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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함께 읽는/세종에게

나라와 사람

래무소래(來無所來)하샤미 월인천강(月印千江)이오

거무소거(去無所去)하샤미 공분제찰(空分諸刹)이로다


오셔도 오신 바 없으니, 달이 즈믄 가람에 비침이오

가셔도 가신바 없으니, 허공이 여러 나라에 나뉨이로다


『금강경삼가해』, 함허의 노래이다. 이 노래로부터 세종의 '월인천강'이 나왔다. 함허는 이 노래를 짝으로 부른다. 오고 가고, 가고 온다. 그 일을 월인천강(月印千江)과 공분제찰(空分諸刹)의 짝으로 나누어 노래한다. 두 개의 짝, 앞뒤가 있다. 한 노래의 두 구절, 나란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다.

함허의 저 구절, '부처와 사람' 사이의 일을 노래한다.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가르치다'는 동사이다. 이 일에도 짝이 있다. 말로 하는 가르침, 이르는 이가 있고 듣는 이가 있다. 부처는 이르고 사람은 듣는다. 부처의 말씀이 사람에게로 온다. 부처가 사람에게로 온다. 그런데 부처도 생명이다. 사람이다. 늙고 아프고 그러다 죽는다. 오셨던 부처가 가시는 일이다. 부처가 사람에게 오고 가는 이야기, 함허는 이 짝을 함께 노래한다. 달이 즈믄 가람에 비치듯이 오셨다가, 허공이 여러 나라에 나뉘듯 가셨다. 오시고 가시고, 이건 사람의 눈으로 보는 부처의 모습이다. 부처와 사람, 눈이 다르고 귀가 다르다. 보고 듣고 하는 짓도 다르다. 오시고 가시고, 듣는 사람의 관점이다. 그의 눈과 귀에 달렸다. 부처를 바라보는 사람의 일, 함허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공분제찰, 허공이 여러 나라에 나뉨, '허공에 금긋기'란 말이다. 허공에 금을 그어 허공을 나누고 가린다. 이 말을 보면 나는 저런 그림이 떠오른다. 인터넷에서 '삼팔선'을 찾아 보면, 저런 그림들이 나온다. 길에 '38'이란 숫자를 걸었다. 지게 진 할배가 지나간다. 보퉁이를 든 아낙네도 간다. 철부지 아이들도 간다. 총을 든 군인이 막아선다. 누군가 거기에 금을 그었다. 길에도 금을 긋고, 허공에도 금을 그었다. 찰(刹)이란 글자를 '나라'라고 새긴다. 국(國)이란 글자도 '나라'라고 새긴다. 찰(刹)이란 글자, '절 찰'이라고 새긴다. 사찰(寺刹)이란 말도 있다. 그런데 이 구절, 구태여 '나라'라고 새긴다. 나라의 옛말은 '나랗'이다. 그래서 저 구절의 원문은 '여러 나라해'이다. 저 새김에 따르면 나라는 '허공에 그은 금'이다. 허공에 그은 금, 허공이 속절없 듯, 금도 속절없다. 부처가 오고 가는 사이의 '금'은 어디일까? 세종은 월인천강, 이 노래를 따라, 저 말을 새로 지은 노래의 제목으로 삼았다. 사연이 없을 리가 없다. 공분제찰은 월인천강의 뒷면이다. 부처가 오고 가듯, 세종도 오고 간다. 이게 그저 우연이었을까?

세종은 '어린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사람으로 하여금 쉬 익혀', 세종은 다시 백성을 '사람'이라고 읽었다. 『법화경언해』는 인민(人民)을 '백성'이라고 읽는다. 인민과 백성과 사람, 다 같은 말이다. 언해불전의 말투가 그렇다. 글자를 만드는 일도 세종과 백성, 세종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그 사이에 허공이 있고, 그 사이에 금이 있다. 사람들은 허공에 그은 금 사이에서 살아간다. 세종과 백성 사이에도 금이 있다. 백성들 사이에도 금이 있다. 그 사이를 오고 간다.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금도 있지만, 넘지 말아야 할 금도 있다. 함허의 나라, 함허는 부처와 사람의 사이를 노래한다. 세종의 나라, 세종과 백성 사이의 일이 담겼다. 나라와 사람의 일이다. 그걸 바라 보는 함허와 세종의 눈이 있다. 저 노래, 저 구절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중들도 또한 사람인데, 어찌 먹지 않고 살아가겠느냐?


