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본래평등, 본래자유

4.2 기관목인에게 물어 봐

기관목인 판타지

납이가 석모(席帽) 인다고, 시인(詩人)이 되랴…….

석모는 주옥으로 꾸몄나니, 부인의 화려하고 길한 옷이라


석모를 쓴 원숭이, 이것도 무협지다운 장면이다. 석모는 본래 가늘고 고운 비단 망사에 구슬과 비취로 꾸민 화려한 옷이었다. 귀한 여인의 길(吉)한 옷, 뒤집어 쓰면 낯과 몸을 가려준다. 고운 망사 사이로 비치는 아련한 모습, 신비주의 패션이랄까? 세월이 흘러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는 글깨나 읽는 귀족들이 즐겨 썼다고 한다. 하늘하늘 귀부인, 몸의 신비주의도 있지만, 먹물 엘리트 남진, 시인의 신비주의도 있다. 요즘에는 그저 밀짚모자를 가리킨다.

수지석모하(誰知席帽下)

원시석수인(元是昔愁人)


석모 아래야 누가 알리오

원래 아래부터 시름하던 사람인줄


석모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겼다. 우리에겐 김삿갓이 있다. 삿갓으로 낯을 가린 시인, 삿갓 아래에 해묵은 시름도 가렸다. 숨긴 시름에서 시가 나올까? 술 한잔에 시 한수, 과연 김삿갓이다.

범의 갓과 양의 얼굴, 얼마나 하뇨


호피(虎皮)와 양질(洋質)을 저렇게 새겼다. 범과 양은 다른 짐승이다. 피질(皮質), 피(皮)는 갖나맟, 가죽 대가리, 껍데기이다. 질(質)은 얼굴이다. 얼굴대가리의 대구이다. 범에게는 범의 얼굴대가리가 있다. 양에게는 양의 얼굴대가리가 있다. 이처럼 얼굴대가리는 분석, 나누어 쪼개는 방법(方法)이다. 범에게는 범의 값이 있다. 양에게는 양의 값이 있다. 누구나 아는 상식의 값이 있다. 그렇다면 범의 가죽을 둘러쓴 양의 값은 얼마일까? 범대가리에 양의 얼굴이라면 이질(異質), 얼굴이 다르다. 대가리의 값과 얼굴의 값, 어떻게 매겨야 좋을까? 양두구육이란 말도 있고, 표리부동이란 말도 있다. 속이고 속고, 늘 있는 일이다. 잘 따져 보지 않으면 속아 넘어간다. 석모를 쓴 원숭이, 범의 갓에 양의 얼굴, 얼굴과 대가리의 짝이다. 내 대가리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나의 대가리, 나의 얼굴, 나의 값은 얼마일까? 그런 값은 누가 정하나?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일까? '중생과 부처가 한가지로 뒷논 것', '보리'라고 한다. '아롬'이라고 새긴다. 내 대가리 안에도 그런 게 들었다고 한다. 그게 얼굴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왜 모를까? 그런 걸 뭐하러 자꾸 묻는 걸까? 중생의 대가리에 부처의 얼굴, 이 것의 값은 또 얼마일까?

시인이란 말도 참 재미있다. 눈사람은 눈으로 빚은 사람이다. 목인(木人)이나 석인(石人), 불교책엔 이런 말도 자주 나온다. 나무로 깎은 사람이고, 돌로 쪼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시로 빚은 사람인가? 시를 쪼았나? 나무사람이나 돌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빗대는 말이다. 양질, 양의 얼굴처럼 사람의 질(質), 사람의 얼굴을 가리킨다. 이건 몸의 얼굴이다. 몸의 살이다. 이런 말을 자꾸 하는 까닭도 몸의 얼굴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시인이란 말, 시가 그 사람의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 본질을 묻는다. 시인이란 말도 있지만, 작가(作家)란 말도 있다. 시를 짓고 글을 짓는 사람이다. 작가라는 말도 선불교의 선사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선사들에게 이 말은 최고의 칭찬이다. 지을 작(作), 때에 따라 곳에 따라 해야 할 짓을 하는 사람이다. 하저즈롬을, 작위를 얼굴로 삼은 사람이다. 부처란 말은 ‘아롬’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부처의 얼굴, 부처의 몸은 아롬일까? 그렇다면 중생의 얼굴, 중생의 몸과 살은 모롬일까? 말이란 게 이렇다. 낯을 가리고 시름을 숨긴다고, 또는 술 한잔 걸친다고 시가 절로 나오지 않는다. 석모를 쓴 납이,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건 돼지, 다 같은 말이다. 본래 뒷논 얼굴과 그걸 싸고 가리는 대가리, 그 사이의 일을 경고한다. 속지 마라.

