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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道를 證한 노래는

039_01 아니한 사이, 그지 없는 사이

증도가 현각의 노래

결정(決定)한 말을,

진승(眞乘)을 표(表)하니,


시혹 사람이 신(信)하지 아니할진댄, 뜻가장 물을지어다.


바로 근원을 그침은, 부처의 허한 바이시니,

잎 따며 가지 찾음을, 내 능히 못하노니,


결정한 말로 나토는 진승(眞乘), 뜻가장 물으라고 한다. 근원(根源), 근(根)은 나무의 본(本), 나무의 밑이다. 원(源)은 샘, 또는 물의 밑이다. 이에 비해 잎과 가지는 나무의 끝이다. 밑과 끝의 짝이다. 영가는 부처가 허락한 것 밖에는 할 줄 모른다. 직절(直截), 근원을 바로 끊는다. 밑을 바로 끊는다. '부처가 허락한 바'라고 한다. '부처가 허락한 바'와 '나는 못하노니', 이런 짝도 재미있다.

법신(法身)을 알면, 한 것도 없으니,


세존(世尊) 꽃 잡으심이, 이 법신(法身) 잡아 내신 곳일새,

이르시되 인(因)야 영산(靈山) 당일사(當日事)를 생각하라 하시니라.


영산, 그 날의 일, 세존은 꽃을 잡고, 가섭은 웃는다. 부처의 인(印)이고 부처의 허락이다. '조할시라', 말하자면 이런 일이 '부처의 허한 바'이다. 그리고 그 일이 영가의 밑이다. 남명은 '대 막대 짚고 봄길에, 잔화(殘花)를 밟오라'고 노래한다. 평평하고 덛덛한 일용(日用)이란다.

영가는 결정한 말로 나톤다. 부처는 허락한다. 그 사이에 여우도 있고, 사마(邪魔)도 있다. 뜻가장 물음, 천만의 얼굴도 섞어 달린다. 만 가지의 물음과 한 묘(妙)의 사이, 끝과 밑의 사이이다. 부처는 꽃을 잡는다. 가섭은 웃는다. 천만의 얼굴, 하나의 묘, 이런 말에 거리낄 거 없다. 그 사이엔 뜻가장이 있다. 못 믿겠다면 뜻가장 물으면 그만이다. 뜻가장 물음에 부처는 뭐라 할까? 영가는 뭐라 나톨까? 묻지 않겠다면 궁금할 것도 없다. 물을 이는 묻고, 웃을 이는 웃는다. 밑도 끝도 없는 소리, 여우야, 여우야, 남명은 그런 것도 놀려 먹는다.

바로 근원(根源)을 그침은, 부처 허(許)하신 바이시니,


번개 옮으며 바람 감이, 경각(頃刻)의 사이니라,

빨리 돌아와, 돌아봄을 말지어다,

수유(須臾)에 찬 해, 서산(西山)에 나리리라.


경각(頃刻)과 수유(須臾)는 아니한 사이라.


'아니 한 사이', 이런 말도 내겐 매직스펠,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하다'는 '많다'이다. '사이'는 시간, 옮아 흐름의 사이이다. 번개 옮으며, 바람 가는 사이, 사람들은 그런 사이에도 구태여 금을 그으려 든다. 나누고 또 쪼개고, 더는 쪼개기도 힘든 사이, 경각과 수유는 그런 사이이다. 0, 제로를 향하는 사이이다. '아니한', 요즘말로 치자면 '아니 많은'이다.

경각과 수유, 언해는 그냥 순간(瞬間), '눈 깜짝할 사이'라고 읽는다. 어려운 말 쓸 것 없다. '밑을 버리고 끝을 좇음', 끝을 버리고 밑을 비춤', 언해는 영가의 근원을 이 두 짝으로 읽는다. 사이로 치자면, '아니한 사이'와 세 아승지, '그지 없는 수의 사이'의 짝이다. 영가와 그대의 사이에 천만 얼굴이 섞어 달린다. 그 사이는 '아니한 사이'일 수도 있다. '그지 없는 사이'일 수도 있다. 밑과 끝의 사이가 이렇다.

증도가, 그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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