『세종실록』, 세종의 말씀이다. 중만이 아니다. '노비도 사람인데', '죄수도 사람인데', 나는 이것도 '세종의 말투'로 여긴다. 실록을 찾아 보면 안다. 이런 말을 거듭하는 임금, 세종 밖엔 없다. 세종은 중들이 넘어서는 안될 금을 넘었다고 여겼다. 불교를 혁파하고 중들을 고치는 일, 조선의 건국, 혁명의 이념이었다. '해동 육룡이 나라샤', 세종은 혁명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그래서 불교 혁파를 극단으로 실천했다. 그것이 나라의 임금으로 반드시 해야 할 나라의 일이라고 믿었다. '사람을 위한'일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게 임금의 일이고 나라의 일이다. 하지만 그 일에도 금이 있다. 중도 노비도 죄수도 다 사람이다. 고치고 바꾸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금이 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 언해불전은 활계(活計)를 '사롤 혬'이라고 새긴다. '살혬'이다. 임금도 나라도 사람의 '사롤 혬'을 막을 수 없다. 나라도 임금도, 법도 윤리도, 혁명도 혁파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나라와 사람, 임금과 백성, 세종에게는 세종의 금이 있었다. 넘어서라도 가야 할 길도 있다. 길이 있더라도 넘어가서는 안될 금도 있다. 사람을 위한 일, 사람의 사롤 혬을 가려야 한다. 그래서 함허도 세종도 저 노래, 짝으로 부른다. 사람이 다 '한가지 제쥬변', 제 삶의 임자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물에 장강(長江), 회수(淮水), 황하(黃河), 한수(漢水)보다 큰 물은 없다. 황하는 북쪽에 있고, 장강과 한수는 남쪽에 있으며, 회수는 그 가운데에 있다. 회수를 거슬러 북으로 가면, 황하에 닿는다. 회수를 따라 남으로 가면 장강과 한수에 닿는다. '


회수의 달'이라고 한 것은, 하나의 달이 가운데 있어 남북으로 나뉘어 비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집에 이름을 단 까닭이다. 그대가 글로 써 줄 수 있겠소?


월인천강과 공분제찰, 내가 이 노래로부터 '삼팔선의 그림'을 떠올리는 데도 까닭이 있다. 이 구절이 '남과 북 사이의 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물, 회수는 남북을 가르는 금이다. 하나의 달을 두고 누구는 남쪽에 있다고 하고, 누구는 북쪽에 있다고 한다.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이이고 차별이다. 이 노래는 본래부터 평등과 차별에 관한 노래였다. 같고 다름, 그 사이의 금에 관한 노래였다. 언해불전은 '본질과 영상'이라는 말로 풀이하기도 한다. 금을 긋는 자는 누구일까? 금의 뿌리, 금을 긋는 기준은 뭘까?

남북동서(南北東西)에 그츤 슻이 업거늘


간단(間斷)이란 말, 요즘에도 간간 보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이라고 새긴다. 언해불전은 이 말을 '그츤 슻'이라고 새긴다. '긏다'는 '끊다', 또는 '끊어지다'의 옛말이다. '슻'은 '사이' 또는 '틈'의 옛말이다.간단, 또는 '그츤 슻'은 끊거나 끊어진 사이, 틈을 가리킨다. 남북동서, 동서남북, 허공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 이름이다. 남이다 북이다 이름을 부르지만, 그 이름 사이를 긋는, 또는 그어지는 금이 없다는 말이다. 월인천강과 공분제찰, 이런 일을 묻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길게 이어진다. 언해불전은 이 물음이 전부이다. 언해불전의 노래가 잊혀졌듯, 이 물음도 함께 잊혀졌다. 그래서 나는 이걸 '월인천강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공분제찰, 이 말은 월인천강의 뒷면이다. 월인천강과 공분제찰은 한 몸이다. 이 말에는 세종이 바라 보던 세종의 나라, 그리고 세종이 바라보던 세종의 사람이 담겨 있다. 허공에 그은 금이라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금에 갇혀 살아간다. 속절없는 금, 세종도 사람도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 사람이 그은 금이라지만, 지울 수 있는 금도 있고, 지울 수 없는 금도 있다. 지울 수 있는 금이라면 지워야 한다. 지울 수 없는 금이라면 지켜야 한다. '어린 백성을 위하여', 세종은 선택했다. 그리고 뭔가를 새로 만들었다. 고치고 지우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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