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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09_01 법수(法數)에 있느니라

증도가 현각의 노래


오음(五陰)은 법수(法數)에 있느니라.


법수(法數)라는 말, 쉽게 말해 사전이다. 불교사전이다. 사전에 있으니 찾아 보라는 말이다. 이 것도 말투이다. 새기고 풀이하는 투이다. 예를 들어 『증도가사실』은 오음(五陰)을 먼저 자세히 풀이해 준다. 불교 주석서의 말투가 대개 그렇다. 까다로운 말이 나올 때마다 말을 풀어준다. 말의 뜻도 풀어 주고, 말의 뿌리, 말의 쓰임새도 차례로 풀어 준다. 때로는 말에 얽힌 서로 다른 해석, 논란의 역사도 자세하게 소개한다. 말풀이가 몇 쪽을 넘어 가기도 한다. 때로는 무척 고맙기도 하지만, 때로는 짜증도 난다. 글의 흐름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말을 쫓는 일, 이게 은근 재미도 있다. 몇날 몇일을 말을 따라 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놀라기도 한다. 요즘엔 인터넷이 딱 그렇다. 클릭 몇 번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엉뚱한 쪽에서 정신을 차리곤 한다. 친절해서 탈이다. '법수(法數)에 있느니라',『증도가남명계송』, 세종의 증도가에는 이 말이 제법 자주 보인다. 이건 또 다른 친절이다. 헤매지 말고, 나중에 따로 사전을 보렴. 모르는 말 놀라지 말고, 지금은 노래나 부르자꾸나. 언해의 말투가 이렇다. 만만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수(數)는 육예(六藝) 가운데 하나이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나오니 천지만물을 모르면 그 실정을 감추게 된다. 하물며 사람의 일이겠는가? 대장경은 불서의 총록(叢錄)이다. 그 명수(名數)는 번거롭기가 비길 데가 없어, 학자들의 두통거리였다. 이에 때맞춰 서암(西菴)이 이 책을 편집한 것이다.


무학대사가 중간(重刊)을 마치자, 내게 발문을 청했다. 내가 그 책 머리에 있는 나의 좌주(座主)이신 규재(圭齋) 선생의 서문을 보니 필법이 완연한 것이 곁에서 모시고 보는 것 같았다. 무열(無說), 백경(伯敬), 유의(有儀)는 모두 나의 벗들이다. 함께 웃고 떠들던 때를 생각하니 이제는 다 돌이킬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수학(數學)이야 따질 겨를도 없고, 나의 감회를 주절주절 기록한다.


『장승법수(藏乘法數)』도 불교사전이다. 위 그림은 이 사전의 서문이다. 원나라의 규재(圭齋) 구양현(歐陽玄 1283-1357)이 짓고 썼다. 위의 글은 목은 이색(1328-1396)의 발문이다. 원나라에서 만든 사전을 무학대사가 다시 새기면서 목은에게 발문을 청했다고 한다. 목은은 스물 한 살에 원나라 국자감(國子監)에 유학했다. 그 때의 좌주(座主)가 규재(圭齋) 선생이었다. 목은은 대장경의 법수를 '학자들의 두통거리'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전이 있다. 사전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목은은 수학이야 따질 것도 없고 제 감회만 늘어 놓고 만다. 불교의 법수가 딱 이렇다.

자정사(資正使) 강공(姜公)이 서암(西菴) 가수(可遂)가 지은 장승법수(藏乘法數)라는 좋은 글을 얻어 진상하였다. (상께서) 불교의 핵심을 얻었다고 기뻐하며, 출간하여 유통하도록 했다. 무열대사(無說大師) 굉연(宏演)이 서문을 썼다.


이 말은 규재(圭齋)선생이 쓴 서문의 구절이다. 자정사(資正使) 강공(姜公), 이 사전의 사연도 흥미롭다. 자정원(資正院)은 황후의 재산을 관리하던 기관이었다. 자정사(資正使)는 정이품의 고위직이다. 강공(姜公)은 강금강(姜金剛)을 가리킨다. 고려 출신의 환관이다. 충혜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기황후의 심복이 되었다. 무열대사(無說大師) 굉연(宏演)은 고려의 고승이다. 목은은 ‘나의 벗’이라고 한다. 이 책을 새로 새긴 무학은 한참 후배이다. 고려와 원나라를 누비던 유교와 불교의 지식인들, 그들 사이에 이런 일도 있었다.법수는 그만큼 당대 지식인들 필독의 사전이었다.

