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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투/기관목인 판타지

10_비트코인을 녹이는 기술

기관목인 판타지

네 염려(念慮)를 붙어 네 색신(色身신)을 부린다.

몸은 염(念)의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네 몸이 어떤 원인으로 염(念)의 부림을 좇아 갖가지로 상(像)을 취하는가?

마음은 내고, 형(形)은 취하여, 염(念)과 서로 응하는가?


깨면 상심(想心)이 되고, 자면 꿈이 되니

염려(念慮)는 허(虛)한 정(情)이다. 색신(色身)은 실(實)한 얼굴이다.

허(虛)와 실(實)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능히 서로 부림은

상(想)을 붙어 녹음이라.

마음은 허한 상(想)을 내지만, 형(形)은 실한 물을 취한다.

마음과 형(形)이 씀이 다르지만, 능히 서로 응하는 까닭은 상(想)을 붙어 통함이다.


몸과 염(念)은 무리가 아니다. 허(虛)와 실(實)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서로 능히 부린다. 불륜(不倫), 허(虛)한 정(情)과 실(實)한 얼굴이 서로 어울고 부린다. 환암과 목은은 고려를 대표하는 엘리트요, 지도자였다. 임금도 나라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였다. 그런데 환암은 곡도의 이익을 말한다. 단멸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의 말에는 뭔가 간절함이 담겼다. 지금은 다 잊혀진 말, 환암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을까?

블록체인 기술은 '건축술', 비트코인은 '집'이에요.

근데 그 집을 처음에는 마을회관 하라고 지었는데, 지어놓고 보니 도박장이 돼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도박장을 규제를 하려고 하니까, 건축을 탄압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유시민 작가의 가잘빔은 늘 산뜻하다. 아! 뭔가 잘못됐구나! 그래, 잘못이라면 고쳐야겠지. 뭘 고쳐야 하지? 어떻게 고쳐야 하지? 그래서 모여서 토론을 한다. 이런 저런 의논들, 그럼 '누가 고치지?', 이런 물음도 나오게 마련이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나는 환암과 목은이 떠오른다. 그들의 논란을 듣고 있자니, 환암의 간절함이 느껴기기 때문이다. 그 토론 마당에 환암과 목은을 불러 보고 싶다.

비트코인은 현대의 환술로 된, 가상의 것으로, 실유(實有)하지 않는다.

충분히 발전된 테크놀로지는 매직과 구별할 수 없다.


인터넷만 대충 둘러 보아도 저런 말이 넘친다. 비트코인을 '현대의 주술, witchcraft'라고 부른다. 매직이라고도 부른다. 신기루나 물거품, 환상이나 환각이란 말도 쓴다. 목은이 말하는 사여게(四如偈)의 비유가 몽땅 나온다. 다 환(幻)이란 말이다. 누구나 비트코인이 곡도라고 한다. 그런데 '돈을 모르는 사람은 비트코인을 알 수 없다'는 말도 있다. 비트코인만이 곡도가 아니란다. 돈 그 자체가 곡도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돈이 곡도인 줄을 모르면, 비트코인의 정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루젼(illusion)과 리얼(real)을 가르기도 한다. 얼굴 없는 것과, 얼굴 있는 것의 차이이다. 있음과 없음, 불륜의 사이이다.

피아트 머니(Fiat Money)

불환화폐, 또는 명목화폐


정부가 합법으로 선언했지만, 실재하는 재화로 뒷받침되지는 않는 돈. 피아트 머니의 가치는, 돈을 구성하는 물질의 가치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서 나온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돈은 금이나 은과 같은 실질의 가치에 바탕을 두었지만, 피아트 머니의 가치는 오직 '믿음'에 바탕한다.


실제 대부분의 미국 달러, 약 90%의 달러는 순전히 추상의 것이다. 어떤 형태를 가진 물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2012년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 돈의 약 10% -대략 총 10조 달러 가운데 약 1조 달러-만이 종이나 동전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 은행시스템이 내킬 때마다 달러를 만들어 내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다.

피아트 머니(Fiat Money), 피아트(Fiat)는 라틴어라고 한다. 피아트 룩스(Fiat Lux),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성경의 말씀이란다.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말이란다. 피아트 머니, '돈이 있으라 하니, 돈이 있었다' 란 말이다. 이게 우리 시대의 돈이다. 빛이야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라니 뭐랄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쓰는 돈, 그걸 창조하는 자는 누굴까? 실질(實質)이란 말은 '얼굴이 있다'는 말이다. 정부의 선언이라지만 말 한 마디로 얼굴을 가진다. 얼굴없는 것에 얼굴을 주는 자는 누구일까? 그 대부분의 돈을 '있으라'고 하는 은행이나, 그 대부분의 돈을 마음대로 갖고 쓰는 부자들은 다만 모두 창조의 권능을 입은 것일까? 그래서일까? 미국의 돈에는 'In God We Trust'란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믿는 신', 이게 정말 돈의 정체일까?

돈이 있으라 하니, 돈이 있었다


최저임금, 몇백원 몇십원을 두고도 세상이 흔들린다. 사람들은 모여 소리를 지른다. 대통령의 지지율도 출렁거린다. 피아트 머니, 그렇게 만든 돈은 다 어디로 갔나? 젊은이들은 왜 밤을 새워 알바를 해야 하고, 늙은이들은 왜 폐지를 주워야 하나? 비트코인에는 '바이러즈 인 뉴머리스, Vires in Numeris'란 말이 새겨져 있단다. '숫자의 힘'이란 뜻이란다. 이게 비트코인의 모토란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숫자의 힘'에서 나온다는 뜻일까? 정말 그럴까? 저 사람들은 '숫자의 힘', 그 값어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 돈 몇 푼 만지자고 밤낮으로 헤매는 것일까? 이게 정말 돈의 정체일까?

