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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투/기관목인 판타지

07_환암기(幻菴記)

기관목인 판타지

환암기(幻菴記), 목은집(牧隱集)

내 어려 산중으로 노닐기를 좋아하여 스님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그들이 사여게(四如偈) 외는 걸 들으면, 비록 다 알지는 못해도, 다 '하염 없음'으로 돌아갈 뿐이겠다.

꿈이야 깨면 그만이고, 곡도야 술법을 거두면 빈다. 물거품은 물로 돌아가고, 그림자는 그늘에서 없어진다. 이슬은 마르고, 번개는 사라진다. 모두 진실의 '있음'이 아니다. 진실의 '있음'이 아니지만, '없음'이라 할 수도 없다. 진실의 '없음'도 아니지만, '있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부처의 가르침이 이와 같다.

나이 들어 선비 열여덟 사람과 계를 맺고 사이좋게 지냈다. 오늘날의, 천태의 원공(圓公)과 조계의 수공(修公) 도 함께 했다. 서로의 얻음이 깊었고, 서로의 바람이 두터웠으니, 다시 뭐라 하겠는가?

그러다 나는 연경(燕京)으로 공부하러 갔고, 수공(修公)도 산으로 들어 갔다. 이제 삼십 년이 되었다. 간혹 마주치더라도 하루를 자면 헤어지곤 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시와 술에 흠뻑 젖었던 때로 어찌 다시 돌아갈까? 참으로 꿈 같고, 참으로 곡도 같구나. (중략)

청룡(靑龍) 혜(惠) 선사가 서울에 오는 길에 공(公)이 편지를 보내 기문(記文)을 부탁하면서 이르기를,

몸이 곡도인 것은 사대(四大)가 이것이다.

마음이 곡도인 것은 연영(緣影)이 이것이다.

세계가 곡도인 것은 허공의 꽃이 이것이다.


그러나 이미 곡도라고 했으니, 이는 볼 수 있고, 닦을 수 있다.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닦을 수 있는 것을 닦으니, 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는 같지 않다. 이것이 내가 평일에 서 있는 자리이다. 이게 어찌 단멸(斷滅)로 들어가는 것이겠는가?


또 이른바 삼관(三觀)이라는 것이 있어 따로 닦기도 하고,

단수(單修)와 복수(複修)로 청정한 정륜(定輪)을 완성하니,

곡도를 일으켜 듣글을 녹이는 기술이 그 속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므로 곡도가 이 말학(末學)에게 주는 이익이 아주 작지만은 않다. 이것이 내가 머무는 방에 내걸고자 하는 뜻이다. 그래서 내 소문을 듣고 내 방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고요하고 걸림 없이 한가하게 머무는 자리에 뭐라고 이름을 걸고, 말을 세워 지붕 위에 다시 지붕을 더하겠는가?


내가 공(公)을 안지가 오래 되었다. 게다가 공부선(功夫選)의 자리에서, 오직 공(公)이 입을 열어 묻는 뜻에 답을 하였다. 새삼 공(公)의 이름이 속절없는 게 아니오, 무리를 만만배나 벗어났음을 알았다.

이제 암자에 이름을 거는 뜻을 보니, 자기를 나토려는 것이 아니다. 그 문을 들어서는 이들로 하여금 기대어 힘을 쓸 자리를 삼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보잘것 없는 글을 돌보지 않고 쓰게 되었다.

다시 노래를 지어 붙이니,

힌 구름아, 큰 허공을 가누나

긴 바람아, 큰 바다를 접누나


그 옴이여, 어디로부터 오나

그 감이여, 어디에 있나


암자 가운데 높이 누우니,

겨르로운 도인이로세


달을 등 삼으니,

솔은 덮개로세


거듭 이르니, 뒤에 나의 기문(記文)을 읽는 자들은 마땅히 곡도의 심식(心識)을 배운 뒤라야 수공(修公)의 됨됨이를 알 것이다. 내가 기문을 지은 뜻을 알 것이다. 바라건대 눈을 높이 들어 보라.

무오년 여름 5월 26일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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