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36_01 뜻가장 므던히

증도가 현각의 노래

결정(決定)한 말을,

진승(眞乘)을 표(表)하니,


시혹 사람이 신(信)하지 아니할진댄, 뜻가장 물을지어다.


바로 근원을 그침은, 부처의 허한 바이시니,

잎 따며 가지 찾음을, 내 능히 못하노니,


결정한 말로 진승을 표(表)한다. 표(表)라는 글자는 뒤에 풀이를 하면서 '나토다'라고 새긴다. '나타내다'의 옛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타내다'는 '나토다'와 '내다'를 합한 말이다. 예를 들어 '떨어지다'는 '떨다'와 '지다'를 합한 말이다. '나토다', 아까운 말이다.

영가의 노래, 말로 나톤다. 결(決)이란 글자, 막혔던 물이 탁 터져 흐르는 뜻이란다. 언해는 보통 일정(一定)이라고 읽는다. 한번 정하면, 한번 터지면 되돌릴 수 없다. 집행유예, 기소유예, 요즘에 자주 듣는 소리들이다. 유예(猶豫)라는 말, 언해불전은 '의심하다'라고 새긴다. 의심이 남으면 머뭇거린다. 미뤄 두기도 한다. '결정한 말'은 의심이 없는 말이다. 되돌릴 수 없다.

탈 승(乘), '타다' 또는 '탈 것', 동사로도 쓰지만, 명사로도 쓴다. 뭔가를 타고 어디론가로 간다. 말도 타고 수레도 탄다. 혼자 타기도 하고 함께 타기도 한다. 대승과 소승, 게다가 최상승, 탈 것도 많다. 갖가지 탈 것들이 다투어 꾄다. 뭘 타고 가지? 영가는 대뜸 '진짜 탈 것'을 들이댄다. 이걸 타라니까! 이게 진짜라니까! 영가는 큰소리를 친다. 혀를 걸던 영가, 할매의 말투로 타이르기도 한다. 그러다 헥!, 소리도 지르고 눈도 부라린다. 그래도 내가 탈 것, 내가 정한다. 그래도 내가 갈 길, 내가 정한다. 부라릴 거 없다.

결정(決定)한 말을,


의심(疑心) 말지어다.

바로 알아도, 벌써 더디니라.

향엄(香嚴)은 그 날에, 무슨 일을 이루뇨.

대를 치고 속절없이, 상상기(上上機)라 이르도다.

호의(狐疑), 여우는 의심이 많다고 한다. 언해는 그냥 의심이라고 새긴다. 영가가 결정한 말, 남명은 의심 말라고 한다. 기이할셔, 부처의 말도 믿지 못하는 마당에 누굴 다시 믿으라는 걸까?

시혹 사람이 신(信)하지 아니할진댄, 뜻가장 물을지어다.


그래서일까? 영가는 바로 꼬리를 내린다. 신(信)은 의심의 짝이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이들, 결정한 말에도 머뭇대는 여우, 언해는 사인(邪人)이라고 부른다. 사마(邪魔)라는 말도 쓴다. 그런데 정파와 사파, 정사(正邪)의 짝이다. 예전의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이블(evil),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결정한 말투였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라고 부른다. 터진 물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걸까? 정사(正邪)를 긋는 금은 뭘까?

정(正)한 사람이 사(邪)한 법을 이르면,

사(邪)한 법이 다 정(正)에 가고,


사(邪)한 사람이 정(正)한 법을 이르면,

정(正)한 법이 다 사(邪)에 가나니,


강북엔 탱자 되고, 강남엔 귤이 되나,

봄 옴에 다 한가지의 꽃을 피나니라.


『금강경삼가해』, 야보의 노래이다. 정사의 짝에도 읽는 투가 있고 나토는 씨가 있다. 일반(一般)이란 말을 '한가지'라 새긴다. 함허는 남북은 달라도 씨앗은 한가지라고 읽는다. 씨가 한가지라 꽃도 한가지라고 한다. 언해불전은 평등도 '한가지'라고 새긴다. 영가의 결정한 말, 진짜 탈 것, 모두가 한가지를 싸고 돈다. 머뭇거리는 여우도, 믿지 못하는 사마(邪魔)도 한가지에 걸렸다.

여우같은 사마, 영가는 뜻가장 물으라고 한다. 임정(任情)이란 말을 '뜻가장'이라고 새긴다. 징(徵)은 '묻다'라고 새긴다. 언해는 '뜻가장 힐난(詰亂)하라'고 풀이한다. 묻고 따지는 일이다. 여우같은 사마의 뜻, 그 뜻이 가는대로 묻고 따지라고 한다. 언해는 '만가지 물음'과 '한가지 묘(妙)'의 짝을 세운다. 만가지 물음, 물음의 끝이다. 끝까지 묻고 끝까지 따지고, 그게 뜻가장이다. 결정한 말을 나토는 사람, 뜻가장 물어야 한다. 한가지 묘를 가진 탓이다.

남명은 임단장(任短長)이라 노래한다. 언해는 '뎌르며 기롬을 므던히 너기다'라고 새긴다. 임(任)이란 글자, 여기서는 '므던히 여기다'라고 새긴다. '므던하다', 요즘 사전은 '소홀하다'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무던하다'는 '너그럽고 수더분하다'고 한다. 언해의 말투,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가볍게 넘기라는 뜻이다.

'힐난'이란 말, 사전은 '트집을 잡아 거북할 만큼 따지고 듦'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해불전의 힐난은 '뜻가장'과 '므던히'의 사이에 있다. 여우와 사마(邪魔)도 '뜻가장'과 '므던히'의 사이에 있다. 만가지 물음, 뜻을 따라 묻고 따지라고 한다. 이런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까? 무던히 할 수 있는 일일까? 의심많은 여우들, 구태여 믿으려 들 것도 없다. 만가지로 물으라니 뜻대로 물으면 그만이다. 뜻대로 묻고 뜻대로 따지고, 뜻대로 간다면야 뭐가 어려울까? 언해의 말투, 말이 무겁다고 뜻까지 무겁게 읽을 거 없다. 새소리, 물소리 듣듯, 므던히 들으라고 한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

'세종과 함께 읽는 > 道를 證한 노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36_03 밤에 다닐 사람  (0) 2019.01.17
036_02 밑과 끝  (0) 2019.01.13
035_02 고칠 게 하나 없다  (0) 2019.01.10
035_01 부처 사용법  (0) 2019.01.07
034_02 옮아 흐름과 덛덛함  (0) 2019.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