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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자유

3.2 미스 리버티

미국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한 손에 미국독립선언서를 들고, 다른 한 손에 횃불을 들었다. 그는 끊어진 쇠고리를 밟고 서 있다. 서울 광장에 성조기가 내걸린 바로 그 즈음, 성조기의 나라 미국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을 둘러싼 다툼이 한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민에 관련된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잡지는 꺼진 횃불을 표지에 걸었다. 트럼프의 명령으로 자유의 여신, 그의 횃불이 꺼져 버렸다. 독일의 잡지는 훨씬 더 사나운 그림을 내걸었다. 오렌지 빛깔의 트럼프, 한 손에는 칼을 쥐고, 한 손에는 여신의 머리를 들었다. 칼에서도 머리에서도 오렌지 빛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미국의 자유는 그냥 꺼진 게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자유, 아예 목을 베어 버렸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그만큼 실망과 분노가 컸다.

자유의 여신상, 이 말은 ‘The Statue of Liberty’를 번역한 말이다. 말대로 읽어 보자면 ‘리버티의 상’이다. 이 말을 일본 사람들이 먼저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번역했다. 그 뒤로 한자문화권에서는 대개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 말이 좀 우습다. 리버티가 본래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았던 사람은 아니더라도, 라틴어로 libertas, 버젓이 이름을 가진 로마의 여신이다.

구리로 만든 46미터의 거대한 동상, 자유, 평등, 박애, 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과 미국의 자유에 바친 선물이었다. 프랑스의 조각가는 처음부터 사람의 모습, 여인의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대서양을 건너 구대륙과 신대륙을 하나로 잇는 자유의 횃불,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라, 친절하고 친근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려 했단다. 미국의 자유는 고유명사다. 낯도 있고, 얼굴도 가졌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낯, 낯익은 얼굴이다. 조각가는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일까, 미국 사람들은 그냥 ‘미스 리버티’라고 부른다.

관(關)은 막은 땅이다. 쉽게 사무쳐 가지 못할 땅이다.


뉴욕 항구는 미국의 관문이었다. 막혀 있어서 쉽게 갈 수 없는 땅, 관문은 그런 곳으로 가기 위해 열어 놓은 문이다. 구대륙과 신대륙을 잇는 관문, 대서양을 건너온 배는 리버티 섬에 서 있는 미스 리버티 앞을 지나가야 했다. 미스 리버티는 자유의 땅으로 들어가는 자유의 관문, 자유의 상징이었다.

다 가져라, 고대의 땅이여,

그 잘난 위엄일랑,

그는 외친다, 앙다문 입술로,

내게 다오,

너의 지친, 너의 가난한,

자유를 숨쉬려고 모여든 너의 사람,

너의 바글거리는 기슭에서

버려진 이들

보내라 내게

이 갈 곳도 없이 폭풍으로 던져진 이들

나는 황금의 문 가에서

나의 등불을 들리라


지상 93 미터의 자유의 여신상, 동상은 프랑스에서 만들었고, 기단은 미국에서 만들었다. 이 노래는 기단을 만들어 세우면서 여신에게 바친 노래였다. 구대륙의 구체제에 대한 미국 사람의 선언이었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 자유를 그리는 사람들, 다 내게 보내라, 다 나에게 오라. 미국 사람들은 미스 리버티, 이 노래로 기억한다.

일본 사람들은 자유의 여신상에 앞서 리버티라는 말을 자유라고 번역했다. 일본의 사전도 우리의 사전도 자유란 말은 리버티 아니면 프리덤이다. 중국에서도 자유의 여신이다. 1989년 중국에서는 이른바 천안문 사태가 있었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민주의 여신상’을 만들어 세웠다. 물론 자유의 여신상을 본떴다. 민주의 여신도 횃불을 들고 있다. 이런 건 차라리 눈물겹다. 한 때는 죽의 장막이라고 불렸던 날도, 불과 몇십년 전, 먼 옛날이 아니다. 그 나라에서도 미스 리버티, 미국의 자유는 그렇게 뚜렷한 상징이었다. 지금의 중국에서도 자유는 리버티가 아니면 프리덤이다. 요즘 우리의 자유, 아시아의 자유는 서구에서, 미국에서 빌어 왔다. 미스 리버티도 미국에서 빌어 왔다. 빌어온 것, 그래서 그런지 뭔가 낯설다. 뭔가 빠졌다. 말도 뜻도 아름답다지만, 친절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우리들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저 노래를 지은 이는 에마 라자루스(Emma Lazarus)라는 젊은 유태인 여인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똑 같은 말을 했다. 꿈 같은 소리 같아도 이런 말에는 뭔가 힘이 담겼다. 위엄, 저프고 싁싁하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모두 자유를 내걸었다. 그리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한 두 세대만 거슬러 보아도 가족의 누군가 피를 흘렸다. 미국의 조그만 마을들, 마을의 중심에는 대개 기념비가 서있다.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한국전쟁도 그 중의 하나다. 그 밑으로도 많은 이름들이 적혀 있다. 자유를 명분으로 전쟁을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 전쟁에서 제 목숨을, 가족의 생명을 읽는다느느 것은 또 무슨 뜻일까? 평범한 미국 시골 사람들의 자유, 촛불 또는 태극기 집회에 나선 평범한 우리 이웃의 자유, 그냥 빈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에 출마한 트럼프는 미스 리버티로부터 저 노래를 떼어 버리겠다고 공약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약속도 했다. 문을 닫아 버리겠다고 했다. 문을 닫으면 쉽게 갈 수 없는 땅이 된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있다. 미국에는 알트라이트(alt-right, 대안우파)가 있다. 우파라고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kkk의 악몽, 인종주의, 신나치, 백인우월주의 따위의 딱지들이 붙어 다닌다. 이런 이들이 아메리칸 드림, 자유로운 이민에 반대한다. 이들은 트럼프의 공약에 만세를 불렀다. 미스 리버티, 목을 쳐 버렸다. 이것도 그냥 빈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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