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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말의 얼굴

1.12 비는 이, 이받는 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말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구절이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그리고 이건 이른바 국민교육헌장의 구절이다. 말은 돌고 돈다. 인류공영은 뭐고 세계평화는 또 뭘까? 자꾸 이바지는 하라는 데, 이 말은 또 무슨 말일까? 쉽지 않다. 번득하지 않다.

이받다. [옛말]

대접하다. 봉양하다.

이바디. [옛말]

잔치의 옛말


이바지. [명사]

1. 도움이 되게 함

2. 물건들을 갖추어 바라지함

이 것은 국어사전의 풀이이다. 이바지는 ‘이받다’, ‘이바디’에서 왔다고 한다.

성중에 장자와 거사가 함께 중 이바도리라


이 것은 언해불전의 말이다. 반승(飯僧)을 ‘중을 이받다’라고 새겼다. 중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다. 중은 부처와 함께 모여 사는 이들이다. 비구, 빌어 먹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이받다’는 ‘빌다’에 대응한다. 누구는 빌고, 누구는 이받는다. 그 사이에 밥이 있다. 비는 것은 밥이고 이받는 것도 밥이다. ‘이받다’, 이바디, 이바지는 모두 밥을 먹이는 일이다. 요즘에는 ‘이바지음식’이란 말이 있다. 남녀가 어울어 어른이 될 때, 폐백의 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바지는 밥을 먹이는 일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기쁜 날, 신랑집에서 밥을 먹이면, 신부집에서도 밥을 먹인다. 먹고 먹이고, 주거니 받거니, 이것도 평등이다. 밥의 평등이다. 이바지는 그런 말이다.

그래도 요즘 이바지란 말을 들으면 대개, 국가가 떠오른다. 세계평화와 인류공영, 뭔가 그런걸 떠올린다. 신랑신부야 그렇다쳐도 국가가 밥을 먹나?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은 또 어찌 먹이나? 국가에 이바지, 세계와 인류에 이바지, 이게 말이 되나? 하기야 어디 밥뿐일까? 밥이 아니더라도 고기도 있고 빵도 있겠다. 대접하고 잔치한다는데 그런 것까지 따질 까닭은 없겠다. 아무튼 헷갈린다.

구이에 주어, 바리에 담으니

사해(四海)에 어느 사람이 빚을 갚으리오


옛날 중이 의 집에 니거늘, 쇼히 ‘무엇을 찾는가?’라 물었다.

중이 이르기를 ‘가리지 않음이 옳다’라고 했다.

쇼히 곧 말 구이의 풀을 바리에 담아 주었다.


밥이 먼저다. 이게 부처의 법이다. 부처의 법은 밥에서 시작했다. '구'는 '구유'의 옛말이다. 소나 말의 밥을 담는 그릇이다. 바리는 스님의 밥을 담는 그릇이다. 소와 말의 밥으로 스님을 이받는다. 누구의 밥을 누구에게 이받나? 누구의 빚을 누가 갚을까? 묘한 장면에 묘한 물음이다. 저 스님은 말구이의 풀을 먹을 수 있었을까? '가리지 않음', 비는 이와 이받는 이의 사이에는 이런 법도 있었다. 

이런 일도 늘 보는 일이다. 승속(僧俗)의 대구를 ‘중과 숗’라 새긴다. ‘니다’는 ‘가다’의 옛말이다. 가난한 이와 가면 이, 대구는 이어진다. 이건 어린이와 어진이의 대구이다. 대구는 다시 비는 이와 이받는 이로 이어진다. 밥을 빌어도 순서가 있다. 비는 법이고 먹는 법이다. 법의 기준은 단 하나, 어린이와 어진이, 평등으로 맞는다. 일곱집을 도는 까닭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만큼 조금씩만 빈다. 집을 가리지 않는 까닭은 평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어진이도 어린이도 평등하기 때문이다. 집도 가리지 않지만, 주는 것도 가리지 않는다. 평등으로 빌어 먹는다.

누가 빚을 갚으리.


밥은 빚이다. 빌어 먹는 법은 약속이다. 빌어먹자는 약속은 ‘빚을 지겠다’는 약속이다. 빚을 진다면 갚아야 한다. 누구는 어질고 누구는 어리고, 많고 적고의 차별이다. 양의 차별이다. 차별은 뒤에 생겼다. 본래는 평등했다. ‘기이할셔’, 이 말로부터 약속이 나왔다. 빌어먹는 약속은 빚을 짖겠다는 약속이다. 빚을 짖겠다는 약속은 빚을 갚겠다는 약속이다. 본래평등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래서 평등은 약속이 된다. 빚이 된다. 빚을 갚아야 한다.

중과 숗, 빌어먹는 이와 이받는 이의 대구이다. 이받는 이는 말구유에서 풀을 주어 바리에 담아 준다. 이건 이받는 이의 약속이다. 빌어먹는 이의 약속을 이받는 이가 받아 들인다. 밥을 이받는다면 고마운 일이다. 살혬이 열린다. 큰 빚을 졌다. 그런데 약속까지 받아 들인다면 고마움은 배가 된다. 이거야 말로 큰 빚이다. 말구유의 풀을 통해 빌어먹는 이의 약속은 이받는 이의 약속이 된다. 가림이 없는 평등의 약속, 서로의 약속이다. 빚은 점점 커진다. 그래도 고맙고 기쁜 까닭은 큰 빚을 나눠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촛불과 탄핵, 어수선했던 겨울을 지나 새로 뽑은 대통령은 저런 말을 했다. 이건 대통령의 약속이다. 석가모니도 대통령도 밥을 짓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들도 먹어야 산다. 밥은 빈말이 아니다. 밥은 살혬이다. 누구든 먹어야 산다. 대통령의 약속은 대통령의 빚이다. 서로의 약속, 약속을 지키려면 말구유의 풀이라도 이바지해야 한다. 대통령을 먹여 살려야 한다. 평등도 민주주의도 빈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빚이다. 우리 모두의 살혬이다. 이런 일은 누가 주고, 누가 받는 일이 아니다. 밥으로 살혬으로 약속을 삼으면 된다. 법을 삼으면 된다. 약속을 지키고 법을 지키면 된다. 그게 빚을 함께 갚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