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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35_02 고칠 게 하나 없다

증도가 현각의 노래

자황(雌黃)은 고쳐 만들시라.


제법(諸法)이 본래(本來) 상녜 제 적멸(寂滅)하야,

다시 범부(凡夫) 고쳐 성인(聖人) 만들며,

망(妄)을 변(變)하야 진(眞)에 돌아 가는 뜻이 없으니,


그러면 범(凡)은 범위(凡位)에 있고, 

성(聖)은 성위(聖位)에 있으며,

뫼는 이 뫼요, 물은 이 물이라,


일일이 다 뮈지 못하리니,

그럴새 이르시되 다시 자황(雌黃)함이 없다 하시니라.


자황(雌黃)은 유황 성분을 가진 누런 광물이다. 곱게 갈아 노란 빛을 내는 안료로 썼단다. 누런 종이를 쓰던 시절, 글자를 고치고 싶다면 누런 먹으로 바르고 그 위에 고쳐 썼다고 한다. 그래서 교정이나 수정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요즘엔 하얀 수정펜을 쓴다. 언해는 '고쳐 만들다'라고 풀이한다. '사대를 놓아, 잡들지 말리니', 영가의 노래, 이런 일은 뭘 고치자는 게 아니다. 뭘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영가의 긴 노래, 같은 말을 다시곰한다. 그래도 모자라 제 혀까지 건다. 부처를 구한다고 부처 되지 않는다. 가죽이 뼈에 붙은 고행상, 공부 열심히 한다고 부처 되지 않는다. 졸리면 자렴, 고프면 먹으렴, 영가의 노파심, 늙은 할매의 마음, 남명도 따라 부르고, 언해도 따라 부른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 기이할셔!

마시며 찍먹음, 어려운 말이 아니다. 무거운 공부가 아니다. 개돼지도 하는 일이다. 버러지나 곰팽이도 하는 일이다. 사대를 놓아 잡들지 말리니, 어려운 말이 아니다. 무거운 공부가 아니다. 졸리면 자고, 고프면 먹고, 똑 같은 말이다. 브터닐고, 브터난 것, 속이 텅 비었다. 빈 것, 허공에 붙어 봐야 부질없고 속절없다.

가면 이는 천 입이 적음을 츠기 여기고

가난한 이는 한 몸이 함을 애와티니라


세상에는 마실 물도 없는 이들도 널렸다. 찍먹을 것도 없는 이들도 널렸다. 그런 이들 놀리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천개의 입, 천의 사람을 부리면서도 부족하다고 슬퍼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 이들 들으라고 하는 말도 아니다. 괴로운 죽살이의 세계, 불평등과 차별, 그 원인이 뭘까? 잡들지 말아야 할 것을 구태여 잡들기 때문이다.

집 기슭에 비긴 묏 빛은, 구름을 이어 퍼렇거늘

헌함(軒檻)에 내민 꽃가지는, 이슬 가져 옷곳하얏도다


헌함(軒檻)은 난간을 가리킨다. '옷곳하다'는 향기롭다는 말이다. 남명은 어느 것 하나 고쳐 만들게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구절을 부른다. 언해는 '자황(雌黃) 못할 평상(平常)한 경(境)'이라고 풀이한다. 범부를 고쳐 성인 만드는 게 아니란다. 거짓을 고쳐 참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란다. 언해는 '본래'와 '상녜'라는 말을 다시곰한다. 본래 그렇고 상녜 그런 일이다. 이런 말도 상식의 말투이다. 옮아 흐르는 달에 잡들 것 없다. 씨 뿌려야 할 때 씨 뿌리고, 여름 거두어야 할 때 거두면 된다.

뫼는 이 뫼요, 물은 이 물이라,

일일이 다 뮈지 못하리니,


남명의 두 구절, 언해는 이 구절로 읽는다. 언해는 『금강경삼가해』, 야보(冶父)의 말을 이끌어 남명의 구절을 읽는다.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若見諸相)의 비상(非相)하면 즉견여래(即見如來)리라.


무릇 있는 상(相)이 다 허망이니,

하다가 제상(諸相)의 상 아닌달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

뫼는 이 뫼요, 물이 이 물이니,

부처 어느 곳에 계시뇨?


상(相) 있으며, 구(求) 있음이 다 이 거짓이며,

얼굴 없으며, 봄 없다 하여도,

기울어 이운 데 떨어지리라.


유명한 『금강경』의 구절, 야보(冶父)는 선(禪)의 말투로 읽는다. 야보의 말투에는 대개 말문이 막힌다. 오래 전 선사들이나 쓰던, 선사들의 말투이기 때문이다. 함허와 언해는 개돼지의 말투, 상식의 말투로 풀이한다. 고쳐 만드는 게 아니라고 한다. 거짓의 것, 텅빈 것, 잡들지 말라고 한다. 졸리면 자고 고프면 먹으라고 한다. 뫼는 뫼, 물은 물, 배워야 할 것도 아니고 고쳐야 할 것도 아니다. 잘난 체 하면 이운 데 떨어진다.

부처의 말투, 조사의 말투, 비비고 버므는 이들도 많다. 비빌수록 어려워지고, 버믈수록 헷갈린다. 함허의 읽기, 언해의 풀이는 그래서 고맙다. 풀어 쓰는 우리말도 쉽지만, 풀어 주는 뜻도 번득하다. 누구나 아는 상식의 말투, 잊혀진다는 게 서럽다. 그래서 말투를 따로 잇비 배워야 한다는 게 우습다. 여래의 대원각, 부처의 두렷한 아롬, 알고 보면 별 거 없다. 함허와 언해의 말이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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