 본래평등한데 왜 평등하지 않을까? 함허는 기이할셔, 석가모니의 놀라움에서부터 새로 시작했다. 왜 그럴까? 함허는 이 말이 불교, 가르침의 시작이라고 했다. 석가모니는 이 놀라움으로부터 ‘밑 없는 배를 타고, 구멍없는 피리를 불었다.’ 알 수 있는데 알지 못하는 중생의 현실, 중생의 세계를 고치려고 했다. 바꾸려고 했다. 고쳐야 한다는 뜻, 내가 고치겠다는 결심, 월인천강은 본래 그런 말이었다. 그게 함허의 월인천강이었다. 그리고 세종의 월인천강은 함허의 월인천강이었다. 알 수 있는데 알지 못하는 세계, 그릇된 세계이다. 그릇된 세계, 고쳐야 한다. 바꿔야 한다. 함허는 이걸 석가모니의 결심이라고 읽었다. 한가지로 얻어 먹자. 한가지로 이받자. 한가지로 나아 걸으면 고칠 수 있다. 이건 함허의 결심이었고, 세종의 결심이었다.

스님아!

가셔서 월인천강, 노래나 읽으소


'노래나 읽으소', 이건 또 뭐지? 나는 이게 정말 이상하다. 함허와 세종은 고치자고 한다. 알 수 있다고 한다. 알 수 있다면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권근과 서거정은 아주 다른 소리를 한다. 노래나 읽으라는 서거정의 말, 그의 뜻은 뭐였을까? 하늘의 달과 물의 달, 다르다지만 기이할 것도 없다. 이치는 같은 데 기분이 다를 뿐이다. 남북이 갈리고 허공이 나뉘는 것도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구태여 고치고 바꿀 필요도 없다. 고칠 수도 없지만, 고치려 해서도 안된다. 도가 본래 그렇다. 권근의 논리는 이렇다. 그렇다면 석가모니도 함허도 세종도 부질없고 속절없다. 저 집의 주인, 진졸재는 어땠을까? 석가모니의 노래, 제 스승과 동문의 노래, 제 임금의 노래, 진졸재는 몰랐을까? 권근의 글을 제 집에 걸어 놓은 진졸재, 그의 생각은 어땠을까? 차별된 물의 세계, 고치고 싶었을까? 구태여 고칠 필요 없다고 여겼을까? 그들의 차이, 알기는 했을까?

월인천강, 인터넷을 둘러 보아도 권근이나 서거정 같은 소리만 널렸다. 기이할셔, 고쳐야 할 것을 고치고 싶었던 함허나 세종의 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월인천강, 나는 이걸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세종의 미스터리이고 조선의 미스터리이다. 월인천강 노래나 읽으라던 사람들, 이 말에 담긴 뜻, 세종이 고치고 싶었던 것들, 알았을까? 몰랐을까? 기이하다. 희한하다.

세종 26년(1444) 2월 20일 경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만일 언문(諺文)을 시행한다면, 구실아치들이 오로지 언문만을 익히고 학문하는 문자는 돌아보지도 않게 되어 구실아치들이 둘로 갈리게 될 것입니다. 만일 구실아치들이 언문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후배들은 이런 것을 보고 ‘27자의 언문만으로도 족히 세상에 입신(立身)할 수 있는데 무엇하러 노심초사 성리(性理)의 학문을 궁리하겠는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집현전의 엘리트들이 언문에 반대하는 까닭이 이렇다. ‘성리(性理)의 학문’ 때문이다. 그리고 ‘학문하는 문자’ 때문이다. 성리의 학문이 따로 있듯, 학문하는 문자도 따로 있다. 물론 한문이다. 그리고는 세종이 만든 스물일곱의 언문, 비언(鄙諺)과 무익(無益)이라고 공격한다. 비(鄙)는 ‘더럽고 천하다’는 말이다. 언(諺)은 ‘속되고 막되다’는 말이다. 학문은커녕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학문의 문자가 따로 있다고 한들, 임금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이런 말까지 써가며 비판할 까닭이 있었을까? 실록에 나오는 신하들의 말, 임금에게로 열린 언로(言路), 말의 길, 막말이 따로 없다. 내용은커녕, 말만 들어도 고약하다. 세종의 『월인천강지곡』, 이 노래도 이러는 사이에 나왔다. 그래서 더 기이하다.

사람의 몸을 얻은 이는 반드시 선지식으로부터 삼세제불의 평등한 법을 들어야 한다.

대중과 한데 살면서 불법을 의논하고 헤아리며, 배우고 물어, 힐란하며 대답하면 불법의 평등함이 나토아……


학문(學問), 언해불전은 ‘배우고 물어’라고 새긴다. 묻고 대답하는 것이 배움이고 학문이다. 평등한 법을 배우고 묻는다. 물어도 그냥 묻는 게 아니다. 답을 해도 그냥 답하는 게 아니다. 불교에서는 난(難)이라고 한다. 힐난(詰難)이라고도 한다. 평등의 법을 뜻가장 따지고 뜻가장 답한다. 월인천강은 평등의 법을 따지고 캐묻는 말이다. 얼굴과 그르메의 사이를 끝까지 캐묻는다. 학문은 그렇게 캐묻는 일이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의 전기이다. 『월인천강의 노래』는 석가모니의 삶과 가르침을 노래한다. 세종이 제 노래에 월인천강이란 이름을 낀 까닭은 석가모니의 삶과 가르침에서 평등의 법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그렇게 평등의 법을 나토려고 했다.

내가 만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백성들 사이에 반포한다면 어리석은 남녀 모두가 쉽게 알아 충신, 효자, 열녀가 떼로 나올 것이다.


