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함은 몸에 상녜, 누갈(縷褐)을 입나니,
서로 만나 남삼(纜縿)을, 웃지 말지어다.
이따금 털어 겨르로이 잡이 일으키니,
속절없이 금수(錦繡) 적삼, 입음보다 더하도다.
누갈(縷褐)은 누비옷이라, 남삼(纜縿)은 옷의 헌 양자이라.
누갈(縷褐)은 문채(文彩)없는 본분(本分)의 옷이라. 더하다 함이 두 가지 있나니, 하나는 세인(世人)의 옷에 더하고, 둘은 삼신(三身) 옷에 더하니,
예에 이르되 법신(法身)은 청정(淸淨) 옷이오, 보신(報身)은 차별(差別) 없는 옷이오, 화신(化身)은 광명(光明) 옷이니, 이르는 삼신(三身) 옷은 오늘날의 새로 이룬 신통삼매(神通三昧) 등(等)이니, 이 옷은 문채(文彩)에 지지 아니한, 한 영(領)의 옷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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