기관목인을 불러 물어라

부처 구해 공들이면, 어느 제 이루리오


기관(機關)이란 말, 이게 참 볼만하다. 이 말 하나로 책 한 권을 쓴 적도 있다. 기원전부터 써 오던 정말 해묵은 말이다. 목인(木人)은 나무로 만든 사람이다. 얼굴이 나무이다. ‘소림사 십팔동인’이란 영화도 있었다. 이건 얼굴이 구리이다. 손도 있고 발도 있다. 구리로 지은 몸 안에 기관이 잠겼다. 기관이 뮈면 사람도 뮌다. 갈수도 있고 잡을 수도 있다. 본래 뒷논 것, 가질 것은 다 가졌다. 그래서 불러 물어 보란다. “기관목인아 기관목인아, 너도 부처 구해 공들이면 부처가 될 수 있니? 어느 제나 이루겠니?” 언해불전에는 이런 상상도 들었다. 4차 5차, 산업혁명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어느 제인가는 AI도 부처를 이룰까? 부처를 이룬다는 말은 ‘본래 제 뒷논 것’을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본래 자유, 본래 평등이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는 AI, 이것도 이제는 흔한 상상이다.

기관(機關)이라고 하는 것은, 기(機)는 기미(機微)로,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관(關)은 관절(關節)로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므로 무릇 맺어진 몸과 입은 모두 뜻에 붙어 하저즌다.


기관이라 함은 나무로 만든 사람이 마음은 없고 오직 끈으로 매어 능히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마음이 생겨 나고 없어지는 것이 모름지기 나무 사람이 마음이 없는 것과 같아야 이치에 맞는다. 만일 방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 한갓갖 앎이 없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다면 망국패가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기미는 움직임이 막 시작하는 순간이다. 방아틀이 튀는 순간이다. 손과 발에는 관절이 있다. 관절에는 힘줄이 걸려 있다. 뜻이 힘줄을 움직여 관절이 꿈틀하는 순간이다. 작업(作業) 또는 작위(作爲)를 ‘하저즐다’라고 새긴다. 뜻은 의근(意根)이 하는 일이다. 생각하고 사랑하고 헤아린다. 뜻이 줄을 뮈워 힘줄을 잡고 놓는다. 발을 들고 손으로 잡는다. 기관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는다. 과녁을 겨냥하고 숨을 멈춘다. 온몸이 손가락으로 엉긴다. 당기는 순간 방아틀이 튄다. 기(機)라는 글자, 한 순간이라지만 그냥 시간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함께 엉겨있다. 엉겼던 게 튀는 순간, 시간도 튀고 공간도 튄다. 날렵한 치타의 몸을 상상해 보자. 사슴을 노리고 풀 사이에 몸을 숨긴다. 온 몸의 힘줄을 감아 쥔채 사슴을 바라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힘줄이 튕긴다. 사슴을 향해 몸을 날린다. 이런 게 기(機)이다. 기는 동물의 살혬이다. 튕겨야 할 때 튕기지 못하면 살 수가 없다.

