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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41_01 여의주와 여래장

증도가 현각의 노래

마니주(摩尼珠)는,

사람이 아지 못하나니,


여래장(如來藏) 속에, 친(親)히 얻을지니,


여섯 가지 신(神)한 용(用)이, 공(空)하되 공하지 아니하니,

한 낱 두려운 빛이, 색(色)이로되 색 아니니,


이 마디, 앞에는 마니주가 있다. 뒤에는 공(空)과 색(色)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여래장이 있다. 이런 열쇠말, 하나같이 고약하다. 말 끝마다 천만의 뜻, 천만의 얼굴이 섞어 달린다. 뜻이 다르니, 뜻가장 물어도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부처가 쓰던 말이라지만, 부처의 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들도 있다. 들어도 모르는 말, 고약한 말이 되고, 괴로운 다툼이 된다. 그런 건 다 미뤄 두자. 여래장(如來藏)이란 말, 장(藏)이란 글자, 나는 먼저 '그릇'이라고 읽는다. 마니주는 구슬이다. 그것도 무척 드물고 귀한 구슬이란다. 구슬이 그릇에 담겼다고 한다. 그릇에 담긴 구슬, 영가는 그 쓰임과 빛을 가린다. 한 낱의 구슬, 그 쓰임이 비었지만 비지 않다고 한다. 그 빛은, 색이로되 색 아니라고 한다. 밑과 끝을 가리던 영가, 문득 구슬을 가리킨다. 모순의 말투로 노래한다.

가잘비건댄,


청정한 마니보주가 오색(五色)에 비취어 방(方)을 좇아 각각 나토거든,

한 어린이는 마니에 실로 오색이 있다고 봄과 같으니라.


마니의 체성(體性)이 맑고 좋아 허물이 그쳐 다 색상(色相)이 없으니,

성이 좋은 전차로 일체의 색상이 대(對)하면, 가운데 나타나,

청황적백흑의 오색이 방(方)을 좇아 나타나느니라.


『원각경언해』의 구절이다. 가잘비건댄, 마니주는 비유하는 말이다. 아래의 구절은 『원각경언해』에 함께 편집되어 있는 『원각경약소』의 풀이이다. 마니주는 맑고 깨끗하다. 허물도 없고 빛깔도 없다.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빛깔을 대하면 마주한 빛깔을 그대로 나톤다. 파란 빛을 만나면 파란 빛을 띤다. 오색을 만나면 오색을 띤다. 체성(體性), 그 구슬의 몸이 지닌 구슬의 속성이다. 맑고 깨끗하여 색상이 없는 게 마니주의 속성이다.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파란 빛을 만나면 파란 빛을 띤다. 오색을 만나면 오색을 띤다. 이게 그 구슬의 속성이다.

제우치자(諸愚癡者)를 '한 어린이'라고 새긴다. '하다'는 물론 '많다'이다. '어린이'는 모르는 이들이다. 모르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마니 구슬의 속성을 모르는 이들은 '마니에 실로 오색이 있다'고 본다. '아롬과 봄'의 사이, 눈이 있으면 다 본다. 봄은 똑 같다. 한가지, 평등이다. 볼 수 있다면, 알 수도 있다. 안근(眼根)과 의근(意根), 눈과 머리의 뿌리가 하는 일이다. 처음 보는 구슬, 갖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구슬, 맑고 깨끗한 마니주의 속성을 모른다면 착각, 그르 알 수도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까닭, 모르는 이들이 그렇게도 많은 까닭, 『원각경』은 마니주라는 구슬을 들어 가잘빈다. 맑고 깨끗함의 비유이고, 그래서 색을 만나 색을 나토는 비유이다. 색이 없음에도 색을 나토는 까닭, '봄과 아롬', 또는 '봄과 모롬'의 차이를 가잘빈다.

아금(我今)에 해차(解此) 여의주(如意珠)호니,

자리이타(自利利他)에 종불갈(終不竭)하니,


내 이제 이, 여의주(如意珠)를 아니,

내 몸 이(利)함과 남 이(利)케 함에, 내종내 다하지 아니하니,


                      *


아금(我今)에 해차(解此) 여의주(如意珠)호니,

신수지자(信受之者)에 개상응(皆相應)호리라.


내 이제 이, 여의주(如意珠)를 아니,

신(信)하여 믿을 사람에게, 다 서로 응하리라.


영가의 마니주, 여의주라고도 부른다. '내 이제 이, 여의주(如意珠)를 아니', 영가는 이 구절을 두 차례 거듭한다. 이 것도 희한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판본에서는 앞의 '아금(我今)'을 '기능(既能)'으로 쓰기도 한다. 언해본은 두번 다 '아금(我今)'이다. 이 것도 희한하다. 영가의 결정한 말에 걸린 마니주, 그만큼 결정한 열쇠말이란 뜻이겠다. '여의주를 아롬', 천만의 물음에 영가가 들이 미는 하나의 묘(妙), 하나의 밑에 여의주가 있고, 여래장이 있다. 여래의 몸, 여래의 그릇, 그리고 여의의 구슬, 내 몸의 구슬과 한가지라고 한다. 한가지 몸, 한가지 그릇, 고약한 말들이 다 여기에 걸렸다. 한가지의 몸, 평등의 몸이고 몸의 평등이다. 그 밖의 다른 말은 다 부질없다.

여섯 가지 신(神)한 용(用)이, 공(空)하되 공하지 아니하니,

한 낱의 두려운 빛이, 색(色)이로되 색 아니니,


언해는 마니주를 내 몸으로 풀이한다. 구슬에 여섯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구멍들은 육근(六根)을 가잘빈다고 한다. 마니주가 가진 신(神)한 용(用)은 내 몸에도 뚫린 여섯 구멍, 여섯 뿌리의 '씀'이다. 내 몸의 구멍으로 드틀이 찌르고 든다. 내 몸의 구슬에 드틀의 빛깔을 나톤다. 푸른 빛이 오면 푸른 빛을 나톤다. 붉은 빛이 오면 붉은 빛을 나톤다. 만나면 응하고, 만나서 나토는 구슬,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만나는대로 온갖 색을 나토니 '원(圓)', '두렵다'고 한다. 맑고 깨끗하여 텅 비었지만, 만나면 응하고 나토기 때문에 비지 않았다고 한다. 갖가지 빛깔을 나토지만, 제 빛깔이 아니라고 한다. 한가지 그릇에 한가지 구슬, 평등과 차별의 까닭이 여기에 다 걸렸다. 고약한 말에도 다 밑과 끝이 있다. 밑을 보면 훤하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