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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17_01 아롬이 그릇일새, 차별의 말투

증도가 현각의 노래

내 몸에 본래 뒷논 것을 아니, 각별히 새로 이룬 기특(奇特)이 없을새, 이르시되 예를 부터 눈섭 털이 눈 가에 있다 하시니,

하마 기특이 없으면, 아침 오고 나조가 감에 배 고프거든 밥 먹고 잇브거든 잘 따름이니라.


각각 눈썹 털이 눈 위에 빗겼나니라

부처 이르신 법이 오직 눈 위의 눈썹 털을 이르시니

하다가 이 눈 위의 눈썹 털인댄, 날 제 덛덛이 있나니, 뉘 홀로 없으리


'모로기 알고', 기특이 없다고 한다. 조석(朝夕)을 '아침과 나조'라고 새긴다. '눈썹 털이 눈 가에 있으니', 이걸 알면, '배고프거든 먹고 잇브거든 잘 따름'이란다. 눈썹 털이야 누가 모르겠나? 그게 뭐 어렵겠나? 그냥 보면 안다. 그래서 모로기란다. 그래도 '아롬이 그릇일새', '안 마음도' 잊으란다. 여기에 한자라고는 한 글자도 없다. 게다가 함허는 부처 이르신 법이 '오직 눈 위에 눈썹 털'이란다. 날 때부터 가진 눈썹 털, '뉘 홀로 없으리?' 언해불전의 말투가 이렇다. 볼수록 놀랍다. 동서고금에 이런 말투는 없었다. 이런 말투가 왜 잊혀졌을까?

석가모니가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고 사자후를 지었다.

기이하며, 기이할셔!

일체의 중생을 널리 보니, 여래의 지혜 덕상(德相)을 갖추어 두되, 오직 망상과 집착으로 알지 못하놋다.


중생이 한가지로 받았으되 모름을 너비 보샤 탄식하여 이르시되 기이할셔 하시고, 살고 죽는 바다의 가운데를 향하여 밑없는 배를 타고, 구멍없는 저를 부시니……


'새로 일운 기특이 없을새', 이 말을 보면 함허의 '기이할셔'가 저절로 떠오른다. 함허는 석가모니의 '기이할셔'를 다시 보았다. 그는 이 말을 불교의 시작이라고 했다. '기이할셔'로부터 '밑 없는 배를 타고, 구멍없는 절를 부시니', 그 숱한 말들이 나왔다. 영가의 '모로기 알고', 함허는 다시 이 말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기특이 없다'고 했다. 함허의 불교, 언해불전의 풀이, 기이(奇異)에서 시작하여 기특(奇特)으로 맺는다. 기이한 일은 '모롬'이다. 모른다는 게 기이하다. '모롬'이 기이했기에, '아롬'은 기특할 게 없다. 다만 '기이할셔'를 뒤집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기이와 기특, 말장난이 아니다. 함허가 부처와 영가의 노래를 읽는 방법이다. 이를 우리말로 새기고 풀이하는 언해불전의 눈이고 말투이다. 함허의 읽기, 기특하지 않은가? 이런 말투를 여태 몰랐다니 기이하지 않은가? 이건 나의 말장난이다. 누구라도 불교라는 말을 들으면, '제 눈썹'을 떠올리면 좋겠다.

이 불조(佛祖)의 향상(向上)의 기관(機關)이니, 어찌 족히 기특하다 이르리오. 그럴새 이르시되, '향상(向上)의 기관(機關)을, 어찌 족히 이르리오' 하시니라.


부처와 조사의 '향상(向上)의 기관(機關)', 이 말도 이 노래의 열쇠말이다. 저 할배들이야 '배고프면 먹고, 잇브거든 잘 따름'이라지만, 우린 어쩌란 말인가? 날렵한 언해의 말투, 이런 일을 그냥 넘길 리 없다. 이어지는 노래, 이 열쇠말은 뒤에 묶어서 읽도록 하겠다.

백미(白眉)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영화 킬빌에 파이메이(Pai Mei)란 도사님이 나온다. 모습은 도사님이라지만, 성질은 아주 더럽다. 영화 속의 빌은 중국 대금을 불어 가며, 더러운 이야기를 멋지게 늘어 놓는다. 파이메이가 길을 가다 소림사 중을 만났다. 그는 제 나름에, 까딱 예를 표했다. 겁나는 파이메이, 그 속을 누가 알겠나? 중은 얼른 지나쳤다. 어디 감히, 속이 상한 파이메이는 소림사를 찾아가 손바닥 하나로 수십명을 죽였다.

