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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藏)

원효

모년모일 구법(求法)의 사문 아무개는 다과와 제철 음식을 차려 해동의 교주(敎主), 원효보살께 공양합니다.

삼가 이치는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고 도(道)는 사람을 통해 넓게 퍼집니다. 풍속은 경박스럽고 시절은 야박해지니 사람은 떠나고 도(道)는 망가졌습니다. 스승은 각기 자신의 종습(宗習)만을 북돋우려 하고, 제자들은 또한 보고 들은 것만을 집착합니다.

자은(慈恩)의 백본(百本)이나 되는 담론에 이르러서는 명상(名相)에만 집착하고, 천태산(天台山)에서의 90일간의 설법은 이관(理觀)만을 존중하고 있으니, 어느 한구석 얻어서 본받을 만한 문장들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두루 통한 가르침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오직 우리 해동의 보살이 성상(性相)을 함께 밝히고 고금(古今)을 자세히 살펴 백가(百家) 이쟁(異諍)의 극단을 화합시키고, 한 시대의 지극히 공정한 논의를 세우셨습니다. 신통(神通)으로도 헤아릴 수 없고 묘용(妙用)으로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먼지 속에 묻히더라도 참된 것을 더럽히지 않았으며, 비록 빛을 감추더라도 그 바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명성을 중국과 인도에까지 떨치고 자비로운 교화가 이승과 저승에까지 미친 이유를 찬양한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아무개는 타고나기를 천행으로 어려서부터 불전(佛典)을 좋아하여, 선철(先哲)을 두루 살펴 보았지만 성사(聖師)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묘한 말씀들을 오해하는 것이 아프고, 지극한 도가 쇠퇴하는 것이 슬퍼서, 명산들을 멀리 찾아 다니고, 없어진 전장(典章)들을 널리 구했습니다. 지금 계림(鷄林)의 옛 절에서 다행히 살아계신 것과도 같은 얼굴을 우러러 뵈니 영취산 옛 봉우리에서의 첫 법회에 참석한 듯 합니다. 여기 변변찮은 공양을 빌어 감히 두터운 자비를 바라오니 굽어 밝은 귀감을 드리우소서.

의천, 분황사 원효성사에게 드리는 제문