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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세종에게

사람 잡는 인문(人文)

세종실록, 14년(1432) 10월 20일


직제학(直提學) 권채(權採)를 불러 일렀다.

앞에 지어 올린 『삼강행실(三綱行實』 서문에 '이남(二南) 보다 원매(遠邁) 하다'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신하가 임금을 기리는 말에 사실과 달리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요순(堯舜)에 견주고, 삼대(三代)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보면 알만 하다. 내가 보기에 원매(遠邁)란 말은 너무 지나치다. 이 두 글자를 고쳐서 다시 올리라.


채(採)가 바로 원매를 무양(無讓)이라고 고쳤다.


이남(二南)은 『시경』의 말투이다. 주남(周南)은 주공(周公)이 다스리던 땅이고, 소남(召南)은 소공(召公)이 다스리던 땅이다. 이남의 풍화(風化), 또는 덕화(德化), 하늘과 성인의 뜻으로 가르치고 다스리던 나라, 세종의 말투였다. 삼대(三代)는 하(夏), 상(商), 주(周), 세 나라의 시대를 가리킨다. 공자가 가장 칭찬하고 부러워하던 시대이다. 주자는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에 따라 다스려지던 시대'라고 한다. 하늘의 무늬, 하늘의 금으로 나라와 사람을 다스리던 땅이고 때였다. 천리(天理)와 성리(性理)의 나라, 이남과 삼대, 세종의 조선에서도 꿈의 나라였고, 이상의 시대였다. 『삼강행실(三綱行實』은 세종의 실험이자, 실천이었다. 권채(權採)는 서문을 쓰며 이 일을 '원매이남(遠邁二南)'이라고 표현했다. 원매(遠邁)는 '멀리 제치다'는 말이다. 세종의 덕화가 이남의 덕화를 '멀리 제쳤다'는 칭찬이다. 이에 비해 무양(無讓)은 '사양은 없다' 는 말이다. '너무 지나치다', 이런 것도 세종의 말투이다. 빈 말은 싫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글자에도 글월에도 이(理)가 있다. 금이 있다.

선덕(宣德) 신해년(1431) 여름, 우리 주상전하께서 가까운 신하들에게 이르셨다.


삼대의 다스림은 다 인륜(人倫)을 밝히는 일로부터 비롯했다. 후세에 교화(敎化)가 점점 사라지니, 백성들은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의 큰 인륜에 친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타고난 성품을 알지 못하여 늘 옅음으로 잃어 버린 탓이다. 


드문드문 뛰어난 행실과 높은 뜻으로, 습속(習俗)에 휩쓸리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듣도록 부추긴 일도 많았다. 나는 그 가운데서도 특이한 일을 골라, 그림을 그리고 기리는 노래를 지어 온 나라에 펴고자 한다. 이로써 어린 남녀들이 모두 쉬 보고 느껴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사람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는 한 길이 될 것이다.


곧 집현전 부제학 설순(偰循)에게 명하여 편찬을 맡도록 했다.


『삼강행실(三綱行實』, 권채의 서문에 실린 세종의 말씀이다. 주자와 성리의 나라, 조선의 임금 세종의 말투도 주자(朱子)의 말투를 벗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상실어박(常失於薄), '늘 옅음으로 잃어 버리다'는 주자의 『논어집주』에서 따왔다. '군자는 늘 두터움으로 잃어 버리고, 소인은 늘 옅음으로 잃어 버린다.' 주자가 정자(程子)의 말을 이끌어 공자의 말을 풀이하는 구절이다. 용인관청(聳人觀聽),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듣도록 부추기다', 이 또한 주자의 말이다. 잃어 버리는 것은 무엇이고, 부추기는 것은 또 무엇일까?

조리(條理)있어 어지럽지 않으시니


세종실록에 실린 세종의 말투에는 문리(文理)가 있다. 조리가 있다. 이런 것도 실록을 읽는 재미다. '사람들로 하여금 쉬 보고 듣도록', 이 말투는 『훈민정음서문』의 말투와 똑 닮았다. '쉬 보고 듣도록', 세종의 의지가 담겼다. 세종은 주자의 말투를 따라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 하늘의 문리(文理))와 사람의 문리(文理)를 가린다. 『삼강행실(三綱行實』에서는 천륜과 인륜을 가린다. 세종은 소성(所性)이란 말을 쓴다.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다. 언해불전의 말투를 빌자면, 모든 사람이 한가지로 가진 것, '본래 뒷논 것'이다. 본유(本有)의 소성(所性)을 잃어 버렸다. 세종은 그 원인을 매(昧)에서 찾는다. 천성을 '아잘하고', 또는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어린 사람들, 알 수 있게 해 주는 일이 임금의 일이다. 하늘의 무늬를 사람의 무늬에 맞추는 일, 다스리는 일이다. 세종의 답은 짧고 분명하다. 쉽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짓는다. 용(聳)이라는 글자, 흥(興)이란 글자를 쓰기도 한다. 쉬운 그림과 노래로 사람을 흔드는 일이다. 요즘에는 '감동'이란 말을 쓴다. 보고 들음으로써 흔들어, 제 안에 느낌을 불러 일으키도록 한다. 공자도 그랬고, 주자도 그랬다. 어린 사람들의 느낌을 흔들어 일으키는 일, 그 일을 교화라고 불렀다. 세종은 성인의 말투, 주자의 말투를 빌어 교화의 길을 가린다. 받은 성품이 같은 사람들, 보고 듣게 해준다면 같은 느낌이 우러날 것이다.

