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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평등과 자유의 열쇠/평등

2.1 월인천강, 세종의 노래



(상께서) 영순군(永順君) 부(溥)에게 일러, 기생 여덟에게 언문으로 쓰인 노랫말을 주어 부르도록 했다. 곧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었다. 상께서 세종을 그리며 잠잠히 계셨다. 호조판서 노사신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다, 이윽고 눈물을 떨구셨다. 노사신도 엎드려 눈물을 흘리니 좌우의 낯빛이 바뀌었다.


세조 14년(1468) 5월 12일, 실록의 기록이다. 저 임금은 왜 울었을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기 때문이다. ‘월인천강의 노래’, 그리운 아버지의 노래, 아들은 이 노래로 아버지를 그린다. 아버지를 기린다. 그리고 넉 달 뒤,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월인천강의 노래는 세종의 노래였다. 이게 참 희한하다. 희한(稀罕)이란 말은 “드물고 드물다”는 뜻이다. 그렇게 드물어 처음 보는 것, 그러면 신기하다. 언해불전에서는 “희유(希有)”라는 말을 즐겨 쓴다. “드물다”라고 새기기도 하지만 “쉽지 못하다”라고 새기기도 한다. 쉽다는 “많다”, “흔하다”는 뜻이었다. 흔하기 때문에 어렵지도 않다. 반대로 흔하지 않다면 어렵다. 요즘이야 “쉽지 않다”고 한다.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몸을 나토아 가르친 것이, 달이 즈믄 가람에 비치는 것과 같다.


『월인천강지곡』, 노래의 제목 아래에 달려 있는 설명이다. 세종이 지은 노래, 세종이 고른 이름, 세종 스스로 달아 놓은 설명이다. 이런 말이야 불교에서는 흔한 말투이다. 보통은 ‘부처 앞의 평등’ 또는 ‘가르침의 평등’이라고 부른다. 부처의 가르침은 동서고금, 부귀빈천, 남녀노소, 사람은 물론이고 구물거리는 모든 생명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어떤 차별도 없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즈믄 가람에 물 있으면, 즈믄 가람에 달


월인천강 이전에는 이런 노래가 있었다. 이것도 언해불전의 구절이다. 천강(千江), 즈믄 가람은 모든 물을 가리킨다. 하늘에는 달이 있고, 땅에는 물이 있다. 태평양도 물이고, 한강도 물이다. 찻잔에 담긴 찻물도 물이고 거미줄에 어린 물방울도 물이다. 맑은 물도 물이고 흐린 물도 물이다. 물이 있다면 달빛이 어린다. 달이 뜬다. 언제나 한결같고, 어디서나 한가지이다. 달의 평등이다. 물의 평등이다. 부처의 가르침도 이와 같다. 물이 있다면 달이 뜨듯, 생명이 있다면 가르침이 뜬다. 이 노래의 뜻이 그렇다. 세종의 월인천강, 평등을 힘주어 나토는, 드러내는 말이다. 그렇다면 ‘월인천강’,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불교의 말이라지만, 그다지 널리 쓰이던 말은 아니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 금강경삼가해』란 언해불전이 있다. 이 책 안에 이 말이 들어 있다.

옛날 세종 장헌대왕께서 일찍부터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가운데 『야보송(冶父頌)』과 『종경제강(宗鏡提綱)』, 『득통설의(得通說誼)』, 그리고 『증도가남명계송(證道歌南明繼頌)』을 국어(國語)로 번역하여 『석보(釋譜)』에 넣고자 하였다. 문종 대왕과 세조 대왕에게 명하여 함께 짓도록 하고, 친히 교정하고 결정했다. 당시 『야보송』과 『종경제강』의 두 가지 해석과 『득통설의』는 이미 초고가 완성되었지만 교정을 할 겨를이 없었고, 남명의 『계송』은 겨우 30여 수를 번역하여 모두 일머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유언으로 명을 남기시니 문종과 세조가 받들었다. 남기신 가르침을 받들어 먼저 『석보』를 판에 새겨 유통하였다.


