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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자유

3.5 내 탓이오


혹시 기억나시나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친 기간 동안 거의 범국민적 캠페인처럼 번져 나갔던 ‘내 탓이오’ 캠페인 말입니다. 가톨릭평신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이 캠페인은 사회 각층과 단체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나라 구석구석까지 소리 없이 퍼져 나가며 한국인들의 정서 순화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말이다. 나는 자유라는 말을 생각하면 ‘내 탓이오’ 이 말이 떠오른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자유라는 말의 뜻이 본래 저렇다. 15세기 언해불전에도 자유(自由)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 성조기 훨씬 이전, 우리에게도 자유(自由)가 있었다. 말도 있었고, 느낌도 있었다. 꿈도 바람도 있었고, 싸움도 있었다. 미스 리버티보다 훨씬 가깝고 낯익은 말과 꿈이었다.

드틀에서 (벗어) 나지 못함은 주(住)함을 얻지 못한 닷이며, 마음이 해탈 못함은 마음을 항(降)하지 못한 닷이니


드틀은 대상(對象)이고 경계(境界)이다. 우리 몸의 뿌리를 건드리고 찌르는 바깥의 물질이다. 빛과 소리, 맛과 냄새, 아주 작은 알갱이, 티끌로 우리 몸을 찌른다. 알갱이들이 나를 찌를 때, 알갱이들은 나에 맞서는 대상이 된다. 경계가 된다.

내 머리가 제 동(動)할 뿐이언정


이른바 열대야의 밤을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 모기의 날개짓, 소리의 드틀이 내 귀를 찌른다. 방아틀이 풀리듯 손발이 풀린다. ‘제 동(動)할 뿐이언정’, 자동(自動)을 이렇게 새겼다. 머리와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모기와의 전쟁, 편히 자기는 글렀다. 열어 놓은 창 너머로 밥 내음이 내 코를 찌른다. 꼬로록, 이젠 배가 풀린다. 제 풀리고 제 뮌다. 드틀은 어디에나 있다. 쉼 없이 내 몸을 쑤셔댄다. 어디로 튈지 따라 다니기도 힘들다. 뒤척뒤척 밤은 간다. 아침이면 온 몸이 쑤신다. 말하자면 이런 게 ‘드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꼴’이다. 모기 한 마리가 주는 가려움, 이런 것도 두려움이다. 모기 한마리 제가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나? 가렵다지만 가려움도 잠깐이다. 헤아려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 몸은 따질 겨를도 없이 제 풀리고 제 뮌다.

주로 부정적인 현상이 생겨난 까닭이나 원인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


언해불전은 유(由)를 ‘닷’이라고 새긴다. 국어사전은 ‘닷’을 ‘탓의 옛말’이라고 풀이한다. 요즘의 말투, ‘탓’은 역시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이다. ‘내 탓이요’는 “through my fault”의 번역이라고 한다. ‘나의 잘못’이란다. 불교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제 허물이 있거든  중이 드러내게 할 쌀, 닐온 자자(自恣)이라


‘닐온’은 ‘이른바, 소위(所謂)’의 옛말이다. ‘’이란 말, 이제는 아주 잊혀진 ‘옛말’이다. 자임(恣任)을 이렇게 새겼다. 제 뜻에 맡겨 버린다는 말이다. 이런 말도 좀 아깝다. 비슷한 말 찾기도 어렵다. 굳이 찾자면 ‘뜻가장’에 가깝다. 자자(自恣)는 제 허물을 대중, 여러 사람들 앞에서 제 스스로 ‘제 뜻가장’ 드러내는 일이다.

내 탓이오, 가톨릭의 의식에서는 이 말을 세 차례 거듭한다고 한다. 대중 앞에서 하는 철저한 자기 반성, 요즘에야 ‘셀프디스’란 말도 있다. 공산당이 한다는 ‘자아비판’도 있다. 이런 게 다 ‘제 뜻가장’ 아닐까? ‘제 뜻가장’, 이건 대중에게도 이롭지만, 제 몸에도 이롭다. 언해불전에서는 자자(自恣)를 ‘제 방자하여’ 라고 새기기도 한다. 제 멋대로 거리낌이 없는 짓, 무례하고 건방진 모습이다. ‘제 스스로 하는 짓’, 이건 해롭다. 말과 뜻이 이렇게 갈리기도 한다.

아무튼 ‘닷’이라는 옛말, 여기에 본래부터 허물이라는 뜻, ‘부정의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由)라는 글자는 ‘까닭이나 원인’이다. 요즘에도 ‘말미암을 유(由)’라고 새긴다. 옛날 천자문에서는 연(緣)이란 글자를 ‘말뫼 연(緣)’ 이라고 새긴다. ‘말미암다’의 어원이다. 연유(緣由), 원인이다.

자유(自由)를 언해불전의 말투를 따라 글자대로 바꿔 보면 ‘제닷’이 된다. 원인이나 까닭이 밖으로부터 온 게 아니다. 까닭은 제 안에 있다. 제가 저의 원인이다. 제 허물만이 제닷이 아니다. 제 존재 자체가 제닷이다. 제가 짓는 온갖 짓이 다 제닷이다. 부처와 중생이 한가지, 평등한 까닭도 자유, 제닷이다. 한가지의 제닷, 자유는 본래 그런 말이었다. 제 허물을 제 뜻가장 드러내는 일은 제닷, 제 안의 원인을 반성하는 일이다. 돌이켜 보는 일이다. 원인을 알아야 다시는 허물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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