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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투/기관목인 판타지

01_기관목인 판타지

기관목인에게 물어 봐 - 02_기관의 발동

 

기관목인(機關木人)을 블러 무르라

부텨 구(求)하야 공(功) 드리면 어느 제 일우리오

 

당나라의 희한한 고승, 영가(永嘉) 현각(玄覺 665-713)이 지은 『증도가(證道歌)』라는 노래의 한 부분이다. 육조(六祖) 혜능(慧能638-713)을 찾아가 큰 아롬을 인정받았다는 분이다. 언해불전은 ‘도(道) 증(證)한 노래’라고 새긴다. 노래치고는 무척 긴 노래이다. 글도 좋지만 깊은 맛을 담고 있어 선시(禪詩)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불교는 물론 시로, 교양으로도 널리 읽히던 노래였다. 이 구절은 『증도가』의 맨 앞부분에 나온다. 세종이 두 아들과 함께 직접 말을 고르고 다듬은 구절이라는 뜻이다. 세종과 두 아들, 그들은 말을 고르며 무슨 상상을 했을까? 어떤 생각을 나누었을까?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달려 있다.

기관이라 함은 나무로 만든 사람이 마음은 없고 오직 끈으로 매어 능히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마음이 생겨 나고 없어지는 것이 모름지기 나무 사람이 마음이 없는 것과 같아야 이치에 맞는다. 만일 방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 한갓 앎이 없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다면 망국패가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무로 만든 사람’이라고 한다. ‘거울아, 거울아……’, 이런 물음도 있다지만, 여기서는 나무 인형에게 묻는다. ‘인형아, 인형아, 열심히 도 닦으면, 언젠가 부처를 이루겠니?’ 나무 인형에게는 생각이 없다. ‘마음’이 없다고 한다. 생각이니 마음이니 제쳐 두고라도 나무 인형이 대답을 할 까닭이 없다. 생각도 없고, 마음도 없고, 그렇다면 뭐 물어 볼 까닭도 없다.

생각을 끊어서 생각이 없는 상태(無念)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차가운 나무토막이나 죽은 재와 같이 되겠다는 것이니, 기관목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성불할 기약이 있겠는가? 이러한 견해는 생각 그 자체가 그대로 무념(無念)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생각이 문득 원만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종경록(宗鏡錄)』의 설명은 조금 더 친절하다. 무념과 무생은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물건이 되겠다는 것과 같다. 생각이 없고 남이 없는 사람은 기관목인이나 진배가 없다. 생명이 없는 존재, 나무토막이나 죽은 재와 같은 기관목인은 부처도 될 수 없다. 번뇌를 가져서 중생이라고 하지만, 번뇌를 다 제거하여 무념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도 부처가 아니다. 물론 번뇌를 끊고 인연을 끊는 것이 해탈이요, 성불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문이다. 그런 태도는 옳은 태도도 아니고, 옳은 수행도 아니라고 한다. 설명이야 친절한 듯 싶지만, 정작 점점 더 아리송해지는 기분이다. 친절한 설명이 사람을 잡기도 한다.

기관목인에게 물어봐

 

이게 참으로 오래 묵은 비유요, 상상이다. 말이야 어찌 됐건 아무튼 이 비유가 가리키는 목적은 분명하다. 몸과 마음이다.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 생각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 그런 일을 따져 보자는 것이다. 남명은 기관목인을 ‘끈으로 매어 움직이는 인형’, 어찌 보면 간단하게 해석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기관목인은 그저 ‘나무인형’이 아니다. 이 말, 이 비유에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생각과 상상이 담겨 있다. 매우 강렬하고 단단한 뿌리를 가진 상상이다. 불교는 '아롬'에 대한 가르침이다. 『증도가』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아롬의 정체를 다룬다. 몸을 아는 일, 마음을 아는 일, 그런 저런 상상이 이 말 안에 담겨 있다. 기관이란 말, 기관목인이란 말, 먼저 말의 뿌리를 따라 가 보자.

