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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세계

6.2 올마흘롬

올마흘롬

어찌 이름이 중생의 세계요?


세(世)는 올마흘롬이오, 계(界)는 방위이니, 네 이제 반드시 알라. 동서남북, 동남, 서남, 동북, 서북, 상하가 계요, 과거 미래 현재가 세이니, 방위에 열이 있고, 흐르는 수(數)가 셋이 있다. 일체 중생이 망(妄)을 짜 서로 이루어 몸 가운데로 바꾸어 옮겨, 세와 계가 서로 든다.


중생의 세계, 세(世)를 ‘올마흘롬’이라고 새긴다. 천류(遷流)라는 한자말을 글자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옮아서 흘러가다’는 뜻이다. 올마흘롬, 이 말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 그냥 산뜻했다. 천류와 올마흘롬, 맛이 너무나 달랐다. 그 맛의 차이는 뭘까? 추상(抽象)이란 말이 있다. 사전은 ‘사물로부터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하는 작용’이라고 풀이한다. 상(象)은 얼굴을 가진 물건이다. 추(抽)는 ‘잡아 빼다’, 또는 ‘뽑아 내다’는 뜻이다. 얼굴을 가진 것으로부터 뭔가를 뽑아낸다. 세계라는 말도 얼굴로부터 추상한, 뽑아 낸 것이다. 얼굴을 가진 물건을 시간과 공간의 틀로 관찰한다. 올마흘롬은 시간과 공간의 틀로부터 다시 뽑아낸 말이다. 공간이 바뀌는 일과 시간이 바뀌는 일은 다른 일이다. 천류, 또는 올마흘롬은 시간이 바뀌는 일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말은 무겁다. 천류라는 말, 내게도 무거웠다. 언해불전에는 '가볍고 편안하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몸은 가볍고 뜻은 편안하다'라고도 한다. 올마흘롬이란 말, 이 말이 새삼 가볍게 느껴졌다. 말의 쓸모랄까, 세계를 바라 보는 눈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언해불전의 우리말투, 무거운 한자말을 참 가볍게도 다룬다. 올마흘롬, 내게는 '가볍고 편안한 말투'의 상징이 되었다.

삼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니, 과거는 지나간 뉘오, 현재는 나타 있는 뉘오, 미래는 아니 온 뉘라


'지나간 - 나타 있는 - 아니 온', 이런 말도 한자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옮아 흐르는 사이에서 뽑아낸 것이 세(世)이고 '뉘'이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나타 있는 뉘'이다. 여기로붙너 '지나간 뉘'를 뽑아내고, 다시 '아니온 뉘'로 이어진다. 그러면 물건의 흐름이 뉘의 흐름이 된다. 흐르는 뉘, 셋으로 나누고 '흐르는 수(數)라고 이름지어 부른다. '올마흘롬'은 상(象)의 올마흘롬이다. 이에 비해 뉘의 올마흘롬은 추상의 올마흘롬이다.

변화가 그윽이 옮음을 내 진실로 알지 못하니, 추움과 더움이 옮아 흘러 점점 이에 이르렀습니다. 내 나이 스물에 비록 나이 젊다 하나, 낯의 양자가 이미 열 살일 때보다 늙으며, 서른이 된 해에는 또 스물인 때보다 쇠하여 이제 예순이 되었습니다. 또 두 해를 지내니, 쉰 시절을 보건대 번득히 장년이 되었습니다.


『능엄경언해』의 구절이다. 제 몸, 제 낯에도 얼굴이 있다. 몸의 형색(形色)을 얼굴이라고 새긴다. 이에 비해 안모(顔貌)는 ‘낯의 양자’라고 새긴다. 낯의 모습이다. 얼굴은 여위어 가고, 낯은 살져간다. 나이를 먹어가며 몸의 얼굴, 얼굴의 양자가 옮아 흐른다. 이것은 얼굴의 올마흘롬이다. 몸의 올마흘롬을 나이의 올마흘롬으로 맞추어 관찰하고 분석한다.

내 그윽이 옮음을 보니, 비록 이렇게 늙어 가나 그 사이의 고쳐 됨을 열 해로 (금을) 그었다지만, 나를 자세히 사랑해 보면 그 변함이 어찌 한 기(紀)나 두 기(紀)뿐이겠습니까? 실로 해마다 변한다지만, 어찌 해마다 변할 뿐이겠습니까? 겸하여 달로 화(化)한다지만 어찌 달마다 화할 따름이겠습니까? 겸하여 다시 날마다 옮는다 하지만, 잠잠히 사랑하여 자세히 본다면 찰나 찰나와 염(念)과 염 사이에 머물지 못할새 그러므로 내 몸이 마침내 변하여 없어짐을 좇는 줄 알겠습니다.


또 열 해를 그슴함은 너른 혬으로 멀터이 보미라


시간(時間)은 ‘뉘의 사이’이다. '그슴하다', 옮아 흐르는 사이에 ‘금’을 긋는다. 기(紀)는 열 두 해를 가리킨다. 열 해로 금을 긋기도 하고 열 두해로 긋기도 한다. 달로 긋기도 하고 날로 긋기도 한다. 찰나의 사이로 긋기도 하고, 염(念)의 사이로 긋기도 한다. 이런 금 긋기를 ‘관수조관(寬數粗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넓은 혬으로 멀터이 봄’이라고 새긴다. 혬은 수(數), 셈이다. ‘멀텁다’는 ‘거칠다’의 옛말이다. 금을 긋는 일도 추상이다. 찰나와 찰나의 사이는 1/75초란 말도 있다. 아무리 잘게 쪼개더라도 수(數)의 사이는 너무 넓고 너무 멀다. 허공에 금이 없듯, 올마흘롬에도 금이 없기 때문이다. 잠깐도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넓은 혬’과 ‘멀터이 봄’은 말하자면 추상의 빈틈이다. 사람의 몸도 잠깐도 머물지 않고 옮아 흐른다. 그런데 옮아 흐름의 방향이 멸(滅)이라고 한다. 없어짐을 향해, 죽음을 향해 변화하여 늙어간다고 한다. 이것도 추상이다. ‘넓은 혬으로 멀터이 봄’이다. 얼굴과 낯의 옮아 흐름으로부터 멸(滅)과 죽음을 추상한다. '생노병사'라는 말도 있다. 이런 것도 금이다. 넓은 혬이고 멀터이 봄이다. 그 사이에서 온갖 일이 벌어진다. 올마흘롬은 그런 일을 상상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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