'법수에 있느니라', 이 말은 그저 '사전을 보시게', 보통명사일 수도 있다. 『장승법수(藏乘法數)』라는 사전의 이름, 고유명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언해불전의 말풀이를 따라 가다 보면 또 하나의 사전이 나온다.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라는 사전이다. 명나라 때 일여(一如, 1352-1425)가 지은 사전이다. 일여는 『법화경언해』에 함께 편집된 『법화경과주』도 지었다. 일여의 법수는 명나라 대장경을 교감하면서 함께 만든 사전이다. 오십권이나 되는 불교백과사전이다. 언해불전의 말풀이, 이 사전에서 따오기도 한다. '법수에 있느니라', 고유명사로 읽자면 『장승법수』나 『대명삼장법수』, 둘 중의 하나이다. 이런 사전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귀한 책, 가진 사람이나 볼 수 있었다. 사전이 없다면 가진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노래 부르다 말고 어디로 가야 하겠나?

'법수에 있느니라', 나는 이 말을 보면서 '뭣이 중헌디', 요즘 유행어를 떠올렸다. 말이야 몰라도 괜찮다는 말이다. 그거야 나중에 따지면 그만이다. 지금은 이 노래를 듣고, 이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한다. 그 말 몰라도 따라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래서 이 말투도 새롭다. 말과 글, 또는 아롬이나 지식을 다루는 투가 담겨 있다. 그걸 풀이하고 가르치는 수단도 담겼다.

이러한 방편으로 하나의 법 알고

둘째는 두가지 법, 셋째는 세가지 법을 따라

사오육칠팔구십

열한 가지 법까지 모두 다 아네


옹기장이 그릇 빚듯

마음껏 만드니 의심도 없어

이처럼 아함경 증일의 법은

삼승을 교화하여 차별이 없네


오롯한 마음으로 증일의 법 기억하면

이것이 바로 총지여래장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의 구절이다. 이른바 '삼장(三藏)의 결집'을 이끌었다는 아난의 노래이다. 법수의 아이디어는 바로 아난의 아이디어였다. 부처의 말씀은 정교한 분류법을 따라 이뤄졌다. 하나를 둘로 나누기도 하고, 셋으로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명삼장법수』는 '일심(一心)'에서 비롯하여 '팔만사천법문'으로 맺는다. 아난은 그런 말씀을 듣고 '몽땅' 기억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증일(增一)'의 요령을 익혔다. 숫자를 하나씩 더해 가며 숫자의 덩어리로 분류하여 외우는 요령이었다. '증일'의 법을 따르면 가르침을 빠짐없이, 남김없이 기억할 수 있다.

총지(總持)는 '모도잡다'라는 말이니, 다라니라.


나는 '증일'이나 '법수', 이런 말을 '기술'이라고 부른다. 말을 이르는 기술이고, 말을 듣는 요령이다. 글자가 없던 시절, 입과 귀로 소통하던 시절의 기술과 요령이다. 이 때는 기억력이 지식을 이끌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지식인, 또는 엘리트가 될 수 있었다. 기억력은 지식의 필수 조건이었다. 기억력은 그 자체로 권력이었다. '기억력이 곧 불교'이던 시절도 있었다. '모도잡다'는 우리말 새김, 참 정겹다. 하지만 목은의 말맞다나, 이게 참 괴롭다. 하나도 남김없이, 빠짐없이 '모조리 기억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증일'이나 '법수', 또는 다라니의 기술은 기억을 나누기 위한 기술이었다. 지식을 소통하고 공유하던 전통이었다. 나는 이런 기술의 전통이랄까, 이게 참 고맙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글을 읽다가 줄만 넘어가도 앞줄의 말을 잊곤 했다. 언해의 말투는 그런 기술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나같은 바보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요령, 언해불전의 말투는 그런 요령을 다룬다. 바보탓을 하다 보니, 말만 또 늘어지고 말았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