지제황엽止啼黃葉)이 지허망(知虛妄)이리라

울음 잦힌 누른 잎이, 거짓 것인들 알리라


열반경(涅槃經)에

누른 잎으로 금돈 만듦은, 아이의 울음을 잦히기 위함이니

하다가 본래의 근원을 알면

대장경의 가르침이 다 오직 아이 울음 잦힘이라

진실의 법이 아니다.


비트코인도 돈이다. 언해불전에도 장사와 흥정, 돈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누른 잎으로 만든 금돈, 허망(虛妄)을 '거짓 것'이라고 새긴다. '것'이란 말, 물(物), 물건을 가리킨다. 물건에는 얼굴이 있다. 진실의 몸이 있다. 살도 있고 빛깔도 있다. 거짓의 금돈, 거짓이라 해도 얼굴이 있다. 게다가 쓰임새도 있다. 아이의 울음을 잦힌다. 거짓의 돈이야 뻔하다. 누런 돈을 주면 울음을 그치던 아이도 금새 큰다. 언젠가는 다 안다. 그 때쯤이면 더 이상 울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비유의 끝이 놀랍다. 대장경 안에 담긴 가르침, 몽땅 '진실의 법'이 아니란다. 우는 아이들, 울음 잦히기만 하면 그 뿐이란다.

곡도의 일은 불륜의 일이다. 허(虛)한 정(情)이 실(實)한 얼굴을 짓는다. 피아트 머니, 숫자의 힘, 이런 말도 다 허한 정이다. 얼굴이 없는 빈대가리의 상상이 얼굴을 가진 돈을 지어낸다. '아이 울음을 잦히기 위함'이었다지만, 그 거짓 얼굴은 어느 덧에 도박장이 된다. 가난한 사람의 삶을 지배한다. 대장경의 가르침도 도박장이 된다. 모르는 사람을 간섭한다. 고달프게 부린다.

환단일립(還丹一粒)이 점철성금(點鐵成金)하며

환단 한 낱이 쇠에 찍으면 금이 되며


환단은 신선의 약이다. 철학자의 돌, 연금술사의 약이다. 점철성금(點鐵成金), 이 것도 사자성어이다. 환단 한 낱으로 쇠에 찍으면 금이 된단다. 이 것도 곡도의 일이다. 이런 게 곡도를 다루는 언해불전의 우리말투이다. 피아트머니와 다를 바가 하나 없다. 어린 백성이야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되는 마법의 환단, 숫자의 힘, 테크놀로지의 매직, 4차 산업혁명이라고? 그 믿얼굴, 그 본질은 모두가 곡도이다. 얼굴없는 허한 정으로 얼굴을 가진 거짓의 것을 지어낸다. 아이의 울음도 잦히지만 천만의 개돼지, 노비도 부린다. 환암이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다. 언해불전의 말투. 돈도 비유일 뿐이다. 이 세계의 사람이 지어낸 법은 모두가 곡도의 법이다. 얼굴없는 허한 정으로 지어낸 얼굴을 가진 거짓의 것이다. 곡도의 일, 보면 안다. 알면 고친다.

나는 비트코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비트코인의 이야기, 영화 매트릭스를 상상한다. 이름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비트코인의 설계자, 매트릭스의 아키텍트를 상상한다. 그가 지어낸 곡도의 세계를 사랑한다. 비트코인은 돈이 아니다. 돈이래 봐야 거짓의 돈이다. 울음을 잦히는 돈. 환암은 '기환소진(起幻銷塵), 곡도를 일으켜 듣글을 녹이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비트코인의 매트릭스, 나는 '기환소진의 마당'이라고 부른다. 곡도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곡도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반성한다. '찍으면 돈이 되는' 세계, 그 돈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들, 비트코인은 그런 세계의 이야기이다. 곡도를 보면 곡도를 안다. 곡도를 알면 곡도를 떠날 수 있다. 곡도의 차별을 떠나자는 이야기이다.

꿈이야 깨면 그만이고, 곡도야 술법을 거두면 빈다.

물거품은 물로 돌아가고, 그림자는 그늘에서 없어진다. 이슬은 마르고, 번개는 사라진다.

모두 진실의 '있음'이 아니다. 진실의 '있음'이 아니지만, '없음'이라 할 수도 없다. 진실의 '없음'도 아니지만, '있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건 목은의 말씀이다. 돈의 환술도 숫자의 술법을 거두면 빈다.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닌 거짓 돈의 세계, 세월은 흐른다지만 돈의 차별. 곡도의 차별은 점점 커질뿐이다. 기관목인 판타지, 곡도의 이야기는 그냥 멀고 넓은 아시아의 상상이 아니다. 하루 하루를 근근 꾸려가는 우리 모두의 사롤 혬이 걸렸다. 곡도의 몸이 되어 곡도의 세계를 살아가는 곡도의 이야기. 언해불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이야기 뿐이다. 곡도를 일으켜 듣글을 녹인다. 곡도의 비트코인을 일으켜 곡도의 돈을 녹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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