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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본래평등, 본래자유

4.4 자연과 인연


법인(法人)[법률]

자연인이 아니면서 법에 의하여 권리 능력이 부여되는 사단과 재단.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공법인과 사업인, 재단법인, 영리법인과 공익법인, 중간법인, 외국법인과 내국법인 따위로 나눈다.

[비슷한 말] 무형인, 법인체.


자연인(自然人)

1.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아니한, 있는 그대로의 사람

2. [법률] 법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자연적 생활체로서의 인간. 근대법 이후로는 모든 인간이 출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권리능력을 평등하게 인정받는다.

[비슷한 말] 유형인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지은 『리바이어던(Leviathan)』, 표지 그림이 흥미롭다. 왕관을 쓴 거인, 한 손에는 칼을 들었고 한 손에는 홀(笏)을 들었다. 모두가 임금의 상징이다. 한 나라 주권의 상징이다. 거인은 산줄기 뒤에서 도시를 내려다 본다. 그가 리바이어던이다. 성서에 나온다는 바다 괴물이다. 바다 용이나 이무기쯤이겠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리바이어던의 몸은 작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사람들은 리바이어던의 낯을 향해 서 있다. 하나같이 그의 낯을 바라본다.

이 그림 안에는 여러 상징들이 섞여 있다. 작은 사람들, 이들을 자연인이라고 부른다. 자연으로 태어났고, 자연에서 살아간다. 자연인들이 리바이어던을 만들었다. 이게 이른바 홉스의 ‘사회계약’이다. 홉스는 자연의 상태를 사람들끼리의 싸움, 전쟁의 상태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고 죽인다. 사납고 사오납다. 자연의 사람, 자연의 상태는 사납다. 사오납다. 그래도 자연의 사람은 생각한다. 사랑한다. 그래서 안다. 아는 사람들이 방법을 찾는다. 서로 약속을 한다. 이런게 홉스의 사회계약이다.

리바이어던의 그림에는 숱한 상상이 들어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열쇠말이 있다. 예를 들어 AI의 ‘아티피셜, Artificial, 인공의’, 사람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사람이 사람의 지능을 만든다. 콜렉티브(Collective)란 말도 있다. ‘집체(集體)’ 또는 ‘집단’이라고들 새겨 쓴다. 요즘 이 말도 참 자주 듣는다. 집단지성이란 말, 대통령은 물론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도 자주 쓴다.

인공과 집체, 이 두가지 열쇠말도 홉스의 그림 안에 들어 있다. 리바이어던의 몸을 짜고 있는 작은 사람들, 이게 집체이다. 콜렉티브이다. 작은 개미들이 모여 개미의 무리를 이룬다. 여왕개미는 개미 무리의 권력 또는 주권을 상징한다. 작은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향하고 여왕개미를 바라본다.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작은 개미의 몸들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아티피셜, 인공이라고 부른다. 약속을 하건, 계약을 하건, 작은 사람들이 만들고 지어냈다고 한다. 사람의 콜렉티브가 인공으로 지어낸 사람이다. 이 두개의 열쇠말만으로도 홉스의 상상은 혁명이다. 세상을 확 뒤집어 엎었다. 그리고 오랜 동안 우리의 세계를 이끌었다. 이런 상상, 흔한 일이 아니다. 상상이 흔치 않기 때문에 혁명도 흔치 않다. 4차 산업혁명이라지만, 아직도 홉스의 열쇠말을 따른다. 그런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홉스의 열쇠말을 함께 상상한다.

자연의 사람, 홉스는 자연의 법(法)이란 말도 쓴다. 자연의 사람은 평등하다고도 한다. 평등한 사람들이 서로 해치고 죽이는 사이에 자연의 사람은 야만의 사람이 된다. 야만의 사람이 스스로 한데 모여 리바이어던을 만든다. 마치 여왕개미와 개미의 무리처럼 사람의 무리도 리바이어던을 중심으로 한가지로 움직이다. 평등과 평화의 세계로 바뀐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픽션’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허구(虛構)라고 새겨 쓴다. 텅 비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리바이어던의 몸은 공신(空身), 텅 빈 몸이다. 사람이 지어낸 몸, 환신(幻身), 곡도의 몸이다. 자연의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 그래서 법인(法人)이란 말이 나왔다.

