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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투/기관목인 판타지

09_허실의 불륜

기관목인 판타지

그러나 이미 곡도라고 했으니, 이는 볼 수 있고, 닦을 수 있다.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닦을 수 있는 것을 닦으니, 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는 같지 않다. 이것이 내가 평일에 서 있는 자리이다. 


이게 어찌 단멸(斷滅)로 들어가는 것이겠는가?


환암은 대뜸 '단멸(斷滅)'을 되묻는다. 목은에게 묻는 걸까? 언해불전에서 '그쳐 멸(滅)함', 또는 '그쳐 없음'이라고 새기는 말이다. 환암은 '몸이 곡도, 마음이 곡도, 세계가 곡도'라고 한다. 목은은 '진실의 있음'과 '진실의 없음'을 가린다. 실유(實有)와 실무(實無)이다. 실(實)이란 글자는 허(虛)와 짝을 짓는다. 허실(虛實)의 짝이다. 실(實)이란 글자는 여름, 또는 열매의 뜻이다. 언해불전은 형각(形殼)을 '얼굴과 대가리'라고 새긴다. 밤이나 땅콩, 열매의 대가리 안에 열매의 알맹이, 열매의 얼굴이 담긴다. 알맹이가 찼다면 실유이다. 알맹이가 비었다면 허무이다. 그렇다면 곡도는 어떨까? 실유일까, 허무일까? 허무라면 단멸이다. 목은이 인용하는『금강경』, 부처는 '그쳐 없음'. 단멸이라는 말도 이르지 말고 염(念)도 내지 말라고 한다. 단멸은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다. 뻔한 이야기, 물론 목은도 알았을 게다.

네 염려(念慮)를 붙어 네 색신(色身신)을 부린다.

몸은 염(念)의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네 몸이 어떤 원인으로 염(念)의 부림을 좇아 갖가지로 상(像)을 취하는가?

마음은 내고, 형(形)은 취하여, 염(念)과 서로 응하는가?


깨면 상심(想心)이 되고, 자면 꿈이 되니

염려(念慮)는 허(虛)한 정(情)이다. 색신(色身)은 실(實)한 얼굴이다.

허(虛)와 실(實)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능히 서로 부림은

상(想)을 붙어 녹음이라.

마음은 허한 상(想)을 내지만, 형(形)은 실한 물을 취한다.

마음과 형(形)이 씀이 다르지만, 능히 서로 응하는 까닭은 상(想)을 붙어 통함이다.


불륜(不倫)이란 말이 있다. 국어사전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라고 새긴다. 사람의 도리라지만, 들어 주는 예문은 모두 '혼외정사'를 가리킨다. 요즘의 말투가 그렇다. '혼외'라는 말, '혼인의 밖'이다. 그렇다면 혼인은 또 뭘까? 결혼식을 하고 법에 따라 신고를 하고...... 그런 건 다 누가 정했을까? 그걸 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언해불전에도 불륜(不倫)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이건 혼외정사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말도 변한다. 그래도 언해불전의 불륜, 뜻밖이다. 언해불전은 이 말을 '물이 아니다'라고 새긴다. '물'은 '무리'의 옛말이다. 당(黨)이란 글자, '무리 당'이라고 읽는다. 언해불전은 '서로 사귀는 무리'라고 풀이한다. 이런 풀이를 따르자면, 혼외정사의 불륜은 '물이 아닌 이들이 서로 사귀는' 일이 된다. 유유상종이란 말도 있다. 유(類)란 글자도 '무리 류'라고 읽는다. 분류라는 말은 '무리를 가르다'는 말이다. '물'이라는 말, 말은 쉬워도 쓰임은 넓다. 여당과 야당, 무리를 지어 사귄다. 여당의 사람이 야당의 사람과 사귄다면 어떨까? 이 것도 불륜일까?