기(機)에 맞춤은

기(機)에 맞은 말과, 살 끝이 서로 맞닥치는 듯한 말을 일러


투기(投機)란 말이 있다.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언해불전은 ‘기에 맞다’, 또는 ‘기에 맞추다’라고 새긴다. 서로를 향해 화살을 날린다. 촉과 촉이 허공에서 맞닥친다. 그런 게 투기이다. 힘이 엉긴 방아틀이 튕기는 일이고, 튕김과 튕김이 허공에 맞닥치는 일이다. 시인은 시로 된 사람이라지만 작가는 기(機)로 된 사람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가고 오고, 이런 게 튕김이다. 튕기는 자이고 딱딱 맞추는 사람이다. 기를 튕기며 다닌다. 시인은 시가 얼굴이다. 작가는 기가 얼굴이다. 사람은 동물이다. 하염없이 기를 튕겨대며 다닌다. 기관은 튕겨대며 사는 사람, 사람의 몸, 사람의 얼굴을 살피는 말이다.

인터넷, 유튜브 같은 곳에서 ‘가라쿠리’또는 ‘karakuri’를 찾아 보면 숱한 기관목인을 만날 수 있다. 이건 일본의 기관목인이다. 마찬가지로 오토마톤(automaton)이나 오토마타(automata)를 찾으면 서양의 기관목인이 나온다. 17-8세기 서구의 기관목인이 일본으로 전해져 ‘가라쿠리’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 일루져니스트의 주인공은 로베르 우당(1805-1891)이란 마술사를 본땄다고 한다. 그는 오랜 동안 시계를 만들던 시계 장인 집안의 출신이었다고 한다. 태엽과 톱니 바퀴로 움직이는 시계, 그런 기술로 갖가지 기관장치도 만들었고, 기관을 가지고 마술쇼를 벌여 큰 돈을 벌기도 했단다. 일본은 가라쿠리의 전통을 로봇문화, 로봇산업의 뿌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기관목인의 뿌리는 인도이다. 인도의 문화를 기록한 불교책이다. 괴뢰를 놀리는 환사(幻師)가 하던 일이 바로 저런 일이었다. 기관장치를 만들어 놀리던 놀이, 환사나 환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기관목인도 기를 튕겨댄다. 사람처럼 움직인다. 그런데 나무 사람에게 뿌리가 있을리 없다. 뜻이 있을리 없다. 마음이 있을리 없다. 관절을 매고 푸는 이, 잡고 놓는 이는 몸 밖의 다른 사람이다. 기관목은 그래서 괴뢰이다. 곡도이다. 괴뢰로 된 사람, 불러 물으라고 한다. 그대도 자유로운가? 그대도 평등한가? 그대도 알수 있는가? 그대도 알면 부처인가?

환화공신즉법신(幻化空身卽法身)

법신각료무일물(法身覺了無一物)


곡도같이 된 빈몸이 곧 법신이니

법신을 알면 한것도 없으니


시를 얼굴로 삼은 시인이 있다지만 곡도를, 환(幻)을 얼굴로 삼은 환인도 있다. ‘곡도 같이 된’, 환화(幻化)를 이렇게 새긴다. 이에 비해 공신(空身)은 텅 빈 허공을 얼굴로 삼는다. 법신(法身)이란 말도 있다. 법인이란 말도 있다. 법으로 된 사람이다. 법을 얼굴로 삼는다.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다. 별별 얼굴이 다 있다. 제 몸의 제 얼굴, 제 기관을 튕기고 다닌다. 제 얼굴을 모르면, 제 기관을 모르면 패가망신이란다. 제 몸이나 제 집안 만이 아니다. 속절없는 기관은 사람과 나라를 통째로 망친다. 그래서 기관목인, 불러 물으라고 한다. 나의 얼굴, 나의 튕김, 나는 어느 제야 이룰까? 제 얼굴의 제 값, 제가 묻지 않으면 누군가가 정해 준다. 그러면 곡도의 몸이 되고, 곡도의 값이 된다. 그 값은 누가 치르고 누가 가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