세종실록, 세종 26년 2월 20일

상께서 이르셨다.


정창손(鄭昌孫)은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뒤에도 충신 효자 열녀가 무리를 지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실천하는 것은 다만 사람의 자질이 어떠하냐에 달린 것입니다. 하필 언문으로 번역한 뒤에야 사람들이 다 본 받겠습니까?' 라고 했다.


이런 말이 어찌 유자(儒者)가 이치를 아는 말이라 하겠느냐? 참으로 쓸데 없는 속된 유자로구나.


세종의 소성(所性)과 정창손의 자질(資質), 뭐가 다를까? 아무튼 둘 다 사람이 타고난 '것'이다. 세종은 쉽게 만들어 주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쉽게 알면 쉽게 실천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사람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길'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하는 일, 타고 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창손, 사람이 타고 난 것, 누구는 할 수 있고 누구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아니라고 한다. 어차피 타고 난 것, 알 사람은 알고, 할 사람은 한다. 그렇다면 정창손,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저 날의 일, 세종은 『운회(韻會)』라는 사전을 국어로 번역하겠다고 했다. 인륜의 책,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짓듯, 지식을 담은 사전, 우리말로 번역하고자 했다.

이제 널리 의견을 구하지 않고 갑자기 구실아치 십여 명에게 익히도록 하고, 또 옛 사람이 만든 운서(韻書)를 가볍게 고쳐, 뜬금없는 언문을 억지로 붙여, 기술자 수십 명을 모아 새기도록 하여 서둘러 널리 펴도록 하시니……


세종의 소성(所性)과 정창손의 자질(資質), 둘 다 똑 같이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를 묻는다. 천문과 인문, 천리와 인리, 천륜과 인륜....... 뭐가 같고 뭐가 다른가? 세종은 사람의 일, 사람이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정창손 사람의 일, 사람이 고칠 수 없다고 한다. 이게 참 기가 막힌다. 그 때마다 나는 성종의 책문, 성종의 물음이 떠오른다. 같은가 다른가? 뭐가 같고, 뭐가 다른가? 사람의 무늬는 글월이 되었다. 사람의 글월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그 차이는 또 무엇인가?

속된 사람이 있고, 속된 선비가 있다.


배우지 않고, 바른 뜻이 없으며, 부(富)와 이익만을 높이는 사람을 속된 사람이라고 한다.

의관을 차렸지만, 하는 짓은 세속과 똑 같아도, 나쁘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앞의 임금을 부르며, 어린 사람들을 속여 옷과 음식을 구하여, 쌓아 두고 입을 채울만 하면, 득의양양하여(중략)


몸을 마치도록 몸의 노예가 되어서도, 감히 다른 뜻을 품지 못하니

이것이 속된 선비이다.


세종은 정창손을 속유(俗儒)라고 부른다. 속인과 속유, 순자(荀子)의 말이다. 순자가 아니더라도 속유(俗儒)라는 말, 선비로서는 가장 나쁜 욕이다.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 선비는 그걸 가르는 잣대를 쥔 사람들이다. 조선의 정창손도 그랬다. 의기양양, 득의양양, 그는 임금에게도 대든다. 문리도 조리도 가리지 않는다. 그의 잣대는 누가 준 것인가? 하늘이 준 자질인가? 세종의 속유, 그걸 묻는다. 잣대를 쥐고 어린 사람들을 속여 옷과 음식을 구하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옷과 음식, 부와 이익도 하늘이 준 것인가? 어린 사람들이 준 것인가?

사형판결문을 이두와 한문으로 쓴다면 문리를 모르는 어린 백성은 한 글자의 차이로도 억울함을 당할 수 있다. 이제 그 말을 언문으로 써서 바로 읽어 듣게 해 준다면 아주 어린 사람이라도 모두 쉽게 알아 억울함을 품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 것도 세종의 말씀이다. 이 말을 생각하면 『삼강행실(三綱行實』이나 『운회(韻會)』는 한가한 소리가 된다. 이 말을 볼 때마다, '모진 관리는 법으로 사람을 죽인다. 후세의 선비는 이(理)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참 뒤에 나온 말이지만 세종의 심정이 저랬을 것 같다. 후세의 속된 선비들, 타고난 자질로 잣대와 칼을 가졌다. 의기양양, 어린 사람을 잡는다. 속된 정창손, 세종도 잡는다. 수백년이 흘렀다지만, 억울한 사람들은 지금도 널렸다. 사람의 무늬, 잣대를 쥔 자들, 지금도 의기양양 사람들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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