백미(白眉)라는 말, 표준말로는 '바이메이'라고 읽는다. 남방의 광동 사투리로는 '박메이'란다. 킬빌의 타란티노 감독은 '파이메이'로 읽는다. '파이메이'는 말하자면, 중국의 초절정 고수를 읽는 타란티노의 판타지이다. 파이메이는 서양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동양을 그리는 판타지이다. 그들의 말투이다. 파이메이의 눈썹은 진짜로 희다. 진짜로 굵다. 그런 눈썹, 말로는 나토기도 힘든 초절정 고수의 상징이다. 평등은커녕, 이 눈썹은 초월과 신비의 상징이다. 그런데 타란티노, 전설의 흰 눈썹을 코메디로 다룬다. 피는 강처럼 흘러도 그의 이야기는 다 웃긴다. 고약한 흰 눈썹의 판타지도 가벼워진다.

여래선(如來禪)을


모로매 밀밀(密密)히 알리니

고요하여 하염없어, 사구(四句)에 건너 뛰니라

두려운 부채를 비록 가져, 달의 둘레를 비기나

날랜 매는 울가의 토끼를, 치지 아니 하나니라


규봉(圭峯)이 이르시되, 달마(達磨) 전(傳)하신 바가 이 여래(如來)의 청정(淸淨)한 선(禪)이며, 또 이름이 최상승선(最上乘禪)이니,


그 선(禪)이 '고요하며 하염없어 사구(四句)에 건너 뛰니라' 하시니, 사구(四句)는 유구(有句)와 무구(無句)와 비유비무구(非有非無句)와 역유역무구(亦有亦無句)이라.


두려운 부채는 말씀을 가잘비고, 달의 둘레는 여래선(如來禪)을 가잘비시니, 이르시되, 날랜 매는 바로 허공(虛空)의 대붕(大鵬)을 치되, 어찌 울 밑의 토끼를 돌아 보리오 하니 


상지(上智)는 최상승선(最上乘禪)을 모로기 증(證)하거니, 어찌 말씀에 있으리오. 그럴새 이르시되, '두려운 부채를 비록 가져 달의 둘레를 비기나, 날랜 매는 울 가의 토끼를 치지 아니 하나니라' 하시니라.


대붕(大鵬)은 곤어(鯤魚)가 화(化)하여 된 큰 새니, 한적 날개 침에 구만리(九萬里)옴 가느니라.


밀밀(密密)은 '빽빽하다'는 말이다. '쵝쵝하다', 건성건성 넘기지 말고 야무지게 챙기라는 소리이다. 잔소리가 시작된다. 기특할 게 없다는 함허의 말투, 이 말을 풀이하는 언해불전의 날렵한 우리말투, 이런 건 왜 잊혀졌을까? 이어지는 노래, '여래선(如來禪)을', 이 한 마디로부터 말투가 꼬이기 시작한다. 최상승(最上乘)이란 말로부터, '건너 뛰다', 초월로 이어진다. 날랜 매로부터 대붕(大鵬)으로 날아간다. 이런 말투는 '제 눈썹'의 말투가 아니다. 이런 말투는 파이메이의 말투가 된다. 초절정 고수들, 고약하고 더러운 피바람의 말투가 된다. '모로기 알고'는 이제 함허의 말처럼 '뉘 홀로 없으리'가 아니다. '상지(上智)나 알 수 있는 최상승선(最上乘禪)', 초절정 고수의 판타지가 된다. 한 마디 사이에 말투가 바뀐다.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파이메이는 소리 지른다. 너는 누구냐? 네 낯짝을 밝혀라! 꺼져! 너 따위는 어림도 없다. 심장이 터지고 피가 튄다. 애고, 희지도 못하고, 굵지도 못한, 가여운 내 눈썹.

그래서 함허의 말투, 언해불전의 말투는 어렵다고 한다. 몸의 평등과 자유, 한가지 제쥬변의 눈썹, 꿈 같은 소리라고 한다. 때로는 과격하다고도 한다. 차별의 말투, 타란티노라면 어찌 읽을까? 흰 눈썹의 도인들, 코메디로 읽겠지. 입신(入神)이라던 바둑의 고수들도 다들 알파고에게 나가 떨어졌다. 흰 눈썹의 판타지, AI라면 어찌 읽을까? 꼭 붙어 봐야 아나? 촛불 앞에 더 이상 초절정 고수란 없다. 파이메이의 손바닥이 아무린 강한 들, 아무나 치고 다닐 수도 없다. 흰 눈썹 굵어 봐야 어디에 쓸까? 그런 걸로 뽐낸다면 웃음거리나 되겠지.

증도가, 그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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