리바이어던은 법인이다. 법으로 된 사람이다. 자연의 사람들의 약속으로 함께 지어낸 법의 몸이고 법의 사람이다. 이게 그냥 노릇의 말씀이 아니다. 홉스는 법인을 허구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제 허구의 사람은 임금일수도 있고, 나라일수도 있고, 나라의 권력, 주권일수도 있다. 작은 자연의 사람과 커다란 법의 사람, 이제 왕관을 쓰고 칼을 든 임금님은 없다. 리바이어던은 이제 그냥 법의 사람으로 남았다. 법의 사람, 그 얼굴은 어떨까? 법으로 된 사람이라니, 얼굴도 법이겠지. 요즘엔 대의(代議)란 말을 쓴다. 홉스는 에이전시(Agency)란 말을 썼다. 작은 사람의 콜렉티브를 대행하는 이들이다. ‘국민의 공복(公僕)’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들도 리바이어던, 법인의 칼을 쓴다. 대신 쓴다지만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범의 갖과 양의 얼굴’, 공복의 대가리에 괴물의 얼굴을 품었다면 어떨까? 이 물건의 값은 얼마일까?

이런다로 반다기 알라. 의(意)와 법(法)이 연(緣)이 되어 의식의 계(界)를 낸다고 하니, 세 곧이 다 없어 의(意)와 법(法)과 의계(意界)의 셋이 본래 인연(因緣) 아니며, 자연한 성(性)이 아니니라.


언해불전은 견정(見精), 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고른 봄으로 돌아간다. 고른 봄에서 본래 제 뒷논 평등과 자유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과 인연을 마주 세운다. 자연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라고 한다. 자연이란 말, ‘제 그런’이다. 본연이란 말도 있다. ‘본래 그런’이다. 필연은 ‘반다기 그런’이고, 우연은 ‘만나 그런’이다. ‘눈은 빗고 코는 곧다’, 이런 게 ‘본래 그런’이다. 본래 그런 것, 타고 난 것이라면 ‘제 그런’이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 이런 것도 제 그런이다. 기름을 넣어야 차가 가듯, 사람의 몸도 어찌 됐던 먹어야 산다. 먹어야 뮌다. 이런 건 반다기 그런이다. 밥이 걸리면 밥을 먹고, 고기가 걸리면 고기를 먹는다. 이런 건 우연(偶然), ‘만나 그런’이고, 맞추어 그런이다. 이런 법, 이런 말도 연(緣), 비비고 버므는 일이다. 고른 봄이 있다면, 고른 드틀도 있다. 고른 드틀에는 얼굴이 있다. 인연의 법은 환(還), 돌이킬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얼굴이 없다. 뿌리와 드틀이 버므는 사이를 계(界)라고 부른다. 그래서 ‘세 곧이 다 없다’고 한다. 의식은 버므는 사이에 뮌다. 의식에 비친 자연, 이미 자연이 아니다. 순수한 자연, 고른 자연이 아니다.

‘늑대와 춤을’,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유럽 사람들이 발견했다는 미국 대륙, 늑대 무리는 버펄로를 잡아 먹는다. 한 마리를 잡으면 무리가 실컷 배를 채운다. 이런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런데 유럽에서 온 사냥꾼들은 살보다는 가죽을 노린다. 가죽만 벗기고 살은 버린다. 끝도 없는 풀밭에 널린 벌거벗은 살, 수우족 원주민은 어안이 벙벙하다. 이런 건 뭘까? 이런 건 자연도 아니고 본연도 아니다. 필연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다. 석가모니는 이런 걸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건 유럽의 사람들이 하저지른 일이다. 사람이 지은 일, 인공의 일이다. 원인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 붙고 버믈어 지은 일이다. 유럽의 법과 수우 원주민의 법은 다르다. 그래서 서로 알 도리가 없다. 유럽 사냥꾼이 가죽을 벗기는 까닭도 먹기 위해서이다. 수백 수천의 가죽을 모으는 까닭은 감추고 갈무려 다시는 배고프지 않으려는 까닭이다. 홉스는 그런 걸 자연의 상태라고 부른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예를 들기도 한다. 법을 모르는 야만이라고 한다. 다람쥐도 늑대도 먹기 위해 얻은 것을 감추기도 하고 갈무리도 한다. 그래도 저렇게 갈무리를 하는 짐승은 없다. 유럽의 사람들이 ‘제 그런’이라고 알았던 일, 수우에게는 ‘제 그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우의 제 그런은 유럽 사람들게 ‘제 그런’이 아니다.

석가모니가 인연이라고 부르는 일은 인공, 또는 인위(人爲) 사람이 지어내고 사람이 하저즈른 일이다. 사람의 근(根), 뿌리는 본연이고 자연이다. 사람의 눈에 그르메로 어리는 얼굴의 드틀도 본연이고 자연이다. 뿌리와 드틀이 만난다. 서로 비비고 버믄다. 비비고 버므는 일이 인이 되고 연이 된다. 이건 자연도 아니고 본연도 아니다. 비비고 버므는 사람들, 그들도 이미 자연의 사람이 아니다. 비비고 버므는 일이 인연을 이뤄 아주 다른 걸 지어낸다. 사람들이 지어낸 인연의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