산을 넘고 골을 지나 길은 험난한데, 오백여 리를 가면 달마실철제(達摩悉鐵帝) 나라에 이른다. 두 산 사이에 위치하니, 도화라(覩貨邏) 나라의 옛 땅이다. 동서로 천오륙백 여리, 남북으로는 넓은 곳이 4-5리, 좁은 곳은 1리도 채 되지 않는다. 박추하(縛芻河)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높고 낮은 흙 언덕에 모래와 돌이 널려 있고 찬 바람이 거세다. 재배하는 것은 오직 보리와 콩이다. 숲은 거의 없으며 꽃이나 과일도 넉넉하지 않다. 좋은 말을 많이 기르는데 모양은 비록 작지만 빠르고 민첩하다. 풍속에는 예의가 없고 사람의 성품도 사납고 모질다. 생김새는 보잘것없으며 털로 짠 옷을 입는다. 벽록(碧綠)의 눈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여러 나라와 다른 점이다.

 

혼타다(昏馱多) 성은 나라의 서울이다. 그 성에 큰 절이 있는데 그 절 가운데 돌로 만든 불상이 있다. 불상의 위에는 금동으로 만든 둥그런 보개가 걸려 있다. 온갖 보배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불상을) 돌면 보개도 따라서 돌고, 사람들이 멈추면 보개도 멈춘다. 신기하기가 헤아릴 수조차 없다. 노인들은 성인(聖人)의 원력이 지켜준다고도 하고 비밀스런 기관(機關)의 기술이라고도 한다. 그 건축을 살펴 보면 돌 벽이 높고 튼튼하다. 여러 이야기들을 따져 보아도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대당서역기』의 한 구절이다. 삼장법사 현장(602-664)은 629년 장안, 지금의 시안을 떠나 645년, 657 부의 불교 책을 챙겨 돌아 왔다. 짙푸른 옥, 벽록(碧綠)의 눈 빛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나라, 저런 책에 담긴 글자 하나 하나는 그대로가 자극이고 상상이다. 저 나라, 저 땅은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이른바 와칸주랑(瓦罕 Wakhan)으로 알려진 곳이다. 동서로 길게 흐르는 박추하를 따라 북쪽으로는 타지크스탄이 있고 남쪽으로 파키스탄이 있다. 박추하는 아무 다리야(Amu Darya) 또는 옥서스(Oxus) 강으로도 불리는데, 박추하는 옛 이란 계의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옥서스는 희랍계의 말이라고 한다. 이런 이름의 어원만을 보더라도 이 지역이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곳은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람, 쿤룬, 티엔샨 등,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맥들이 만나고 겹치는 곳이다. 그 사이를 뚫고 흐르는 강을 따라 수천 년간 대상들의 교역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세계의 문명이 만나고 섞이던 곳이었다. 현장이 다녀간 뒤로 백여년이 흘러, 고선지 장군이 전설의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했다.

사람을 따라 돌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크고 화려한 보개, 그 뒤에 얽힌 ‘비밀의 기관장치’, 현장은 ‘신기하기가 헤아릴 수 조차 없다’고 했다. 희한한 동네의 희한한 이야기들, 천오백 년 전의 『대당서역기』는 비밀과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다. 무엇보다 현장이 걸어간 공간, 장대하고 경이롭다. 어딜 가나 처음가고 처음 보는 것들, 진득히 앉아 풀어 볼 수도 없는 신기한 사람, 물건, 사건…… , 오래 묵은 여행기, 모험담이 갖는 매력이겠다. 하지만 기관이라는 말, 그 중에서도 유달리 신기하고, 놀랍고 비밀스럽다. 기관이란 말이 본래부터 그랬다. 말 자체가 상상이자 판타지였다.

아주 먼 옛날, 어떤 나라에 임금님이 살았다. 그에게 아들이 다섯 있었는데, 첫째는 지혜가 뛰어났고, 둘째는 정교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는 용모가 단정하였고, 넷째는 노력이 뛰어났으며, 다섯째는 복덕이 으뜸이었다. 이들이 서로 자기가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을 했지만, 과연 누가 가장 뛰어난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각자가 가진 장점들을 시험해 보고 누가 제일인지 가름을 하기로 했다. (중략) 

 

이 때 둘째 아들 공교(工巧)는 다른 나라로 옮겨갔다. 그 나라의 임금이 기술을 좋아하여 곧 나무로 기관목인을 만들었다. 모습이 단정하여 산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의복이나 얼굴 빛깔, 총명하기가 비할 데가 없었으며 춤도 잘 추고 사람처럼 행동했다. (주위에) 알리기를 “제 아들이 몇 년을 살았는데 나라에서 공경하여 여러 곳에서 선물을 보내주었다” 고 했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 공연을 하도록 하여 임금과 부인이 누각에 올라 함께 관람했다. 얼마쯤 노래와 춤을 보여주니 무릎 꿇고 절하고 들고 나는 것이 산 사람보다 훌륭했다. 임금과 부인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했다. 

