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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평등

2.7 몸의 평등, 뿌리의 평등

불교는 유심론(唯心論), 불교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이런 말을 떠올린다. 오직 마음, 그리고는 다시 유물론을 떠올린다.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이다. 유심론과 유물론은 쉽게 짝을 이룬다. 불교는 유심론이다. 이런 것이 상식이다. 무신론이란 말도 비슷하다. 쉽게 유신론에 짝이 된다. 불교는 무신론이다. 이것도 상식이다. 불교는 무신론이란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닮았다. 하지만 유심론이란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 이런 것도 상식이다.

유심론과 유물론, 또는 유신론과 무신론, 누가 이런 상식을 퍼뜨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괴이하다. 속절없이, 부질없이 어린 백성을 잡는다. '속절없다'는 공연(空然)한 소리란 말이다. 속이 텅 비었다. '부질없다'는 등한(等閑)한 소리란 말이다. 한(閑)이란 글자, ‘겨르롭다’라고 새긴다. 한가한 소리다. 등한(等閑)은 ‘넌즉하다’라고 새기기도 한다. ‘넌지시’, 또는 ‘넌지시’의 어원이다. 요즘에야 한가한 척, 모르는 척하며 은근 떠본다는 말이다. 속절없고, 부질없고 비슷한 말이다. ‘하염없다’는 말도 있다. 무위(無爲)를 이렇게 새겼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멍 때리는 소리다. 그르메 놀이로 구태여 지은 이름, 텅 빈 소리고, 한가한 소리다. 하염없다. 이런 법, 이런 이름, 알고 쓰던 모르고 쓰던 엉뚱한 사람을 잡는다. 그렇다고 겁낼 것도 없다. 하염없는 소리, 무던히 흘려 보내면 그만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가 오직 마음의 지음이오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며, 만법(萬法)이 오직 식(識)인 젼차로 제법의 남이 오직 마음의 나톤 것이라


이런 말, 언해불전에도 셀 수 없이 거듭된다. 과연 마음이다. 그런데 그냥 마음이 아니다. 조(造)와 현(現)이란 동사가 따라 다닌다. 조건이 주어진다. 조(造)는 조작이다. 마음이 짓는다. 마음이 조작한다. 현(現)은 ‘나토다’이다. 드러내고 보여준다.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토끼를 나톤다. 환사가 환술로 범을 나톤다. 마음은 짓고 나톤다. 짓고, 나토고, 마음이 하는 일, 앞에서는 비비고 버믄하고 했다. 구태여 붙들고, 구태여 이름을 세운다고 했다. 괴이하다고 했다. 그르메 놀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없는 이름에 실제로는 없는 얼굴을 구태여 세운다. 그런 걸 마음이라고 부른다. 이런 마음, 그냥 유심론이 아니다. 부질없는 마음에 부질없는 유심론이다.

얼굴과 그르메로 돌아가 보자. 내 몸에는 얼굴이 있다. 내 눈으로 하늘의 달을 본다. 내 눈에도 얼굴이 있다. 하늘의 달에도 얼굴이 있다. 하지만 눈에 어린 달, 그르메에는 얼굴이 없다. 그르메 놀리는 마음에도 얼굴이 없다. 얼굴도 없이 짓고 나토는 일, 환(幻)이라고 부른다. 곡도이다. 마음도 곡도이고 비비고 버므는 것도 곡도이다. 곡도가 곡도를 짓고 나톤다. 곡도의 몸으로 곡도를 짓는다. 그런 마음, 그런 지음, 이걸 유심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거꾸로 내 몸의 뿌리에는 얼굴이 있다. 눈도 귀, 내 몸이 물질이듯, 내 뿌리도 물질이다. 마음도, 마음의 지음도 뿌리로부터 싹트고 자란다. 모두가 얼굴을 가진 뿌리의 지음이다. 뿌리의 나톰이다. 얼굴을 가진 것은 오직 근, 오직 뿌리이다. 뿌리가 없다면 마음도 없다. 마음의 지음도 없다. 물질인 뿌리, 그렇다면 이건 유물론 아닌가? 속절없는 비빔에 부질없는 이름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마음도, 불교도 이름이다. 구태여 세운 법이다. 구태여 세운 일은 다 그르메의 일이다. 그르메의 일은 뿌리에서 싹텄다. 뿌리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일에 구태여 다시 이름을 세워야 한다면 유근(唯根), 오직 뿌리일 뿐이다. 얼굴을 가진 뿌리와 얼굴을 가진 드틀이 비비고 버믄다. 갖가지 그르메의 일이 싹튼다. 오직 뿌리, 그런데 뿌리만으로는 싹이 트지 않는다. 비비고 버믈어야 싹이 트고 자란다. 사람이 지은 일이 다 이렇다.

비록 모롬과 아롬이 다름이 있으나, 본래의 근원은 하나이다.

