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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세종에게

하늘의 무늬, 사람의 무늬

성종실록, 성종 25년 4월 12일 庚午


상(上)께서 인정전에 나아가 친히 물었다.

그 책문(策問)에 이르기를


하늘에 무늬가 있다. 땅에 무늬가 있다. 사람에 무늬가 있다.

사람의 무늬와, 하늘과 땅의 무늬는 다를까? 같을까?


끈으로 매듭을 짓던 시절 이전에도 무늬가 있었을까?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가운데 하늘과 땅, 사람의 무늬라고 할 만한 게 있을까?


요순과 삼대(三代 )의 시절에 임금과 신하가 나누던 우불(吁咈)의 말, 스승과 제자가 묻고 답하던 말, 거리와 시골의 말이 모두 경적(經籍)에 실려 글이 되었다. 뒤에 荀子(순자), 동중서(董仲舒), 양웅(揚雄), 왕통(王通)이 뜻을 두어 글을 지었으나, 육경(六經)에 비길 수 없는 까닭은 뭘까?


글월은 때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송나라와 원나라는 한나라와 당나라에 미치지 못하고, 한나라와 당나라는 삼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 미치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한유(韓愈)의 글월은 팔대(八代)가 내리막일 때에 일어났다. 구양수의 글월은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을 드러냈다. 후세의 사람들은 과연 고문(古文)을 쓸 줄 몰랐을까?


염계(濂溪), 낙양(洛陽), 관중(關中), 민중(閩中)의 여러 스승들이 말을 일러 글월이 되니 육경(六經)의 표리(表裏)가 되었다. 그 글월은 무엇을 따른 것일까? 자세히 말하여 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공부하여 얻은 바가 있을테니, 마음을 다해 책문에 답하라.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는 같을까 다를까? 책문(策問), 과거의 문제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고시 또는 공무원 시험의 문제이다. 대책(對策)이란 말이 있다. 사전은 '어떤 일에 대처할 계획이나 수단'이라고 풀이한다. 성종 25년(1494) 4월, 임금은 인정전에 나아가 문제를 냈다. 과거를 보려고 모인 선비들에게 저렇게 물었다. 임금의 물음은 책(策)이다. 선비들의 답안은 대책(對策)이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저 임금은 저런 문제, 저런 물음으로 공무원을 뽑았다. 선비들의 답안은 어땠을까? 희한한 나라의 희한한 임금이다.

성종은 저 해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26년이나 임금 노릇을 했다지만, 그 때의 나이가 설흔 여덟이었다. 그는 세조의 맏아들, 덕종의 둘째 아들이다. 세자였던 덕종은 나이 스물에 세상을 떠났다. 세조를 이은 예종은 즉위하고 1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때의 나이도 스물이었다. 성종은 그 뒤를 이어 열 세살에 임금이 되었다. 세종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 이런 이야기도 참 낯설다. 그저 슬픔이 앞선다.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 같을까 다를까?' 나는 이 물음이 그냥 좋다. 저 임금이 던진 물음, 그는 해를 넘기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런지, 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백년전, 설흔 여덟 임금의 물음, 선비들의 답안지가 궁금했다. 누구라도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답안지를 써 본 적도 있다.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의 무늬이다. 뫼와 가람과 풀과 나무는 땅의 무늬이다. 시(詩)와 서(書)와 예(禮)와 악(樂)은 사람의 무늬이다. 그런데 하늘(의 무늬는) 기(氣)로 되고, 땅은 형(形)으로 되고, 사람은 도(道)로 된다. 그래서 '무늬는 도를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이건 정도전의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응천혁명(應天革命)이란 말로 시작한다. '하늘에 응하여 혁명하다', 이 것도 하늘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하늘의 무늬를 따라 사람의 무늬를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저 임금, 문득 그 같고 다름을 묻는다.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 천문(天文)이고 인문(人文)이다. 저 임금은 다시 글자와 글월로 물음을 옮겨 간다. 하늘의 무늬, 글자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겠다. 그렇다면 사람의 무늬는 어떨까? 글자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의 무늬가 있었을까? 그리고 요순의 시절, 인문의 역사로 들어 간다. 임금의 말투는 날렵하다. '우불(吁咈)'이란 말, 둘 다 감탄사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Oh!'와 'No!'이다. 이 말의 짝은 '도유(都俞)'이다. 이 것도 감탄사, 'Oh!'와 'Yes!'이다. 임금과 신하가 주고 받는 말, 물음과 대답, 같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노'를 '노'라고 하고, '예스'를 '예스'라고 한다. 같고 다름, 저 임금은 '우불(吁咈)'이란 말, '노!'라는 말로 나톤다. 그런 저런 말이 글자로 적혀 경전이 되었다.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 이른바 육경(六經)이다.