정창손(鄭昌孫)이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뒤에도 충신, 효자, 열녀들이 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이 실천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다만 사람의 자질(資質)이 어떠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필 언문으로 번역한 뒤에야 사람들이 다 본받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따위 말을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라 하겠는가? 참으로 쓸모없는 속된 선비로구나.


세종과 정창손은 이렇게 맞섰다. 세종은 사서(四書), 유학의 경전도 언문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쉬운 말, 쉬운 글로 바꾸어 주면 어린이들도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창손은 사람의 자질을 내세웠다. 자질이란 게 뭔가. 타고난 얼굴이다. 불교에서도 타고난 얼굴을 이야기한다. ‘눈은 빗고 코는 곧다’, 사람은 이런 낯을 타고 난다. 이런 것이 ‘본래 뒷논 것’이다. 눈이 밝은 사람도 있고, 냄새를 잘 맞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도 물론 타고난 차이이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여섯가지 뿌리만을 바라본다. 뿌리가 읏듬이기 때문이다. 뿌리로부터 꼬인 일, 뿌리에 붙어 푼다. 그래서 뿌리를 타고 났다면 한가지이다. 맬 수 있다면 풀 수도 있다. 사람마다 뿌리에 자잘한 다름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눈이 있으면 볼 수 있다. 골이 있으면 알 수 있다. 뿌리의 한가지, 뿌리의 평등, 석가모니가 이걸 거듭 강조하는 까닭은 뿌리를 가졌으면 누구나 한가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름, 자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길게 할 필요도 없다. 정창손에게도 노비가 있었겠다. 노비도 타고난 자질이라고 치자. 노비의 얼굴이라고 치자. 노비는 노비, 그게 조선의 법이었다 치자. 노비 중에도 영리한 사람은 있다. 보면 알고, 들으면 기억하는 똘똘한 노비도 있다. 정창손은 과연 그런 것도 몰랐을까? 노비에게도 기회만 준다면 얼마든지 학문의 글도 배우고 학문도 닦을 수 있다는 걸 정말로 몰랐을까? 집현전의 똑똑한 엘리트들이 그런 것도 몰랐을까? 정말로 몰랐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연행록(燕行錄)이란 글의 갈래가 있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쓴 기행문들이다. 갈래로 나눌만큼 다양하다. 나는 연행록을 노비록이라고 부른다. 길에 나선 사람들, 몇 달을 노비와 함께 지낸다. 노비가 없으면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잔다. 그런만큼 짐승보다 더 사오나운 노비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절절하게 담겨 있다. 정말 고약하다. 계급사회, 신분제 사회라지만 그런 걸 적고 앉았던 선비들의 눈과 손, 볼 때마다 그게 부끄럽다. 똑똑한 조선의 엘리트, 똑똑한 그들이 정말로 몰랐을리 없다. 그들은 그냥 노비들이 싫었을 뿐이다. 그들의 차별을 고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고치려고 드는 임금도 그냥 싫었을 뿐이다. 자기들이 누리는 자기들의 차별을 더러운 노비들과는 나누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하기야, 고려적, 절에도 노비는 있었다. 그래서 기이하다. 회월헌의 주인은 어땠을까? 강가에 집 짓고 하늘의 달, 물의 달, 그게 좋았을까? 세종은 어떤가? 세종실록에는 ‘노비도 사람인데’, ‘죄수도 사람인데’, ‘중도 사람인데’, ‘오랑캐도 사람인데’ 이런 말이 남아 있다. 세종 또한 계급사회의 임금이었다. 그렇다 해도 적어도 세종은 저런 말을 할 줄 알았다. 이른바 고려의 귀족불교, 기어코 혁파하고야 말았다. 성균관의 학사였던 함허, 그는 그 사이 성균관을 나와 절로 갔다. 고려의 불교가 권력에 의해 고쳐지는 모습을 보았다. 세종과 함허는 그런 자리에서 만났다. 세종은 고치기 위해 뭐라도 하려고 했다. 세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계급사회라 해도 사람은 사람이다. 알 것은 다 안다. 기회만 있다면 사람구실도 할 수 있고, 억울함도 피할 수 있다. 학문하는 글도 배울 수 있고, 학자도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다. 기회를 갖지 못한 어린 백성, 그게 미안했던 임금, 기회를 주고 싶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참으로 쓸모없는 속된 선비들이다. 세종의 월인천강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했다.

피와 기분(氣分)의 류(類)는 반드시 아롬이 있고, 무릇 아롬이 있는 것은 반드시 체(體)가 한가지이니


서거정은 하늘의 달을 하늘의 이치로 읽는다. 물에 어린 달, 남북으로 갈리고 만 갈래로 갈린 달은 기(氣)의 달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물건, 차별과 다름은 당연한 결과다. 하늘의 이치로 본다면 차별이 그대로 평등이다. 이치의 평등이다. 정창손의 자질, 서거정의 이기(理氣)는 월인천강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월인천강, 얼굴과 그르메의 논증은 타고난 평등, 몸의 평등, 본래의 평등을 논증하는 수단이고 비유이다. 언해불전은 유교의 경전도 저렇게 읽는다. 이렇게 읽는다면 유교도 불교도 월인천강이다. 본래 평등한 중생, 그런데 평등하지 않은 우리의 세계, 월인천강은 함께 가자는 소리이다. 함께 간다면 고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릇된 것을 안다면 고쳐야 한다. 고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세종이 월인천강이란 말에 담고 싶었던 세종의 뜻이라고 믿는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세종이 남긴 메시지, 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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