모르는 이를 일러 중생이라 하고, 아는 이를 일러 부처라 한다.


이건 미(迷)와 오(悟)의 대구이다. 모롬과 아롬, 모르다와 알다의 대구이다. 때로는 어륨과 아롬을 짝을 짓기도 한다. 어리다와 알다의 대구이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모롬과 아롬의 차이라고 한다. 어륨과 아롬의 차이라고도 한다. 모르면 어리고 알면 어질다. 알고 모르고, 종이 한장 차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다. 언해불전은 본래의 근원이 하나라고 한다. 중생과 부처의 근원 하나라고 한다. 본래 한가지, 본래 평등이다. 한가지, 또는 평등의 반대말은 차별이다. 차이이다. 다름이다. 평등과 차별의 근원도 하나이다. 모르면 차별이고 알면 평등이다. 모롬과 아롬, 어륨과 아롬, 또는 중생과 부처, 또는 차별과 평등, 근원은 하나, 오직 뿌리이다. 비비고 버므는 뿌리이다.

밝음 없는 진실한 성(性)이 곧 불성(佛性)이니

두 곳은 아래부터 옴에, 구틔여 이름 세우니


무명(無明)을 ‘밝음 없는’이라고 새긴다. 무명과 불성도 짝이다. 중생의 자리와 부처의 자리이다. 그래서 ‘두 곳’이라고 한다. ‘유래(由來)’는 ‘아래부터 옴에’라 새긴다. 언제부터인지 정할 수는 없어도 예로부터 그래 왔다는 말이다. 강(强)은 ‘구틔여’. '구태여'의 옛말이다. 무명이니 불성이니 이런 것도 다 이름이다. 중생이든 부처든 있는 자리, 그 ‘곳’에 이름을 세웠다. 구태여, 억지로 세운 이름이다.

알고 모르고, 석가모니의 놀라움, 기이한 것도 이것뿐이다. 이것만 풀리면 그만이다. 유심이건 유물이건, 무신이건 유신이건 구태여 세운 이름에도 순서가 있다. 불교에서는 제일의(第一義)라는 말을 쓴다. 제일(第一), 최초, 맨 앞, 언해불전의 말투로는 ‘맏처음’이다. 맨 앞에 평등이 있다. 모롬과 아롬 사이의 본래의 근원, 근의 평등, 뿌리의 평등이다. 모든 중생, 모든 생명, 그리고 모든 부처 조건은 한가지이다. 뿌리의 조건이다. 한가지 뿌리에서 모롬도 싹트고 아롬도 싹튼다. 구태여 이름을 세우고, 순서를 세운다면 맨 앞에 뿌리가 있다. 한가지 뿌리의 한가지 평등이 있다. 뿌리가 먼저고 평등이 먼저다. 모롬과 아롬, 언해불전은 이 이야기를 거듭한다. 이 이야기뿐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위의 구절은 토마스 제퍼슨이 쓴 미국독립선언서의 구절이다. 아래 구절은 존 아담스가 쓴 매사추세츠 헌법의 구절이다. 둘 다 평등을 이야기한다. 위의 구절은 평등의 근거를 신의 창조에서 찾는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유신론의 평등이다. 아래 구절은 평등의 근거를 자연에서 찾는다. 말하자면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의 평등이다. 굳이 신을 찾지 않아도 평등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사례라지만, 서구의 역사에서 찾은 보편의 가치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다지만, 이 평등은 기독교에서 싹이 트고 자란 평등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휴, 한숨이 나온다. 참 다행이다. 어진이도 어린이도 누구나 한표, 이런 가치는 우리 스스로 찾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서구화, 또는 근대화의 길을 따라 오며, 서구에서 찾은 모델이었다. 저 노래도 기독교의 평등, 계몽의 평등, 이성의 평등에서 왔다. 어디서 왔건, 무엇을 베꼈든, 정말 다행이다. 현실이 어떻고, 불평등이 어떻고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헌법 제1조를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

언해불전의 눈을 빌어 보자면, 월인천강, 그르메 놀이라는 말에 기대어 보자면, 저런 구절이 모두 불교다. 부처의 가르침이다. 평등을 맨 앞에 세운다면 기독교도 유신론도 다 불교다. 합리주의도 계몽주의도 불교다. 평등이 먼저라면 마르크스주의도 불교이고, 공산당도 불교다. 그런 것은 것이 맏처음의 법이고, 읏듬의 이름이라면 불교라도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다. 법이나 이름, 구태여 세우고, 구태여 붙는다. 사람이 지은 이름이다. 석가모니는 모르는 중생, 어린 백성을 보고 놀랐다. ‘본래는 평등한데 왜?’ 이게 석가모니의 맏처음 말씀이었다. 그리고 밥의 평등은 그의 맏처음, 최초(最初)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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