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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42_01 오온이 빈 줄 보면

증도가 현각의 노래

사람이 아지 못하나니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늘날에 이르도다,

갓나맟을 놓아 버리고, 자세히 볼지언정,

밖을 향하여 속절없이 얻음을 모로매 말지어다.


둘째 구(句)는 사람이 비록 아지 못하나,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늘날에 이르리, 잠깐도 잃지 아니할시라.


셋째 구(句)는 오온(五蘊)이 다 빈 줄 보면,

구슬이 그 곳에 나톨지라, 밖에서 오지 아니한 뜻이라.


마니 구슬, 사람이 알지 못한다. 사람과 아롬, 또는 사람의 아롬,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영가는 이걸 거듭 노래한다. 거듭 묻는다. 알지 못하는 일, 뜻가장 물으라고도 한다.

갓나맟을 놓아 버리고, 자세히 볼지언정,


셋째 구(句)는 오온(五蘊)이 다 빈 줄 보면,


사대(四大) 본디 나 없고, 오온(五蘊)이 다 비도다,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거울의 상(像) 같아 비며 비어 나 없으며, 또 사람이 없도다.


맨 위의 구절, 남명의 노래이다. 갓나맟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이다. 갓나맟을 놓아 버리고, 자세히 보라고 한다. 그 아래의 구절은 언해의 풀이이다. 갓나맟을 오온(五蘊)으로 읽는다. 그 아래의 두 구절은 『금강경삼가해』, 함허의 노래이다.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을 가른다. 아인(我人)의 짝, 나도 없고 사람도 없다고 한다. 영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남명과 언해는 "알다", '아롬'은 제쳐 두고 "보다", 또는 '봄'을 세운다. "보다"는 "알다"의 앞에 있다. 보아야 알 수도 있다는 뜻이겠다.

시고(是故)로 공중(空中)엔 무색(無色)하며, 무수상행식(無受想行識)하며,


『반야심경』의 이름난 구절이다. 『반야심경언해』에는 두가지 주석서가 함께 편집되어 있다. 『반야심경약소』와 『반야심경약소현정기』이다. '사람이 아지 못하나니' 이른바 오온(五蘊), 또는 오음(五陰), 사람이라는 물건을 가려 따지는 말투이다. 불교에서야 흔한 말이다. 법수(法數)에 있느니라, 언해는 구태여 풀이하려 들지도 않는다. 법수(法數)는 사전이다. 사전을 찿아 보라고 한다. 흔한 말이라고 마냥 쉽기만 할까? 사전을 찾아 본들 답이 꼭 나올까? 언해불전의 편집자들은 그런 것도 다 안다. 꼼꼼한 편집 안에 답이 다 들었다.

오온(五蘊),


질애명색(質閡名色),

영납명수(領納名受),

취상명상(取像名想),

천류명행(遷流名行),

요별명식(了別名識).


『반야심경언해』, 『반야심경』의 본문과 『반야심경약소』는 번역하여 편집한다. 『반야심경약소현정기』는 번역하지 않고 원문을 따로 편집한다. 위의 구절은 『반야심경약소현정기』의 구절이다. 이런 풀이도 보기 드문 친절한 풀이이다. 친절한 풀이, 번역하지 않았다고 실망할 것 없다. 언해불전 곳곳에 번역과 풀이가 섞여 있다. 이런 한자말, 요즘의 사전, 요즘의 주석서에도 따로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는다. 한자말을 그대로 쓴다. 한자말로 새기고 한자말로 풀이한다. 15세기의 언해불전, 번역도 새김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도 저런 한자말, 쉽게 넘기지도 않는다. 하나 하나 꼼꼼히 따져 새긴다. 번역하고 풀이한다.

오온(五蘊) 반야심경언해의 풀이 언해의 말투 영어의 말투
색(色) 질애(質閡) 얼굴이 가림 material obstruction
수(受) 영납(領納) 받아 들임 experience
상(想) 취상(取像) 그르메를 잡음 grasp to images
행(行) 천류(遷流) 옮아 흐름 transient
식(識) 요별(了別) 가려 아롬 cognition

『반야심경약소현정기』의 풀이, 언해불전의 말투와 영어불교사전의 말투를 비교해 보았다. 한자말과 우리말, 영어말의 차이가 번득하다. 사전의 번역이나 풀이라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사전마다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 때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엉터리들도 많다.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얼굴과 그르메', '본질과 영상' 나는 이런 말투가 참 좋다. 이런 말투로 내 몸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보아 살피고 나톨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한자말 없이도,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살피고 사랑할 수 있다. 이런 말투가 잊혀졌다는 게 도리어 희한하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