말장난 하자는 게 아니다. 말투 이야기를 꺼내 보자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글, '몸은 염(念)의 무리가 아니다'라고 한다. '허(虛)와 실(實)은 무리가 아니다'라고도 한다. 요즘의 철학, 존재와 인식, 가치 따위를 가린다. 그리고 그 가리는 방법은 논리라고 한다. 언해불전의 말투, 이숌(있음), 아롬(앎), 값이라고 새긴다. 여당과 야당을 가르는 가치, 값은 뭘까? 위의 구절 안에 요즘 철학의 문제들이 다 담겼다. 몸과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 먼저 이름이 다르다. 존재의 방식이 다르다. 무리가 다르다. 그래도 서로 응한다. 서로 녹고 섞인다. 무리가 다른데도 서로 녹고 섞이는 까닭은 뭘까? 언해불전의 불륜, 같고 다름을 가리는 방법이다. 분류의 말투, 논리의 말투이다. 존재와 인식을 반성하는 말투이다.

마치 솜씨 좋은 환사(幻師)가 네거리에서 기와 조각이나 풀잎, 나무 따위를 모아 갖가지 환화(幻化)의 일을 지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코끼리의 몸이라든지, 말의 몸, 수레의 몸, 걷는 몸과 마니, 진주, 유리, 나패, 벽옥, 산호 등 갖가지 재물과 창고 따위의 몸입니다.


어리고, 아둔하고, 나쁜 꾀만 가진 중생들은 분명히 알지 못하고, 기와 조각이나 풀잎, 나무로 벌이는 갖가지 환화의 일을 보고 들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보이는 코끼리의 몸은 실제로 있는 것이다. 말의 몸이나 수레의 몸, 걷는 몸도 실제로 있는 것이다.......'


환(幻)이란 글자, 곡도라는 말, 이런 환술, 이런 비유로부터 나왔다. 기와 조각과 코끼리의 몸, 불륜이다.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기와 조각으로 코끼리의 몸을 나톤다. 코끼리의 몸이 곡도이다. 코끼리의 몸을 나토는 이는 환사(幻師)라고 부른다. 곡도쇠이다. 곡도를 나토는 일은 환화(幻化)이다. 기와 조각과 코끼리의 몸,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다. '있음'이 다르다. 그런데 어린 사람들, 기와 조각의 몸도, 코끼리의 몸도 실유(實有)로 여긴다. 그 까닭은 뭘까? 기와 조각이 실(實)이라면, 코끼리의 몸은 허(虛)이다. 허와 실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허와 실이 서로 부린다. 서로 응한다. 환암은 다만 그걸 묻는다. 그래서 그는 그가 사는 집에 '환암'이란 이름을 걸었다. 네가 보는 것, 네가 듣는 것, 네가 아는 것, 정말로 실유일까?

허(虛)와 실(實)은 무리가 아니다. 무리가 아닌 것이 서로 응하고 서로 부린다. 서로 사귄다. 불륜의 사귐이다. 이 것이 곡도의 정체이다. 이 것이 목은이 말하는 '있음과 없음의 사이'이기도 하다. 공민왕은 환암혼수를 지극히 존경했다. 가까이 두고 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환암은 늘 도망을 다녔다. 말 없이 서울을 떠나 산 속으로 돌아갔다. 환암은 임금에게도 곡도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 환암이 문득, 단멸(斷滅)을 되묻는다. 곡도 이야기, 환암도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허탄(虛誕)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괴탄허무(怪誕虛無)라는 말도 있다. 희한한 거짓, 허무의 말, 이단의 불교를 배척해야 하는 까닭이다. 환암과 목은, 고려말 조계(曹溪)의 의표(儀表)이고, 선비의 영수(領袖)였다. 그들은 진실로 서로 '닷옴이 무겁고 예를 다했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 단멸과 허무로 당(黨)을 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단멸과 허무는 불륜의 이단이 되었다. 함께 사귈 수 없는 무리, 배척과 도태의 대상이 되었다. 환암도 그걸 알았을까? 그래서 목은에게 단멸을 되물었던 것일까?

'허(虛)와 실(實)은 무리가 아니다'. 이 말은 사람의 존재와 인식을 가리는 말이었다. 무리가 아닌 것들이 서로 부리고 서로 응한다. 서로 붙어 녹는다. 멀쩡한 몸과 마음이 곡도의 몸과 마음으로 바뀐다. 곡도의 몸과 마음이 붙어 녹으며 곡도의 세계를 함께 지어간다. 환암혼수의 '곡도의 말투', 15세기 언해불전의 우리말투에는 그런 말투가 담겼다. 곡도를 다루는 불륜의 말투, 이익이 있다. 단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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