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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36_02 밑과 끝

증도가 현각의 노래

바로 근원을 그침은, 부처의 허한 바이시니,

잎 따며 가지 찾음을, 내 능히 못하노니,


'밑도 끝도 없다'는 말이 있다. '밑과 끝', 언해불전에서는 흔한 말이다. '밑과 끝'은 본말(本末)의 짝이다. 본(本)은 '밑'이라고 새기고, 말(末)은 '끝'이라고 새긴다. '결정한 말로 진승을 나톰', 큰 소리를 치던 영가는 문득 '밑과 끝'의 짝으로 돌아간다. 만 가지 물음으로 뜻가장 물으라던 영가, 뜻가장의 밑으로 돌아간다.

'밑과 끝'의 짝, 영가는 '뿌리와 가지'의 짝으로 가잘빈다.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의 짝은 두 겹의 짝이다. 뿌리는 밑이다. 가지는 끝이다. 근본과 근원, 비슷한 말이다. 원(源)은 물의 밑이다. 여우의 의심, 만가지의 물음, 밑을 바로 그친다고 한다. 영가가 하는 일이다. 인(印)이란 글자를 '허하다'라고 새긴다. 이런 새김도 흥미롭다. 요즘엔 '인가하다'라는 말을 쓴다. 부처의 인가, 스승의 인가, 도장을 찍으면 허락한 것이다. 밑을 바로 끊는 일, 영가가 하는 일은 부처가 도장을 찍은 일이란다.

나무 벨 사람이 뿌리를 베면, 가지와 잎이 제 떨어지고,

도 닦을 사람이 본지(本智)를 알면, 지말이 제 좇나니,


본 버리고 끝 좇음은, 오히려 삼지(三祇)를 지내어니와,

끝을 버리고 본을 조(照)하면, 아롬이 찰나에 있나니,


뿌리를 베면 가지와 잎이 제 떨어진다. 언해의 풀이는 과연 친절하고 번득하다. 부처가 도장을 찍은 일이다. 영가는 그래서 '잎 따며 가지 찾음'은 할 줄도 모른단다. 여우의 의심은 끝도 없다. 만가지로 뜻가장 묻는 까닭은 의심이 끝도 없기 때문이다. 가지와 잎으로 끝도 없이 갈리는 의심, 뜻가장 물어 밑을 가리킨다. 그래서 영가의 노래는 밑과 끝 사이에 있다. '잎 따며 가지 찾음', 할 줄도 모른다지만, 잎을 보고 가지를 보면 밑을 가리킬 줄은 안다.

아승지(阿僧祇)는 그지 없는 수(數)이니,

그지 없는 수(數) 셋이 이 세 대겁(大劫)이니라.


아승지와 찰나, 아승지는 인도말이다. 무수(無數), 수가 없는 수이다. 언해는 '그지 없는 수'라 새긴다. 그지 없는 수를 세 차례나 지낸단다. 삼지(三祇)는 그런 시간이다. 여우의 의심, 만 가지 물음, 삼지를 지내도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영가는 '밑을 바로 그침'을 노래한다. 뿌리를 바로 베는 일은 찰나의 일이다. 언해는 '아니 한 사이'라고 부른다. 많지 않은 사이, 아주 짧은 순간이다. 밑과 끝의 사이는 그런 사이이다. 그지 없는 수를 지내도 넘지 못할 사이라지만, 아니 한 사이에도 바로 넘을 수 있는 사이.

영가의 노래는 길다. 남명의 노래는 더 길다. 언해의 우리말이 번득하다지만, 두 노래 보다도 훨씬 더 길다. 밑을 바로 끊으면, 아롬이 찰나에 있다는데, 노래는 왜 자꾸 늘어질까? 여우의 의심이 길기 때문일까? 영가의 노래는 밑을 가리킨다. 그 손가락, 노래의 실끝도 조금씩 훤해진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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