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12_02 노(怒) 먹은 금강

증도가 현각의 노래

실상(實相)을 증(證)하면

사람과 법(法)이 없어


'사람과 법(法)', 이 것도 짝이다. 법(法)이란 글자, 불교의 말투를 따르자면 이 글자는 의(意)와 짝을 이룬다. 의근(意根)과 법경(法境)의 짝이다. 그 사이에 의식(意識)이 있다. 근(根)은 몸이다. 경(境)은 몸에 마주하는 물건, 대상이다. 예를 들어 눈으로는 빛깔과 모양을 본다. 귀로는 소리를 듣는다. 물건의 모양이고 물건의 소리이다. 의근은 물건을 법으로 안다. 이럴 때 법(法)이라는 글자는 한 것, 또는 한 물건을 다른 것과 구별해 주는, 그 것의 속성이다. 예를 들어 '소금은 희다.', 또는 '소금은 짜다', 의근은 소금을 이런 투로 가려 안다. 눈으로 물건의 빛깔과 모양을 보듯, 의근은 물건을 법으로 안다. '희다', 또는 '짜다'와 같은 속성은 소금의 '자성(自性)'이라고 부른다. 이런 말, 불교에서는 오래 된 말투이다. 의근이나 의식은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몸이 몸 밖의 물건을 헤아리는 기능이다. 사람의 몸은 몸 밖의 것들을 법으로 헤아리고, 법으로 안다.

이 어떤 낯인고

너겨 의론(議論)하며 사량(思量)하면, 어지러운 뫼에 가리리라


영가현각이 불러 낸 구절, 사람이 알게코자 불러 낸 구절이다. 구절은 말씀이다. 말로 부르는 노래이다. 그의 말, 그의 노래에도 이름과 얼굴이 있다. 말로 하는 노래, 법(法)의 이름이고 법(法)의 얼굴이다. 영가의 노래가 사람의 귀청을 때린다. 사람은 귀청으로부터 이름과 얼굴을 여기고 헤아린다. 법의 이름이고 법의 얼굴이다. 영가의 노래, 남명은 '의의사량(擬議思量)'이란 말을 쓴다. 언해는 '너겨 의론(議論)하며 사량(思量)하면'이라고 새긴다. 이런 일이 법으로 여기고 법으로 사량하는 일이다. 사랑하고 헤아린다. 이런 일이 의식(意識)이 하는 일이다. 감각으로 얻은 느낌, 너기고 의론하고 사량한다.

이런 말투,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영가의 말투를 따르자면 사람의 위(爲), 사람의 '하욤'이다. '하욤'은 속절없다. 뜬 구름도 속절없고, 물거품도 속절없다. 속절없이 가며 오며, 속절없이 나며 없다. '물과 거품에 이름과 얼굴이 다르다 여기지 말라'고 한다. 그런 줄 알면 이(離)와 미(微)도 그치고, 사람과 법도 없다. 사람의 의근이 법으로 하는 일, 의식의 아롬이다. 한 끝에 사람의 몸이 있다면 다른 한 끝에 물건의 법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구절과 아롬이 있다. 두 끝이 그치고 없는 사이에 구태여 불러 낸 구절이다. 하염없고 속절없는 사이에 불러낸 이름과 얼굴이다.

오직 이 사람이니

오직 이 사람이라 함은, 내 친(親)히 증(證)한 끠, 인(人)과 법(法)이 다 없어 오직 제 한 사람 따름이라.


남명의 노래이고 언해의 풀이이다. 사람도 없고, 법도 없는 사이에 구태여 불러낸 구절, 그 사이에 다시 영가를 불러 낸다. 오직 이 사람, 언해는 '인(人)과 법(法)과 둘 없은 곳에, 오히려 능망(能亡)한 지(智) 있음'이라고 부른다. 없는 사람은 누구이고, 있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지여목전(只汝目前)에 역력고명(歴歴孤明)한 물형단자(勿形段者)이사

오직 네 눈 앞에 번드기 또로 밝은, 얼굴 못할 것이사


이건 『몽산법어약록언해』라는 책의 구절이다. 역력(歴歴)은 분명하고 완연하다는 말이다. '번드기'라고 새긴다. '또로'는 '고(孤)', '홀로'이다. 선불교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얼굴 못할 것', 이런 말도 참 재미있다. 번드기 또로 있지만, 마땅히 부를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다. '오직 이 사람이니', 사람도 법, 둘 없은 곳에 또로 앉은 사람, 헷갈린다. 언해불전도 미안했던지, '아쳐랄시니'라고 한다. '아쳗다'는 기(忌)나 염(厭), 조심해서 잘 피하라는 말이다. 사람도 법도 없다지만, 이것도 말이고 구절이다. 이걸 듣고 아는 사람, 이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 사람의 얼굴을 너긴다면, 그런 일을 가장 피하라는 말이겠다.

향엄(香嚴)이 이르시되

익은 해 가난함은 가난치 아니하더니, 올 가난이사 실(實)로 가난토다

익은 해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올해는 송곳도 없도다


하시니, 사(師)가 이 말 혀, 인(人)과 법(法)과 둘 없는 뜻을 나토시니라

향엄(香嚴 799-898)은 당나라 때의 선승이다. 거년(去年)은 '익은 해'라고 새긴다. 금년(今年)은 '올히'라고 새긴다. '익은 해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리, 올해는 송곳도 없도다', 유명한 구절이다. '혀다'는 인(引), '인용하다'는 말이다. 남명이 이 구절을 끌어 와 '인(人)과 법(法)과 둘 없는 뜻'을 나토았다고 한다.

금강(金剛)이 문(門) 밖에, 오히려 노(怒)를 먹었도다


방인독소노파심(傍人獨笑老婆心)

곁의 사람은 오히려, 늙은 할매 마음을 웃나다


영가의 노래와 남명의 노래, 그리고 언해의 노래, 그걸 가리는 까닭은 부르는 노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번드기 또로 밝은' 그대의 노래도 같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늙은 할매의 마음, 노파심(老婆心)을 새긴 말이다. 요즘에도 흔히 쓰는 말, 불교에서는 '노바심'이라고들 읽는다. 언해불전에 '바사차며 브즐우즐하야'란 말이 있다. 자잘한 일에 안절부절하는 모습이다. '브즐우즐하신 자비'란 말도 있다. 늙은 할매의 마음은 그런 마음이다. 늙은 할매만 그럴까?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할매 차별이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르자면 부처도 브즐우즐이다. 늙은 할매의 마음, 이 구절은 남명의 말투이다. 언해는 남명의 말투를 들어 도리어 남명의 말투를 웃는다. 이런 말투를 '아쳐랄시니'라고 비판한다. 친절이 지나쳐 사족이 되었달까, 이런 걸 가려 읽는 맛도 언해의 말투를 읽는 재미이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

'세종과 함께 읽는 > 道를 證한 노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37_진승을 표하니  (0) 2018.09.05
036_결정한 말을  (0) 2018.09.05
012_01 알게코자 부른 구절  (0) 2018.08.23
011_03 작대와 절대  (0) 2018.08.21
011_02 부처의 말투, 조사의 말투  (0) 2018.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