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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말의 얼굴

1.4 미스 하라웨이의 얼굴대가리

공각기동대의 속편에 ‘미스 하라웨이’라는 줄담배 아줌마가 나온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를 똑 닮았다. 이 장면은 해러웨이와 그가 쓴 ‘사이보그 선언문’에 대한 오마쥬이다. 그리고 빈대가리라는 제목에 대한 감독의 친절한 주석이다.

20세기 말, 우리의 시대, 신화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키메라이다. 이론으로 만들어진 기계와 유기물의 튀기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이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다. 거기로부터 우리의 정치가 나온다.


‘사이보그 선언문’이 나온 것은 1985년이고, 저 만화영화가 나온 것은 1995년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이다. 사이보그는 서구의 문화와 정치가 벌인 전쟁의 전위에 서 있다. 그는 서구의 인종주의, 백인 남성 엘리트가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바로 겨냥한다. 공각기동대는 해러웨이의 선언에 공감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빈대가리, 그 오랜 상상에 기대어 해러웨이의 선언문을 제 나름 해석했다.

사람과 기계가 연결되는 미래의 세계, 사람과 기계의 구분이 흐려지는 사이, 영화 속의 사이보그들은 제 얼굴을 의심한다. 타고난 유기체의 살은 티타늄이나 신소재 대가리로 바뀌었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지식이나 기억도 필요에 따라 업로드되고 다운로드 된다. 내 대가리 속의 내 얼굴, 아직도 잘 있을까? 얼굴이란 게 남아있다면 그 얼굴은 아직도 내 것일까? 유기체로서의 내 얼굴과 사이보그로서의 내 얼굴은 같을까 다를까?

하얀 거북이의 얼굴은 신령함이다. 영(靈)이라는 글자, 요즘도 우리는 영혼이라는 말을 쓴다. 저 영화에 영혼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고스트란 말을 비추어 보면 고스트와 소울(soul)을 대비시킨 게 아닐까, 짐작은 간다.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아’이다. 영혼의 얼굴, 자아의 얼굴이다. 귓것의 얼굴과 영(靈)한 얼굴은 분명 다르다. 말은 그렇다.

사이보그는 계속 의심한다. 해러웨이는 그런 몸을 키메라, 하이브리드, 튀기라고 부른다. 사람과 기계의 튀기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기계의 몸과 사람의 몸이 연결되면, 영혼이나 자아도 업로드하고 다운로드 할 수 있을까? 타고난 유기체의 몸이 아니라도, 유기체 사람이 만든 AI, 로보트에게도 영혼이나 자아를 심어 줄 수 있을까? 심어주지는 않더라도 기계가 점점 사람을 닮아 가다 보면 어느덧 기계에도 영혼이나 자아가 생겨나는 건 아닐까? 해러웨이와 공각기동대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성한다. 얼굴대가리에 대한 반성이다. 빈대가리의 의심이 이랬다.

줄 끊으니 나는 자유

기관목인에게 물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