 

 (기관목인이) 문득 곁눈으로 부인에게 색정이 담긴 눈짓을 했다. 임금이 이를 멀리서 보고 분노가 치밀어 시자에게 명하기를 “목을 베어 와라, 어찌 나의 부인에게 곁눈질을 한단 말인가? 나쁜 뜻이 있으니 색정이 담긴 눈짓이 틀림없다.”고 했다. 

 

그 아비가 울며 불며, 온 구멍에서 눈물을 쏟아 냈다. 무릎을 꿇고 빌기를, “제게 유일한 자식이라 너무도 깊이 사랑하여 앉으나 서나, 나가나 들어오나 (아이를 보며) 근심 걱정을 풀곤 했습니다. 저의 미련한 생각이 미치지 못해 이런 실수가 있었습니다. 죽여야 한다면 저도 마땅히 함께 죽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가엾이 여겨 죄를 용서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임금의 분노가 커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임금께 아뢰기를, “만일 살 수가 없다면, 바라옵건데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고, 제 손으로 직접 죽이게 해 주십시오” 라고 했다. 왕이 바로 허락을 했다. 

 

(아비는) 곧 (기관목인의) 어깨에서 쐐기 하나를 뽑아내자, 기관(機關)이 해체되어 땅 위로 흩어졌다. 임금은 경악하여, “이 몸이 어쩌다 재목(材木)에게 화를 냈단 말인가? 이 사람의 교묘한 기술은 천하무쌍이구나. 이 기관과 360개의 관절을 만드니 살아 있는 사람보다 훌륭하다.” 라고 하며 억만의 금을 상으로 하사했다. 곧 금을 가지고 나와 여러 형제들과 먹고 마시게 하니, 모두가 게송으로 노래했다.

 

공교(工巧)를 보자니, 이룬 것이 많구나

기관(機關)으로 목인(木人) 지어, 산 자보다 뛰어나니

춤추고 노래하고, 귀한 분을 즐겁게 해

상으로 받은 보물, 그 누가 제일일까

 

『생경(生經)』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경전을 번역한 축법호(竺法護 239-319)는 월지(月支) 사람으로 돈황에서 출가하여 장안과 낙양 등지에서 수많은 문헌을 번역했다. 기관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바로 이 축법호의 이야기가 그 중에서도 가장 상세하고 생생하다. 나무로 조각한 360개의 관절을 이어 부치고 거기에 기관장치를 달아 혼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도록 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인형, 구경하던 임금님조차 질투에, 분노에 떨게 했던 기관목인, 이런 것이 불교 문헌에 등장하는 기관, 기관목인의 정체이다.

둘째 아들의 이름, 공교(工巧)는 기술이 정교하다는 뜻이다. 한자에 담긴 뜻도 뜻이지만, 이 이름은 인도 전통의 학술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당서역기』에는 오명(五明), 곧 다섯 가지 학술의 종류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첫째는 성명(聲明)으로, 언어에 관한 학술이다. 둘째는 공교명(工巧明)으로, 천문, 역법(曆法), 기술, 기관 등에 관한 학술이다. 셋째는 의방명(醫方明)으로, 의술과 주술에 관한 학술이다. 넷째는 인명(因明)으로, 논리에 관한 학술이다. 다섯째는 내명(內明)으로, 인과(因果)의 이치를 따지는 학술이다.

공교(工巧)라는 이름은 둘째 학술분류법의 이름, 공교명(工巧明)에서 유래한 것이다. 부처님 이전부터 이어 오던 인도 전통의 학술이었고, 인도의 지식인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현장은 ‘인도 사람들은 일곱 살이 넘으면 점차 오명의 학술을 단계적으로 배워 간다’ 고 설명하고 있다. 현장은 십여 년을 인도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문헌들을 수집했다. 그 때의 기록, 『대당서역기』는 그만큼 생생한 기록이다.