『월인천강지곡』이나 『월인석보』는 세종의 작품이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 이런 건 누구나 다 안다. 위의 글은 『금강경삼가해』, 『남명집언해』라는 언해불전에 달린 발문의 부분이다. 한계희(韓繼禧 1423-1482)가 지었다. 그는 세종 말년 집현전에 들어 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세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 두 책은 세종과 문종과 세조, 세 대왕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번역했다. 먼저 두 아들이 새기면, 세종이 구절구절 함께 따져 본 뒤에 손수 결정을 했다. 한계희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새기고 풀고, 끼어들어 거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생생한 기록이다. 임금이 앞장서 글자를 만들고, 두 아들과 함께 갖가지 책을 손수 번역하고, 과연 동서고금에 쉽지 못한 일이다.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가운데 『야보송(冶父頌)』과 『종경제강(宗鏡提綱)』, 『득통설의(得通說誼)』를 국어로 번역하여......


『금강경오가해』는 『금강경』을 주석한 책의 이름이다. 다섯 사람의 다섯 가지 주석을 함께 모아 편집했다. 조선초 함허(涵虛 1376-1433)라는 스님이 여기에 다시 주석을 달았다. 『득통설의(得通說誼)』, 득통(得通)은 함허의 법호이다. 『설의(說誼)』는 함허가 지은 책의 이름이다. 세종이 두 아들과 함께 국어로 번역했다는 책, 초고를 완성했다는 책, 이걸 뒤에 함께 묶어 출간한 것이 『금강경삼가해』란 책이다. 나는 여기서 늘 말문이 막힌다. 월인천강이란 말, 『금강경오가해』나 『금강경삼가해』란 책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양도 양이려니와, 이 안에 담긴 내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말이 막히는 까닭은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도 기가 막히는데, 이런 책을 세종과 두 아들이 함께 국어로 번역했다는 사실은 더욱 기가 막힌다. 게다가 불교를 혁파해야 한다는 명분을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그 혁파를 앞장서서 실천했던 임금이다. 기가 막힐 일들이 겹으로 쌓여 있다. 기가 막히고, 말이 막히고, 그래서 그냥 ‘희한하다’고 한다.

즘게 아래 우물에, 닰그르메 지였거늘


수목(樹木)이란 말이 있다. 목(木)이 나무라면, 수(樹)는 즘게이다. 나무 가운데서도 오래 되고 우람한 나무를 가리킨다. 월인(月印)은 말하자면 달도장이다. 하늘의 달이 도장 찍듯 물 위에 찍힌다. 도장은 언제나 똑같음을 비유한다. 도장은 언제나 똑같기 때문에 확인하고 증명한다는 뜻이 된다. 저 노래, 월영(月影)을 닰그르메라고 새겼다. 그르메는 그림자의 옛 말이다. 그리메라고도 한다. 나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도 그르메이지만, 물에 비친 달의 영상도 그르메이다. 세종은 월인(月印)을 달그르메라고 새겼다. 월인천강이란 말, 『득통설의(得通說誼)』의 구절이다. 함허가 부른 노래의 구절이다. 태조가 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울 때, 무학대사가 공을 세웠다고 한다. 함허는 무학의 제자였다. 그리고 무학의 스승이 나옹이었다. 함허는 이 말을 나옹의 노래로부터 빌어 왔다. 나옹은 월영(月影)이라는 말을 썼다. 함허가 이 말을 월인(月印)으로 바꾸었다. 확인하고 증명하고, 월인(月印)이란 말은 말하자면 강조하는 말이다. “달그르메”, 잊지 말아라. 밑줄을 긋고 점을 꼭꼭 찍는다. 그만큼 중요한 말이다. 그리고 세종은 이 말을 따라 제 노래의 제목으로 삼았다.

말이야 간단하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다시 말문이 막힌다. 월인천강이란 말에 담긴 뜻, 『금강경삼가해』, 또는 『득통설의(得通說誼)』, 이 책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이야기를 더 끌어 갈 길이 없다. 말이 늘어지고 꼬일 수 밖에 없다. 긴 이야기 한번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종의 월인천강, 달의 평등, 물의 평등, 세종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말이 막히고 기가 막힌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야기, 우선은 이런 정도로 넘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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