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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본래평등, 본래자유

4.5 광대한 나라에 어위에 걸어


곡도로 된 성(城)을 쳐 그우리와다, 깊은 문을 밟고 여래의 광대한 나라에 어위에 걸어, 하마 능히 부처와 살혬이 한가지어니, 대비(大悲) 잡들어 접인함을 또 어찌 구하리오


대관령 꼭대기에 서면, 동해 바다가 보인다. 가만히 몸을 돌리면 숲이 보인다. 자리를 바꿀 필요도 없다. 방향만 바꾸면 그만이다. 앞에서 향상(向上)의 기관(機關)이라고 했다. 향상은 위를 보는 일이다. 동쪽을 보면 향동이고, 서쪽을 보면 향서이다. 부처와 중생을 위아래에 비겼다. 부처를 바라보면 향상이다. 중생을 바라보면 향하이다. 위아래를 따지는 건 부질없다. 그저 보는 방향이 다르다는 말이다. 몸만 돌려도 보이는 게 다르다. 기관은 발동하고 작동한다. 움직이는 몸이다. 향상의 기관은 위를 바라보는 기관이다. 움직이는 기관, 그렇다고 낯만 돌리고 살 수는 없다.

부처와 조사라지만 그들도 중생이었다. 그들이 부처를 향하고 움직이던 일이다. 예를 들어 『석보상절』이나 『월인천강지곡』도 싯다르타라는 중생이 부처를 향하던 기관을 노래한다. 싯다르타가 부처로 바뀌는 일이다. 이런 일을 뭐하러 노래할까? 석가모니가 중생을 향하였기 때문이다. 아래를 바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를 향했던가? 불교의 역사는 부처를 향하던 사람들의 영웅담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도 상관할 게 없다. 내가 사는 성, 곡도로 된 성이다. ‘그우리왇다’는 ‘기울여 뒤집다’는 말이다. 성을 후려쳐 뒤집어 엎는다. 활보(闊步)를 ‘어위에 걷다’라고 새겼다. 성으로 드나드는 문을 밟고 나선다. 광대한 나라를 어위에 걷는다. 나와 부처는 이미 살혬이 한가지, 구태여 누구의 사랑도 슬픔도 따로 구할 까닭이 없다. 자유와 평등을 알아챈 이의 발걸음이다.

나아 걸을 문이 없고, 몸 물릴 길이 어즐할새


진보(進步)라는 말을 ‘나아 것다’라고 새긴다. 퇴신(退身)은 ‘몸 물릴’이고 미로(迷路)는 ‘길이 어즐하다’라고 새긴다. 진퇴(進退)는 ‘나소믈려’가 된다. 사람은 동물이다. 움직인다. 움직여야 살수 있다. 대관령의 풍경이 아무리 좋다한들 몸만 돌리며 살수 없다. 볼만큼 봤다면 발을 떼어야 한다. 숲으로 가던 바다로 가던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런 일이야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거름 들며 거름 믈루미 다 자약(自若)하니


진보와 보수, 요즘은 각별히 흔해 빠진 말이다. 아침마다 듣고 저녁마다 듣는다. 이런 말로 편을 갈라야 하기 때문이다. 편을 가르려면 이름을 세워야 한다. 이름을 세우면 속절없는 빈말에도 얼굴이 생긴다. 비비고 버므는 그르메 놀이가 시작된다. 말의 세워지면 말도 진화한다. 말도 나아 걷는다. 빨갱이가 되고 종북이 되고 수꼴이 된다. 이런 게 다 곡도의 성이다. 나와 남을 함께 옭아매는 끈이고 줄이다. 우리도 동물이다. 낯도 돌리고 발도 들어야 한다. 나아 걸어야 곡도의 성도 후려칠 수 있고, 그우리왇을 수도 있다. 나아 걸음이 자약하다.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그대와 한가지로 걷고 또 한가지로 행하야,

일며 앉음에 서로 잡들어 해달이 길도다.


목 마르거든 마시며 배 고프거든 먹음에 상녜 낯을 대하였나니

구태여 머리를 돌려 다시 사량(思量)하지 말지니


제팔(第八)을 사랑하여 헤아려 나를 삼나니


‘한가지로 걷고’는 동보(同步)이다. 발걸음을 함께 드는 일이다. ‘한가지로 행하고’는 동행(同行)이다. 상장(相將)이란 말은 ‘서로 함께’라는 뜻이다. 함께 있고 함께 한다. 이 말을 ‘잡들다’라고 새겼다. 서로 잡아주고 들어 주고 끌어 준다. '잡들다', 서로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모습이다. 세월(歲月)은 ‘해달’이라고 새겼다. 사량(思量)은 불교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언해불전은 사(思)를 ‘사랑하다’라고 새긴다. 이 말이 사량으로부터 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언해불전은 사량을 ‘사랑하여 헤아려’라고 나누어 새기기도 한다. 사(思)는 사랑이고, 양(量)은 헤아림이다. 헤아림은 수를 세는 일이다. 많고 적음을 견주는 일이다. 사(思)와 양(量) 사이에서 '나', 아집이 생겨난다. 한가지로 잡들다, 이게 우리의 존재론이다. 내가 없으면 네가 없고, 네가 없으면 내가 없다. 머리를 돌려 헤아림은 속셈을 두는 일이다. 제 이익을 헤아린다. 나와 남을 가른다. 나는 누구이고, 남은 누구인가? 사랑과 헤아림 사이에서 그 차이도 정해진다. 사랑과 헤아림, 이게 참 기가 막힌다. 나와 남을 정하는 것도 나의 헤아림일 뿐이다.