이어지는 글월의 역사, 인문(人文)의 역사, 저 임금은 『근사록(近思錄)』의 역사를 그대로 따른다. 조선 응천혁명(應天革命)의 이념, 주자(朱子)가 세운 역사이고 사관이다. 저 임금은 그 역사를 따라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 '미침과 못미침'의 다름을 묻는다. 하늘과 사람의 같고 다름이, 세월의 같고 다름, 사람과 사람의 같고 다름으로 이어진다. 누구를 따르고 무엇을 본받는 것일까? 그 차이는 뭘까? 그리고는 '말해 줄 수 있는가?'라는 말로 매듭을 짓는다. 이게 한 나라의 고위 공무원을 뽑는 시험 문제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을 터이니 답해 보라고 한다. 조선의 혁명과, 건국의 이념을 따라 나라를 이끌어 갈 조선의 엘리트,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다면 나라와 사람, 편안할 수 있을까? 보면 볼수록 희한한 임금, 희한한 물음이다.

갓 밖을 이르되 부(膚)요, 금을 이르되 주(腠)라


말을 좀 바꿔 보자. 이 건 『능엄경언해』의 구절이다. 사람의 피부, 가죽의 겉을 부라고 한다. 그 겉에는 금이 있다. 언해는 문리(文理)를 '금'이라고 새긴다. 요즘 사전은 문리나, 주리(腠理), '살가죽 겉에 생긴 자디잔 금'이라고 풀이한다. '겉에 생긴 금'은 '주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금'과 '주름'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이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저 젊은 임금의 물음도 비슷하다. '문(文)'이라는 글자, '이(理)'라는 글자, '같고 다름'을 따지려면 이런 글자를 먼저 따져 봐야 한다.

이(理)는 치옥(治玉), 구슬을 다스리는 일이다.

아직 다스리지 않은 옥(玉)을 박(璞)이라고 한다. 이(理)는 쪼개고 가르는 일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자전의 풀이이다. 박(璞)은 구슬이 박힌 돌덩어리이다. 그 덩어리를 쪼개어 옥을 갈라 내는 일을 이(理)라고 부른다. 이 일은 박(璞)과 옥(玉)의 금을 따라야 한다. 가르고 쪼개야 할 금이다. 이런 일, 구별(區別), 또는 분석(分析)이라고 부른다. 옥을 다스리는 사람, 돌덩어리를 얻으면 먼저 그 덩어리에서 금을 찾는다. 이 일은 관찰이라고 부른다. 잘 보고 살피는 일이다. 값 비싼 구슬, 금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을 놓치면 옥을 잃기 때문이다. 금을 찾는 일이 분석의 시작이다. 박과 옥이 가진 금은 박과 옥의 문(文), 무늬이다. 문을 따라 가르고 쪼개어 버릴 것을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긴다. 그런 일이 이(理), 다스림이다.

이(理)는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살펴, 반드시 구별하는 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늘에도 금이 있다. 하늘의 무늬이고 하늘의 이(理)이다. 사람에게도 금이 있다. 사람의 무늬이고 사람의 이(理)이다. 그걸 잘 살피고, 그걸 잘 다스리는 일이 문리(文理)란 말의 뜻이다. 하늘의 금을 찾으려면 하늘의 금을 살펴야 한다. 사람의 금을 찾으려면 사람의 금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금을 따라 구별하고 분석해야 한다. 가르고 쪼개는 일이다. 그런데 이건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의 눈과 뇌가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저 임금은 미래의 공무원들에게 왜 이런 일을 묻는 걸까?

유조불문(有條不紊)하시니

조리(條理)있어 어지럽지 않으시니


이 것도 『능엄경언해』의 구절이다. 응천혁명(應天革命), 하늘의 문리를 따라 나라와 사람의 문리를 뒤집었다. 저 임금도 저 선비들도 모두가 이 나라의 사람들이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하늘의 금, 나라의 금, 사람의 금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금을 따라 가르고 쪼개는 일은 조리(條理)라고 부른다. 저 임금은 그걸 묻고 있다. 사람이 하늘에 응(應)한다. 사람의 나라가 하늘의 이치에 응한다. 조리가 있어야 어지럽지 않다. 인문의 역사, 과연 조리가 있기나 한 것인가? 천문과 인문, 하늘의 무늬와 사람의 무늬, 하늘의 금과 사람의 금, 같고 다름을 묻는다. '우불(吁咈)', 예스면 예스라고 하고, 노면 노라고 해야 한다. 그 금이 노라면 고치고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실록의 기록, 임금의 물음만이 남았다. 기이할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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