기관 또는 기관목인, 불교 문헌을 뒤져 보면 이 말이 참으로 오래 되고 널리 쓰이던 말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려대장경에는 기관이라는 말이 모두 83종의 문헌에 236 차례 등장한다. 불교대장경에 보이는 기관이란 말은 물론 인도 말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번역이 이뤄지기 시작한 초기, 2-3세기 무렵부터 이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편찬 또는 저술된 문헌들, 대장경과 속장경을 합하여 찾아 보면 그 숫자는 1,400여 차례로 부쩍 늘어난다. 한문불전이 유통하던 시간과 공간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기술과 기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의 분야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만큼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기관목인 이야기는 이런 기술, 이런 학술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기관목인을 다루던 학술이 있었고, 기술이 있었고, 문화가 있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기관목인의 모습과 연기, 임금님의 즐거움은 질투와 분노로 바뀌고, 쐐기 하나로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다시 경악과 한탄으로 바뀐다. 짧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 기관목인 이야기의 중심은 언제나 놀라움이다. 정교한 기술에 대한 놀라움이고, 감정과 욕망에 대한 놀라움이다. 기관목인의 놀라움은 감정과 욕망을 바로 겨냥한다. 몸이 무너지는 순간, 몸의 정체도, 감정과 욕망의 정체도 담박에 발가벗겨진다.

옛날 중인도 나라에 화가가 한 사람 살았다. 일이 생겨 외국에 다녀오는 길에 어떤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집 주인이 나무로 기관목녀(機關木女)를 만들어 아름답게 치장하여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화가는 그 여인을 불러 ‘이리 와서 함께 자자’ 고 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화가는 주인이 이 여인을 보내 나를 돌보도록 했다는 생각에 여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러자, 손을 연결했던 끈이 끊어져, 몸과 손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화가는 몹시 부끄러웠지만, 주인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치욕을 갚아주고자 했다. 화가는 문틀 위에 자신이 목을 매어 죽은 것과 같은 그림을 그려 놓고, 문 뒤에 숨어 기다렸다. 

 

이튿날, 손님이 늦도록 일어 나지 않자, 주인은 의아하여 직접 가 보았다. 문을 열자 손님이 목을 매어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바닥에 나무여자가 쓰러져 있는 모양을 보고, 주인은 ‘내 솜씨가 자신의 솜씨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는 상심하여 자살을 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 나라에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임금에게 알린 후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법이 있었다. 주인이 임금에게 사실을 보고하자, 임금은 검시를 위해 신하를 파견했다. 신하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시신을 내려 놓도록 했다. 주인이 도끼를 가지고 목을 멘 끈을 끊으려다 그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되로 주고 말로 받고, 누구의 솜씨가 더 뛰어난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 비록 짧지만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다. 싱싱하고 아름다운 남녀의 몸, 욕망과 질투가 늘 따라 다닌다.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뻔한 이야기이다. 뻔해도 늘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쐐기가 빠지고 끈이 끊어지는 순간, 욕망도 질투도 재미도 함께 무너진다. 기관목녀에 색정을 일으켰던 화가의 황당함, 이것도 눈앞에 보는는 듯 생생하다. 이런 이야기가 생생한 까닭은 싱싱하고 아름다운 몸, 몸의 상상, 몸의 판타지가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몸을 가진 이들, 누구에게나 번득한 몸이기 때문이다. 쐐기가 빠지고 끈이 끊어지는 순간, 그런 상상, 그런 판타지도 함께 무너진다. 이건 좀 무섭다. 내 몸도 무너진다. 과연 생생하고 번득하다. 몸의 공감이다. 욕망이 일어나는 일, 욕망이 무너지는 일, 그 느낌, 그 공감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비밀스런 기관장치’, 이런 게 바로 이야기 속에서 기관목인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위의 글은 당나라 때, 의정(義淨 635-713)이 번역했다. 같은 시대 영가현각이 읊었던 기관목인도 그런 기관목인이었다. 기관목인 판타지, 몸의 상상, 몸의 판타지, 그만큼 생생하게 유행하던 이야기였다.

기관목인에게 물어 봐 - 02_기관의 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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