『능엄경언해』는 세조의 어역(御譯)이다. 임금이 번역했다. 이 책 첫머리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발문에 번역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서로 잡들어 번역한 책,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과 역할을 일일이 들어준다. 세조는 입겿을 달았고, 신미(信眉)는 증명(證明)했다. 맞추어 밝히는 일, ‘마오다’라고 새긴다. 이런 말도 참 아깝다. 신미(信眉)는 세조가 혜각존자(慧覺尊者)라고 부르며 스승으로 모시던 스님이다. 그런데 세조는 그를 ‘내 동행(同行)’이라고 부른다. 동행(同行), 나는 이 말이 얼떠름하다.

그 자리의 모든 대중이 귀천이 없이 부처 앞에 나아가니 모두 261인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영원토록 동행하여 헤어지지 않고, 훤히 알아 여래의 지혜바다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승속이 서로를 향하여 함께 절을 했다.


사헌부에서 아뢰었다.

신들이 듣자오니 지난 번 불당의 경찬회를 할 때에, 대군으로부터 노비와 악공(樂工)까지 경찬회에 모인 자들이 계(契)를 맺었다고 합니다. 설사 계를 맺은 자들이 모두 보통 사람이라고 해도 오히려 옳지 않은데, 하물며 종놈들의 무리와 계를 맺는 일이겠습니까? 바라옵건대 금지해 주십시오.”


상께서 이르셨다.

계를 맺는 일이야 진실한 마음이 있으면 귀의(歸依)할 것이고,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그만일 것이다. 이런 일이 어찌 대관(臺官)이 알아야 할 일인가? 윤허하지 않았다.


위의 글은 『사리영응기』라는 책에 쓰인 글이다. 아래의 글은 세종실록, 세종 31년(1449년)의 기록이다. 15세기 조선, 보면 볼수록 희한한 장면이다. 조선은 계급사회였다. 임금도 있었고 천민, 노비도 있었다. 그위실할이, 여름지을이, 성냥바지, 흥정바지, 백성에도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백성이 있었다. 그런데 대군과 노비, 귀천과 승속의 차별없이 마주 절을 했다. 함께 동행(同行)을 약속했다. 그리고 함께 계를 맺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261명, 60%가 천민 노비였다. 실구디, 검동, 타내, 올마내, 오망디, 쟈가동, 도티, 고소미, 검불, 망오지, 똥구디…… 이런 이름이 죽 이어진다.

이 장면이 나오기까지 험한 일이 있었다. 임금과 왕실, 그리고 전국의 선비들이 정면으로 맞섰다. 거의 죽기살기다. 그리고는 천민과 노비의 우리말 이름들, 거의 계급투쟁, 혁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 한가운데 ‘동행’이란 말이 있었다. ‘결계(結契), 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나는 먼저 노동조합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정치결사라는 말도 떠오른다. 『사리영응기』란 책은 희한한 책이다. 내용을 보자면 무슨 부흥회가 떠오른다. 그만큼 종교색이 강하다. 하지만 앞뒤의 일을 따져 보면 정치결사, 정치시위의 선언문 같기도 하다. 불법조직, 불순시위 이런 말도 떠오른다. 당연히 사헌부가 개입했다. 세종의 태도는 차갑다. 세종은 성심(誠心)을 내세운다. 유학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언해불전은 이 말을 ‘진실한 마음’이라고 새긴다. 불법조직에 진실한 마음이라니, 이 말도 참 놀랍다.

실제로 저들은 끝까지 한가지로 걷고 한가지로 행하였다. 계유정란, 세조의 쿠데타에도 동행했고, 공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세조의 명분은 늘 ‘세종의 유업’이었다. 동행의 유업이었을까? 하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도대체 뭘 위해 동행을 약속했을까? 뭘 위해 폭력으로 피바람을 일으켜야 했을까? 임금이 되자고, 공신이 되자고, 천한 신분을 벗어나 계급상승을 하자고…… 그래서 얼떠름하다.

광대한 나라에 어위에 걸어


이 말을 들으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재벌회장이 했다던 말이다. 회사가 망하고 외국으로 도망다니는 처지가 되었을 때, ‘세계는 넓고 토낄 곳은 많다’, 이런 류의 농담이 퍼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위에’, 이런 말도 얼떠름해진다. 속셈이 걸린 말, 믿을 데가 없다. 그렇다 해도 스펙과 최소시급에 맞서야 하는 젊은이들의 처지를 보면, 속셈이 걸린 말이라도 희망을 가질 때가 차라리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활보(闊步), ‘어위에 걸어’, 이 말을 들으면 하여간 시원하다. 본래 제 뒷논, 자유와 평등을 알아 차린 사람들의 걸음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한가지로 어위에 걸을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세계가 자유롭고 평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